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마(亂麻)처럼 얽킨 韓日 관계와 出路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한일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 1965년 6월22일 양국 수교이후 가장 격한 상태이다. 아베정권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고 이리저리 말을 바꿔가며 경제보복조처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 이에 맞서 문재인 정권은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결코 굴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국 리더십의 결정으로 인한 감정적 대치가 대다수 국민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뿌리 깊은 미움과 분노가 표출되는 반면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피로감과 냉대가 극대화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맞짱을 뜨다가는 예기치 못할 큰 불상사가 날 수도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 G3xG11의 싸움은 양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긴장이 고조되는 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병에는 처방전이 있듯이 인간사(人間事) 모든 곳에도 답이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단말마적 대응보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구한말 이후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크리스천들은 선봉에 섰었다. 이제 우리도 선열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그것은 조국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선지자적 목소리로 세상을 선도하는 것이다. 

 

1. 일본의 일반적 상황과 위상

 

일본(日本: にっぽんこく: 닛폰코쿠)은 어떤 나라인가? 국토는 태평양을 끼고 4개의 주된 섬: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를 중심으로 주변에 산재한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섬들은 총 6,852개로서 화산활동을 통해 생겨났다. 총 면적은 37만7973km2인데 이는 면적순으로는 세계 61위다. 일본의 인구는 약 1억2,700만 명으로 세계에서 11번째로 많다. 사실상의 수도인 도쿄도 및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수도권은 세계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스이다. 이 지역에만 약 4,000만여 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현재의 일본은 1945년 포츠담 선언에 서명한 이후 1947년에 제정·시행된 일본국 헌법에 의해 법적으로 성립된 국가이다. 일본은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상징적인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천황과 국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참의원(상원)·중의원(하원)으로 구성되고 있다. 경제력은 명목기준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 구매력 평가기준으로 네 번째로 크다. 일본은 선진국으로서 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G7에 들어가 있다. 일본은 영아사망률이 세계에서 3번째로 낮고 가장 높은 평균수명을 기록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신토, 불교, 기독교를 비롯한 주요 종교들은 종교법인으로서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에 등록되어 있다. 일본의 주된 종교들은 신토와 불교이며 기독교도는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 

 

2. 한국정부에 대한 아베(安倍 晋三) 내각의 시각

 

아베총리는 일본의 우익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그는 2006-2007년에 이어 201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3선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는 2021년 9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일본 역사상 최장의 총리대신이 된 것이다. 이로서 그는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부의 대표자4명을 상대해왔다. 오늘의 무역보복 결정이 있기까지는 지난 7년간 한국정부의 정책과 지도자의 행위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집권시기인 2012년에 한국 대법원은 일본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역사적 판결을 했다. 이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문제가 종결됐다는 일본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결정이었다. 더구나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했고 일왕 사죄 발언과 같은 반일공세로 일본을 자극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아베를 냉대하다가 2015년 12월28일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며 불가역적(不可逆的)인 합의를 하였다. 이 결정은 위안부 당사자와 한국의 여론을 무시한 것이었다. 이로서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문제 삼았으며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방침을 발표했다. 따라서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국가 간의 합의를 깨고 일본의 치부를 드러내며 피곤하게 하는 존재로 보였을 수도 있다. 

 

3. 일본정부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

 

북한 언론에서 “일본은 그 섬나라를 다 팔아도 조선에 대한 사죄를 갚을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아무래도 지나치다 싶지만 이해가 가는 표현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는 뿌리가 깊다. 일본 왜구(倭寇)들은 1592년에서 1598년까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저들은 7년 동안이나 우리 민족을 살상하며 한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1895년에는 조선의 국모인 명성황후가 일본군의 암살단에 의해  시해(弑害) 되었다. 무엇보다 저들은 1910년부터 36년이나 한일 합방으로 우리의 주권을 빼앗고 압제하였다. 그때에 저들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개인이든 국가이든 오류를 범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할 때에 진정한 화해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함에도 일본은 그들 조상의 과오를 합리화하며 역사를 왜곡해왔다. 뿐만 아니라 현재적으로 강제징용, 위안부문제, 독도영유권, 야스쿠니, 교과서내용 등에서 도발을 하며 한국인의 감정을 계속 쑤셔왔다. 

