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밉상”힐러리 민주당 대선후보 정식 지명

“국민 밉상”힐러리 민주당 대선후보 정식 지명

지난달 26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함께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으로 힐러리 클린턴이 여성으로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대선 예비 경선 즉 지명 경쟁에서 클린턴 전 장관은 처음부터 압도적인 지명도와 풍부한 정치 경험을 배경으로 가장 유력시돼왔다. 하지만 정치 현황의 변혁을 호소하며 젊은 세대와 진보층의 인기를 끈 샌더스 의원과 장기전을 벌여왔다. 그러나 전당대회 지명 투표에서 클린턴 전 장관을 지지한 대의원은 전체의 약 60%에 해당하는 2,842명, 샌더스 의원은 1,865명이었다. 8년 전에 당 지명 경쟁을 펼친 오바마 현직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에 비해 클린턴 전 장관과 샌더스 의원은 정책적인 견해 차이가 크다. 샌더스 의원 지지자를 포섭하는 데는 시련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힐러리 후보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미국인들의 정서다. 미국에서 “힐러리를 싫어하는 정서”는 그녀가 영부인이었던 90년대부터 칼럼의 소재가 될 만큼 팽배했다. 그리고 이는 지난 20년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꾸준히 있었으며, 근래 들어 이렇게나 미움 받은 민주당 대선 후보는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실제로, 힐러리가 소득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해놓고서 경선에서 입은 옷 가격이 거의 2만 달러에 육박하는 명품이어서 되놓고 ‘국민 밉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 밖에 월가에서 수억원대 강연료를 받았고, 이메일 파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힐러리는 '여자'라서 꼭 당선돼야 한다는 논리로 밀어붙이는 민주당 지지 세력들 역시, 샌더스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포용해야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따라서 온라인 매거진 슬레이트(Slate)는 지난 20년 동안 미운 오리새끼처럼 힐러리가 미국인들에게 ‘국민 밉상’으로 자리잡은 원인을 말해준다(The Hillary Haters: Few figures in American political life have inspired such deep and decades-long contempt. But why?).

현재 힐러리가 미움 받는 이유를 살펴보면 예전과 지금이 다르다. 공화당에서 연설문을 썼던 페기 누넌(Peggy Noonan)은 클린턴을 “본능적으로 정치적이며, 이로 인해 신경을 거슬린다”고 표현하며, 정치 경력 내내 자신의 정치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은연중에 끊임없이 드러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90년대에 종종 보였던 “성녀 힐러리”와 같은 비아냥, 정치적 야망이 너무 커보인다는 비난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 클린턴이 지나친 도덕주의자라는 이유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 눈에 비친 클린턴은 부패한 냉소주의자, 거대권력에 가깝다. 자신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도덕군자와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최근 이루어진 설문조사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왜 싫어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4%가 “클린턴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말을 바꾼다”에 동의했고, 82%는 그녀가 부패했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크리스처니티투데이 역시 그녀의 자서전을 집필한 작가나 중도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얻은 결과가 ‘말과 행동이 다른’, ‘필요하면 언제나 입장을 바꾸는, 그리고 ‘부패한 엘리트의 모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The Deep Roots of Our Hillary Hostility: A Clinton biographer and #NeverTrump third-party voter on why evangelicals are #NotWithHer).

시카고 교외에 사는 49세의 회계사 브라이언 그린 씨는 90년대에 보수였고 클린턴 부부를 싫어했다. “자신이 있는 자리를 너무 당연히 여기고 너무 잘난 체하는 느낌이었어요. 카리스마 없는 빌 클린턴 같았다고 할까요?”

그린은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보수파에 실망했고, 2004년에는 하워드 딘을 지지했다. 이렇게 정치적 입장이 달라졌지만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는 마음만은 그대로다. 이번 경선에서도 샌더스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생각해 클린턴을 찍기는 했지만 마지못해 내린 결정이었다. 공화당이 “제정신인” 후보를 내기만 했어도 다시 공화당 후보를 지지했을 거라고 말한다.

