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진 목사 (샌디에고 반석장로교회)
지난 3일, 경기 부천시에서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해 숨진 채로 집안에 11개월 정도 방치된 백골 상태의 여중생 시신이 발견됐다. 경찰에 의해 검거된 범인은 그 지역에서 개척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로 밝혀졌는데, 그는 독일 유학파 출신의 박사로 유명 신학대학의 교수라는 사실이 놀라움과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아직 사건의 구체적인 동기나 원인이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는 있지만, 1년 가까이 시신을 집안에 방치해 놓고도 태연하게 목회와 교수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던 점은 참으로 자연인으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 중의 하나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 Stevenson)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모습처럼 그도 목사요, 박사요, 교수이기 이전에 한 자연인으로서 죄인 중의 하나일 뿐임을 인정한다. 어느 목사의 트위터에 올린 글처럼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죄인이기에, "내 안에 그가 있다"는 자조 섞인 탄식에 공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국 교회연합의 성명서에서처럼 이번 참극은 우리 모두의 감춰진 맨 얼굴 중 그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 앞에, 국민 앞에 무릎 꿇어 벌을 청하는 심정으로 통렬한 회개와 반성으로 대오 각성해야 할 것도 분명하다.
그 사건이 있은 지 겨우 2주도 채 안된 오늘, 비슷한 유형의 뉴스를 접하고 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가출한 어느 어머니가 큰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때려 숨지게 한 뒤 몰래 매장한 사실이 5년(당시7세) 만에 드러났다는 뉴스이다. 경찰 조사 결과를 보면, 그녀는 미국 유학생 남편과 미국에서 살면서 두 딸을 낳았다. 그녀는 가정 식구들과 함께 서울로 돌아와 살다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당시 5살·2살이던 두 딸을 데리고 가출했다. 가출 직후부터 지난해 봄까지 지인의 집에 얹혀살면서 두 딸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지도 않았으며, 큰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집 베란다에 가두고 밥을 주지 않거나 의자에 묶어서 회초리로 마구 때리는 등 자녀폭행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 날도 큰 딸을 방 안 의자에 손발을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은 뒤 회초리로 몇 시간 동안 때리고 내버려뒀다가 다음날 그가 숨진 것을 알고 딸의 주검을 차에 싣고 이틀 동안 다니며 암매장할 곳을 물색하다가 경기도 광주시 야산에 김양의 주검을 파묻었던 것이다.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가정 존속 살해 사건은 그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10년도에는 친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19개월간 집안 장롱에 숨겨 온 30대가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사업자금을 달라고 조르다가 여의치 않자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어느 고교 1학년 학생은 "담배 피우는 것을 아버지에게 말하겠다"고 말한 어머니를 칼로 살해했다. 이를 말리던 70대 할아버지까지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존속 살해 사건들이 가장 행복하고 평안해야 할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성범죄 세계 3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연간 27만여 명이라는 여성들이 성폭력의 피해를 받고 있다는 추산인데, 그러한 성 범죄 중 근친 성폭행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아버지가 딸을, 오빠가 여동생을, 어머니가 아들을, 아들이 어머니를 성 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란한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정 식구들을 상대로 한 성범죄가 심각한 사태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부부 폭력, 아동학대, 부모학대, 근친상간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는 실태이다. 가정파괴는 곧 교회 파괴와 국가와 민족의 어두운 장래와 멸망과 직결이 됨을 잊어서는 안된다. 가정은 사회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근간이요 터전이기 때문이다. 가정이라는 근간이 무너지면 그 위에 아무리 고도의 경제성장, 과학기술의 발달, 인류문명의 혁신들도 오히려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가정의 회복을 위해 재를 뒤집어쓰고 피눈물을 흘려야 할 때이다. 이제라도 가정을 살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식구들과의 소통의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교회의 목회보다도 먼저 가정목회의 성공자가 되어야 한다. 멀리 있는 선교지 보다 우선 내 가정이 선교지가 되어야 한다. 설교와 가르침, 목회의 현장이 먼저 내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건강하고 성숙한 목회를 꿈꾸기 전에 먼저 가정의 행복과 건강한 관계의 회복을 꿈꾸어야 한다. 가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화목과 부활의 새 생명이 시작되어야 한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자녀들의 음성에 먼저 귀 기울이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가정의 회복이 곧 하나님 나라의 회복의 시작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웠음이니라"(아2:15). 내 가정을 허는 작은 여우들을 잡아야 한다. 내 가정이 사랑의 꽃의 향기로 가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johndjc@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