무역관계는 어떠한가? 연합뉴스 7월 29일자에 의하면 한일 수교이후 2015년까지 지난 50년 동안 일본은 한국과의 무역에서 5천164억 달러의 흑자를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로 치면 576조원 규모다. 한국입장에서는 '만성 무역적자'가 이어져온 것이다. 해마다 대일수입이 수출의 2배 정도이다. 과거의 침략과 현재의 무역 특수를 누리면서도 어떻게 무역보복으로 나올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역대 한국정부 지도자들은 아베 내각을 충심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약자는 강자를 미워할 수 있으나 품을 수는 없다.

일본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한 한일관계는 풀릴 수 없다.

복음의 강국인 한국은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허면 저들에게서 진정한 참회가 나타나며 선린 우호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4. 한일 관계의 이상적인 모델인 DJ-오부치 선언

 

해방이후 한일관계가 제일 좋았던 때는 DJ정부 때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7-10일 일본을 국빈 방문했다. 당시 양국 정상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내용인즉 “식민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한다”였다. 일본 보수주류의 총리가 한국 대통령 앞에서 처음으로 ‘사죄’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며, DJ는 ‘화해’라는 낱말로 화답했다. 한국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화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어서 DJ는 일본 의회연설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우리가 받은 고통을 얘기하면서 일본 국민도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두 나라 국민은 훌륭하다면서 우리가 협력하면 시너지가 얼마나 크겠느냐”고 강조했다. 

일본 국민은 DJ의 연설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화해의 구체적 사례로 문화교류를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문화개방을 하면 일본의 문화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일본에서 한류 바람이 일어났다.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욘사마 열풍이 일어났고, 그것이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된 한류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처럼 DJ-오부치 공동선언은 역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 외교관계에서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문서였다. 

 

5. 새로운 한일관계에 대한 출로

 

한일관계 어떻게 풀 것인가? 위기는 기회란 말이 있다. 이참에 우리 한국은 다각도로 대일 관계를 점검하며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한다. 첫째 경제적인 면이다. 산업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첨단수출 제조업은 일본의존도가 너무 크다. 그곳에서 원 자제를 사와 다시 가공해서 판매하는 구조이다. 그러다 보니 순 이익이 크지 않으며 이번처럼 위험성도 있다. 이제 수입국가의 다변화를 꾀하되 가능한 국내의 중소기업을 육성해 국산품 애용을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둘째 정치적인 면이다. 한일관계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그 뿌리도 깊다. 이에 우리는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은 실리가 없다. 앞으로 길게 내다보고 쉬운 것부터 하나씩 풀어 가야 한다. 그 방법은 수험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즉, 한정된 시간 내에서  난제에 부딪칠 수 있다. 이때에 답이 생각나지 않는 문제는 우선 건너뛰어야 한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나 다시 돌아와 풀면 된다. 외교도 마찬가지이다. 복잡한 문제에 얽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한다면 낭패이다. 

셋째는 선교적인 면이다. 악을 이기는 길은 선이다. 최고의 선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고 진정한 참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일본에게 아무리 압박을 가한들 저들이 무릎 꿇고 사죄할 것인가? 사람이 달라지기 전에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선교일본의 중요성을 언급함이다.

 

맺음 말

 

일본은 한국에게서 어떤 나라인가? 현해탄(玄海灘)을 끼고 있는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두 나라는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곁에 없으면 좋을 것 같은 부담을 앉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앞으로도 마르고 닳도록 함께 가야 할 이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저들이 망하는 것보다 복을 누리며 잘 사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다. 어차피 동북아 질서는 한, 미, 일과 북, 중, 러로 편성되어 있다. 만일 일본이 없다면 힘의 균형이 급격히 중, 러 쪽으로 쏠리기 쉽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일본에 좋지 않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나라 니느웨를 수도(首都)로 하는 앗수리아에 해당된다. 그곳 선교사로 부름 받은 요나는 민족감정 때문에 가기를 싫어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강권으로 마지못해 간 요나를 통해 니느웨 왕과 사람들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했다. 이것이 성경적인 답이다. 

우리가 일본을 태평양 저 너머로 보낼 수 없다면 저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는 수밖에 없다. 이 방법이 이기는 방법이다. 그러할 때에 저들은 역사적 과오를 인정할 것이며 우리는 선린우호국으로서 함께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 사례는 DJ-오부치 선언을 통해서 부분적으로 예증이 보여졌다. 어려운 이 난국에 아군끼리 싸우지 말고 믿음으로 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jrsong007@hanmail.net

 

08.0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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