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택은 1891년 6월 10일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그는 형 황성국 부부와 함께 14세가 되던 1904년 6월 1일에 콥틱호를 타고 통역인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는 1912년 8월에서 11월 사이에 하와이에서 상항을 거쳐 나성으로 이동했다.&nbs...
정인표는 1888년경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19살 때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하여 일본 요꼬하마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가는 시나노 마루 선박에 의지해 태평양을 건너 1907년 1월 9일에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내렸다. 그런데 캐나다 서부 해안 벤쿠버에 도착하여 경...
이응목(李膺穆)은 1875년 12월 21일 또는 그해 1월 26일에 평안남도 숙천군 평리 방북삼리에서 아버지 이성심과 어머니 서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21세 되던 1896년에 장로교인이 되었고, 25세가 되던 1900년 10월 22일에 고향에서 김신환과 결혼했다...
임준기(林俊基)는 1883년 9월 11일에 한국 평양 인근 용강에서 태어났다. 1925년 8월에 상항대학 전기과에서 공부한 임정기가 그의 동생이다. 임준기는 1899년 11월 18일에 고향 사람인 임광명과 결혼한 후 22세가 되던 1905년 5월에 하와이 노동이민자의 ...
염달욱은 1876년 9월 15일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에 고애나와 결혼하여 아들 윌리와 딸 루스를 두었는데, 혼자서 미국 유학차 호놀룰루(호항)를 거쳐 27세인 1904년 11월 25일에 상항에 도착했고, 이후 그는 왈터(Walter)로 통했다.  ...
박동규(Pak, Dong Kiu)는 1883년경에 한국 풀무골에서 태어났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던 풀무골인지, 황해도 서흥군 목감면에 있던 풀무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는 21세가 되던 1904년 11월 6일에 일본 고베에서 코리아 선박을 타고 그달 18일에 단신...
노진국(盧眞國)은 1889년 9월 15일에 한국 이천 은순동에서 노YK와 한메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이름 메리를 볼 때 당시 감리교회가 여자 교인에게 세례명을 주었으므로 노진국과 그의 부모가 감리교인이었던 것 같다. 고향에서 함께 살던 외삼촌 30세 한치춘...
남궁염(南宮炎)은 1888년 3월 17일에 서울 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 중추부도사였던 남궁영의 아들이자,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와 언론인이었고, 찬송가 ‘삼천리반도 금수강산’의 작사자인 한서 남궁억 장로의 외아들이었다. 그는 배재학당을...
김유택(金裕澤)은 1887년 황해도 안악 신천에서 김영식 전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세 때인 1905년에 그는 노동이민자로 하와이로 떠나는 아버지를 따라 하와이로 갔다. 그는 1949년에 감리교 제9대 감독을 지내 김유순 목사의 동생이다. 하와이에 도착한 이듬해인...
‘창해 소년’이라 불렸던 강영소(康永韶)는 1886년 2월 18일에 평안남도 증산면 취용리에서 강명화의 6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증산군 공립소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03년에 한성사범학교에 입학하여 1904년까지 공부했다. 어머니 송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