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선교전략 연구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 담보하는 자이다.
삯군 목자는 양들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직업 꾼이다.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화신으로서 영혼사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에는 항상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 왔다. 가난, 질병, 사업 실패, 가정파탄, 인간관계 등의 여러 문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저들 중 상당수는 나름대로 살아 보려고 발버둥 치다 제 풀에 꺾어 죽어가기도 한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 9월 9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전 세계에는 40초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자살(suicide)하는 숫자가 약 80만 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쟁으로 죽는 사람들보다 많은 수치다. 특히 15-29세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살은 도로 교통사고에 이어 사망 원인 2위였다. 이렇게 인간 문명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향상된다 해도 세상에서 소외된 채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넘나드는 저들에게 구원의 빛을 비출 수 있을까? 국가의 공적인 힘과 제도적인 장치로는 그 역할을 다 할 수가 없다. 이는 기독교회의 몫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소망 없는 자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 그 중에서도 주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선교사나 목회자는 그 사명이 하늘처럼 높다. 철장권세로 무장하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양들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참 목자들이 필요한 때이다. 이 땅에 선한목자 되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1. 양처럼 목자가 필요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적으로부터 저마다 방어책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스피드가 있다거나 아니면 느린 동물들은 나름대로 자기보호능력을 가지고 있다. 카멜레온은 주변 색과 몸 색깔을 맞추어서 잘 들키지 않도록 한다. 고슴도치는 몸에 가시를 세워서 나름대로 자신 보호를 한다.
이에 비해 양은 너무나 온순하며 연약하다.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고 다른 동물들과 맞서서 싸울 만한 능력도 없다. 그래서 맹수의 습격을 받으면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양들은 참 우둔하기까지 하다. 멀리 있는 풀밭과 시냇물을 찾아 스스로 가지도 못한다. 다른 동물들은 방향감각이 있어서 길을 잃었어도 다시 돌아오지만 양들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죽기 일쑤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보면 양은 절대적으로 목자가 필요한 존재이다.
우리의 세상에도 양처럼 연약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유리방황하는 청소년들, 이런 저런 문제들로 좌초해 그늘진 곳에서 홀로 눈물 흘리며 고독을 씹고 있는 사람들, 감당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해 두려움 가운데 있는 환자들, 겉은 멀쩡하지만 그 심령은 공허하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자들이 어찌 한두 명이랴. 이 지구촌은 그야말로 커다란 영적 병동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이러할 때에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벧전5:8).
2.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사역 초점
누가복음 15장에는 3가지 비유가 나온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 비유,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비유,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이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게 된다. 바로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1마리 양에게 있다는 것이다. 인간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자녀들이 잘 커서 제 앞 가름을 하며 사회적으로 공헌하고 있다 해도 그 중 한 자녀가 잘못되어있을 경우 부모마음은 항상 그 자녀 때문에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4:18). 이 말씀처럼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무지랭이 같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애정을 가지셨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동일한 성령 즉, 예수의 영이 내주하고 계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주변의 연약하고 낙오된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저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도움은 끝이 없고 표시도 안 난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에게 유익도 없고 오히려 교회부흥에 거침돌이 될 수 있다는 사고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왕이면 유식하고 재력 있으며 스펙 좋은 세련된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이 땅에 부름 받은 사역자들은 어떠한가?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탄식하고 계시지는 않으실까?
3. 선한목자 상을 지닌 의성(醫聖)
우리는 흔히 일컬어, 유명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의사를 ‘명의(名醫)’라 한다. 신이 내린 실력을 지닌 의사를 ‘신의’(神醫)라 한다. 의사의 경지를 넘어 성인의 반열에 이르는 사람을 가리켜 ‘의성(醫聖)’이라 한다. 의성은 의사로서 최고의 명예로운 호칭이다. 이는 병을 잘 고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인간의 생명을 존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중국에 화타(華陀)도 있고 조선에는 허준(許浚)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의성 화타는 당대의 의술가로서 최고였다. 그는 독화살을 맞은 관운장(關雲長)을 치료했다. 이에 조조가 주치의로 지속적으로 군영에 머무를 것을 명령하자 거부하여 사형을 당하였다. 이유인즉, “의사는 환자 앞에 있어야 한다”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백성을 치료하러 가기를 소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참 의사인지를 증명하는 한 단면이다.
조선 땅의 허준은 어떠한가? 그는 1596년(선조29)부터 1610년(광해2)까지 장장 15년여의 연구 끝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집대성했다. 이 서적은 당시의 한의학에 대한 모든 지식을 망라한 임상의학 백과사전이다. 그의 위대성은 이처럼 큰 업적을 남긴 것보다 과거를 포기하면서까지 민초들의 병을 고쳤다는 숭고한 인간애에 있다. 여기 언급된 화타와 허준은 비록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의식과 삶에서 선한 목자 상을 떠올리게 한다. 오늘날 이런 의성(醫聖)들처럼 숭고한 직을 밥벌이를 위해 수단화하지는 않는 사람들이 그리워진 때이다.
4. 선한목자와 삯꾼목자의 차이
선한목자는 자기 양을 안다.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한다.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한다. 또한 먹이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책임져준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선한목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선”이란 바로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린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주님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을 통해 자기사랑을 확증하셨다. 이에 비해 삯꾼 목자는 양을 잘 알지도 못한다. 양을 향한 사랑과 주인의식도 없다. 저들은 피동적이며 헌신적이지도 않다. 그 수고는 조건적이다. 오직 자기 삯을 위해 일할 뿐이다. 따라서 맹수의 공격이 있으면 양들을 버려두고 도망간다. 저들에게는 양들이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맺음 말
육신이든 영혼이든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은 숭고하다. 이런 일에 부름을 받는 사람은 그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특별히 선교사나 목회자는 자기 생각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응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선한목자 상을 좆지 아니하면 어느새. 불나방처럼 화려한 것이나 프로젝트 위주 대중적인 사역에 마음을 뺏기기 쉽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라는 속담이 있다. 사탄 마귀는 오늘도 맨해튼의 고층빌딩 아래 주저앉아 있는 뭇 심령들을 삼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사역자들은 늘 깨어 철장권세로 무장한 채 주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자기 발길을 옮겨야 한다. 이는 삯군 목자가 아니라 양을 위해 생명까지 담보하시는 선한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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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