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기는 1885년 9월 14일에 한국 관동에서 태어났다. 관동이 태백 산지를 횡단하는 길목인 대관령의 동쪽 곧 오늘날의 영동지방인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21세의 단신으로 그는 1905년 4월에 콥틱 기선에 의지해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그런데 한국 근현대 인물 ...
고덕화(高德化)는 1881년 10월 20일에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른바 지식인이었다. 결혼한 후 서울에서 거주하였는데, 하와이에 대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노동 이민을 신청한 그는 1903년 4월에 인천에 있던 대한제국 원민원에서 여권을 받았다. 여권은 ...
송치순은 1864년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40세가 되던 1904년 8월에 35세의 아내 방영순과 11살의 아들 자승과 4살과 1살 된 두 딸 마리아와 유순과 함께 일본에서 시베리아 선박에 승선하여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오아후섬의 와히아와 농장으로...
조한식 (趙漢植)은 1864년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결혼한 후 그는 황해도 해주군에서 거주했는데 아내를 여윈 후 혼란스러운 가운데 황성신문 등을 통해 하와이 농업 이주를 접했다. 신체가 건강하고 품행이 단정하면 일자리를 얻기가 쉽고, 열흘에 15달러를 지급하면 당시 한...
김재성은 1886년경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마지막에 거주했던 지역이 교동이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교동은 수원에 있고, 전국에 교동이 19곳에 있어 교동이 어딘지 확인할 방법은 쉽지 않아 보인다. 교동에 거주하던 김재성은 19세가 되던 1905년에 단신으로...
정원명은 1881년 11월 20일에 평안남도 평양에서 정창규와 김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는 1888년부터 4년간 평양에 있는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상무방의 사환으로 2년간 있다가 1894년부터 과일 상점을 하였다. 1899년에 평양 숭실 학교(?)에...
장용운(Chang Yong Woon)은 1880년경에 한국에서 태어났다. 결혼한 후 그는 송창리에서 거주했다. 그런데 이 송창리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구한말 유학생, 선비, 농부, 군인, 머슴, 역부, 건달 등으로 구성된 첫 하와이 노동...
안원규(安元奎)는 1877년 8월 30일에 서울에서 안문학과 정 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1889년 이후 파주에서 상업에 종사하였다. 25세가 되던 1903년에 홀아비였던 그는 하와이 노동 이민 대열에 섰다. 두 번째 노동 이민 선박이었던 ‘콥틱&rsqu...
황계신은 1868년 7월 3일에 한국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신보다 약 3달 일찍이 태어난 고마리아와 결혼한 후 4자녀를 데리고 하와이 노동 이민 첫 배인 개릭에 올라 1903년 1월 13일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그가 1909년에는 오아후섬 에와에서 노동...
함호용(咸鎬墉)은 1868년 6월 5일에 한국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1880년에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최해나와 1897년 2월에 결혼하였다. 해나가 세례명이었으므로 최해나가 감리교회에 다녔을 것으로 보이고 함호용도 교인으로 보인다. 결혼 후 고덕에서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