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복 받기를 좋아한다. 복에는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있다. 세상적으로 대표되는 것은 유교에서 말한 오복(五福)이 있다. “수(壽): 장수하는 것, 부(富): 풍요, 강령(康寧):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유호덕(攸好德): 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는 것, 고종명(考終命):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누리는 영적인 복이 있다. 성경에서 말한 8복은 소유보다 존재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선교사는 복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이방인 영혼구원을 위해 파송 받은 자가 그리스도의 복된 요소가 없이 어떻게 사역을 잘할 수가 있을까?
1.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한 것은 그 자체가 복이며 천국이 임한 결과이다. 여기서 천국은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는 영역을 말한다. 가난이란 헬라어 원어는 “프토코이(πτωχοὶ)”로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라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뜻한다.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영혼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며 하나님을 갈망하는 자이다. 선교사의 첫째 덕목은 심령이 가난해야 한다. 인간적인 명예나 탐욕이 차 있으면 성령께서 일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선교사의 업적보다 그 사람이 어떤 자인가를 중시하신다.
2. 애통하는 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여기 "애통하다"는 헬라어로 “펜쎄오’(πενθέω)”로서 격심한 비통을 의미한다. 주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가슴을 치며 통곡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가장 잘 묘사된 곳은 창세기 37장에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이 죽은 것으로 믿고 슬퍼할 때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애통해야 하는가? 자기와 세상의 죄 때문이다. 선교사는 늘 애통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결핍과 무가치성과 추악함에 대해 애통할 때에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며 영혼이 맑아지게 될 것이다.
3. 온유한 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온유란 말은 헬라어는 “프라에이스(πραεῖς )”로서 사나운 짐승이 훈련으로 길들여져서 다루기 쉬운 짐승이 된 것을 의미한다. 한자는 따뜻할 '온(溫)' 부드러울 '유'(柔)로서 어떤 경우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로서 온유는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힘으로 타인으로부터 모욕과 고난을 받았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온화한 성품을 가리킨다. 종이를 구기면 끝까지 구긴 상태로 있지만 비단 천은 아무리 구겨도 다시 펴진다. 선교사는 인간관계 속에서 상대가 마음을 불편하게 해도 십자의 능력으로 용서하며 비단 천처럼 구겨진 마음과 얼굴을 펴야 한다. 온유하지 않고는 문화와 성격과 모든 것이 이질적인 사람들을 도울 수 없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 의(義)란 헬라어 “디카이오쉬넨(δικαιοσύνην)”로서 옥스포드 원어성경 대전에서는 “윤리적인 면에서 의(Righteousness)와 종교적인 의미의 의(Justice)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이 세상의 불의한 현상에 대하여 깊이 탄식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기 위하여 노력함과 동시에 자신의 죄 성에 대해서도 깊이 회개하며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바라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선교사는 바로 영의 양식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와 의를(마6:33) 사모해야 한다. 그 목마름이 간절할수록 영적 생명력은 더욱 왕성하게 일어날 것이다.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5:7). 긍휼이란 헬라어에서 ‘엘레에오(ελεεω)”라는 단어에서 왔으며 자비, 인자, 인애(仁愛), 민망(憫惘), 불쌍히 여김 등의 뜻이 있다. 긍휼의 반대되는 말은 무자비, 잔인, 포악, 무정, 냉정(冷情), 무시 이다. 따라서 ‘긍휼히 여긴다’는 말은 타인의 처지를 자기 처지처럼 여기고 도와주는 덕을 가리킨다. 긍휼은 이론이나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까지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사는 주님의 가슴을 품고 현지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 마음이 없이는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
6.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7). 청결이란 단어는 헬라어 “카카로스(καθαρός)”로서 깨끗함, 순전함, 투명함, 단순함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은 잡스러운 생각이나 세속적 욕망 등이 없는 바른 자세를 말하는데 이는 가난한 마음을 넘어서서 이제는 죄 사함 받고 순전하고 정결함으로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순수한 상태를 말한다. 선교사는 애통함으로 늘 마음이 청결하여 자연계시와 특별계시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한다.
7. 화평케 하는 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 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이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9). 화평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에이레네(είρήνη)”이다. 이 에이레네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히브리어 샬롬(shalom)이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화평은 나와 상대방이 함께 어울려 사는 아름답고 좋은 관계라고 말할 수 있다. 나아가 본문에서의 평화는 단순히 현상적,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구원이라는 신학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 선교사는 화평의 사자이다. 현지인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그들이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이웃과 평화의 사람들이 되도록 돕는 자이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10). 의는 히브리어로는 체데크(chedek)이고 헬라어로는 “디카이오슈네(δικαιοϭύνη)”인데 윤리적인 의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인간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종교적인 의이다. 그러나 이 ‘의’는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란 성격이 강하나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본절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난 받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한 언급이라 할 수 있다. 선교사는 주님 때문에 보냄을 받은 자이고 또한 핍박을 당할 수 있다. 의를 위하며 박해를 당한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맺음 말
팔복은 천국에서 시작하여 천국으로 끝나는 수미(首尾) 상응의 완결미를 보이고 있다. 팔복의 각 부분이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이)’란 선언으로 시작되며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역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팔복은 근본적으로 이 지상에서 행해야 할 천국시민의 법과 그 결과 주어질 종말론적인 복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 8복은 또 하나의 율법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로 귀결되어진 천국백성의 원리와 특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8복에 나타난 속성을 덧입어갈 때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역이 될 것이다. 이는 어찌 선교사뿐이겠는가? 주님을 따르는 언약백성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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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