한편, 클린턴의 전적과 정책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워싱턴DC에 사는 31세의 시장분석가 마르셀라 애버딘의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출신이다. 애버딘은 클린턴의 강경한 중동 정책과 친이스라엘 성향에 거부감을 느낀다. “클린턴이 솔직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건 사실이지만 대부분 정치인이 그렇죠. 제가 클린턴을 싫어하는 건 정책 때문이에요.”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도는 정책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LA에 사는 작곡가이자 열성 샌더스 지지자인 78세 마고 구라이언 로스너는 92년 대선을 계기로 힐러리 클린턴을 싫어하게 됐다. 특히 로펌 경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집에서 쿠키 굽고 차 마시는 대신 경력을 택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거부감을 느꼈다.

“집에서 쿠키를 굽고 아이를 키우는 보통 여자들을 무시한 거죠.” 로스너는 가정주부가 아니므로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다니 멍청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진보주의자의 입장에서는 힐러리의 노선도 문제다.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것도 마음에 안 들어요. 동성결혼도 화제가 되기 전까지는 지지하지 않았죠. 이메일 문제에 대해서 진술을 거부한 것도 말이 안 되고, 네타냐후와의 우정도 마음에 안 들어요. 대형은행의 기부금을 받는 것도 문제고, 보편적 의료복지에 반대하는 것도 문제예요. 이런 점을 다 고려해볼 때 힐러리는 민주당원보다 공화당원에 오히려 가깝죠. 공화당원에게 하지만 로스너는 이라크 전쟁이나 의료 보험, 금융권과 관련해 힐러리와 같은 입장인 조 바이든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바이든에게는 “어딘가 마음에 와 닿는 인간미가 있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어떤 사람들은 클린턴이 탐욕과 기만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 공화당이 클린턴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했던 모든 이야기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인터넷상의 의혹과 루머를 그대로 믿는다. 그것이 사실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다. 클린턴 지휘 하의 국무부와 여러 외국 정부, 클린턴 재단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피터 슈바이처(Peter Schweizer)의 신간 ‘클린턴 캐쉬(Clinton Cash)’는 내용 대부분이 거짓이거나 근거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트럼프 측에서는 계속해서 이 책을 인용하고 있다. 끊임없이 해명하고 물리쳐도, 클린턴을 둘러싼 각종 “스캔들”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한편 사람들이 클린턴을 싫어하는 이유가 달라진 까닭은 어쩌면 클린턴 스스로 달라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처음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진보주의자였다. 하지만 1994년 중간선거에서 역사적인 패배를 맛본 뒤 그녀는 지나치게 조심하고, 과도하게 타협하는 캐릭터로 점차 변모했다. 즉 사람들은 힐러리의 원래 모습을 싫어했지만, 그녀가 비난에 맞춰 변화하자 이제는 다른 이유를 들어 그녀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힐러리 혐오를 설명할 수 없다. 어쩌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인의 카리스마, 혹은 그 부재 역시 비호감의 원인일 수도 있다.

이번 대선에서 그나마 클린턴에게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대가 도널드 트럼프라는 점이다. 상대가 트럼프이기에, 클린턴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표를 줄 사람들이 꽤 많을 거라는 점도 추측할 수 있다. 이후의 문제는 이처럼 만연한 “힐러리 혐오”가 대통령으로서의 통치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스탠포드대학의 마리앤 쿠퍼는 클린턴이 일단 노골적으로 권력욕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가면, 그녀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지 모른다고 분석한다. 이는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조사 결과도 어느 정도 뒷받침하는 가설인데, 그녀가 상원의원이나 대통령 후보에 도전할 때는 비호감도가 높아졌다가도 실제로 의정 활동을 하는 중에나 국무장관을 지내던 시절에는 비호감도가 낮아졌다. 대통령 자리에 도전하면서 한층 더 미움을 사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실제로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