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퀘렌시아”는 스페인어로 ‘피난처, 안식처’입니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구역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소는 투우사와 혈전을 벌이다가 쓰러질 만큼 지쳤을 때 바로 이 피난처 구역인 ‘퀘렌시아’로 달려갑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힘껏 에너지를 모읍니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 힘을 모을 수 있고 쉼을 가질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회복의 장소이자 ‘퀘렌시아’입니다. 곤충의 퀘렌시아는 나뭇잎의 뒷면이고, 땅 두더지의 퀘렌시아는 땅굴입니다. 물론 사람에게도 퀘렌시아가 필요합니다. 일에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상처받아 억장이 무너질 때, 그때가 바로 나만의 ‘퀘렌시아’를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퀘렌시아’는 어디입니까?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인 ‘퀘렌시아’는 바로 가정입니다. 아무런 부끄럼 없이 얘기도 하고, 핀잔도 받고, 인정받기도 하고, 쉬면서 치료받고 회복되는 그런 감사와 기쁨을 주는 곳입니다. “가정은, 가족은 그런 겁니다.” 어느 한분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입니다.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걸어 다녔던 저와는 달리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늘 엄마가 주시는 차비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차비를 들고 집을 나선 동생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괘씸했습니다. 그래서 쫓아가 따져 물었더니 “가족의 평화를 위하여”라는 이상한 말만 하고 씩 웃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엄마는 동생에게 차비를 주었고, 그 모습을 본 저는 "엄마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는 타지도 않아요. 우리 집 생활도 빠듯한데 거짓말 하는 녀석한테 왜 차비를 줘요!" 하며 동생이 얄미워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먼 길을 걸어 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우셨는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어주며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라고 당부하시며 보냈습니다. 그 차비가 뭐라고 전 엄마한테 왜 내 얘긴 듣지도 않냐며 툴툴대기 일쑤였습니다. 며칠 후,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집안에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보니 놀랍게도 맛있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워 고기는커녕 끼니 챙겨 먹기도 힘든 상황이어서 더욱 기쁨은 컸습니다. 저는 얼른 들어가 고기를 한 쌈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날은 무슨 날...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빠 기운 없어 보인다고, 그 동안 모은 차비로 고기를 사왔구나" 그 먼 길을 가족이 오순도순 고기를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뻐할 진정 가족의 평화를 위해 걷고 또 걸었다고 했습니다. 성인이 되고 불고기라도 먹는 날이면, 그날 동생의 모습이 생각나 대견함에 눈시울이 붉어지곤 합니다.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이 못하면 동생이, 동생이 부족하면 형이,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부모가,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자식이. 그렇게 서로 감싸며 평생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트레이 파커). “가정은, 가족은 그런 겁니다.” 세상을 살아갈, 이겨낼 사랑의 그런 추억을 주는 곳입니다. 어머니날에 나온 어머니들의 반격. "꽃 한송이로 퉁칠 생각하지 말아라!“ 그 안에는 그래도 내 아들들, 내 딸들 사랑한다는 메시지가 가슴에 전해집니다. 얼마전 서울여자대학교 사랑의 엽서 공모전에서의 대상작입니다. -나에게 티끌 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내게 손을 내밀 때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준 어머니가 불쌍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밥 한번 사준 친구들과 선배들은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서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밥을 짓고 밤늦게까지 기다리는 어머니께 감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속 배우들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어머니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파하던 어머니 걱정은 제대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잘못은 셀 수도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가정은, 가족은 그런 겁니다.”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용서와 사랑이 있는 곳, 인생의 크고 작은 깨달음이 있는 곳, 바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는 그 용서와 화해, 쉼과 위로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경험되는 곳이 가정입니다. 가족입니다. 가정의 달을 지나며 다시 한번 삶에 채워봅니다. “가정은, 가족은 다 그런 겁니다.” pastor.e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