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쓴 것이 다 약이 아니라면 단 것도 다 사탕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선교의 수단으로 프로젝트를 두고 한 말이다. 작금에 한인 세계선교를 보면 선교회나 교회적으로 많은 프로젝트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선교센터, 교회개척, 긍휼사역, NGO 사역, 의료와 교육사역, 비즈니스 선교 등에서 이를 진행한다.
선교에서 프로젝트는 필요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선교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며 그것을 기반으로 사역적 효과도 낼 수 있다. 하지만 순기능 못지않게 그 사역 자체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여기저기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들에 많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가? 우리는 건실한 사역은 장려하되 선교의 본질에서 떠난 프로젝트성 선교를 경계해야 한다. 선교에서 순수성이 훼손된 프로젝트는 그 자체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1. 프로젝트의 중심성
선교에 있어서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이은무 선교사는 “선교 현장에서 사역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유형적 사업체계를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사역의 형태에 따른 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므로 선교사들이 늘 되새겨야 할 일은 영적인 킹덤 비전을 현실화하는 것이다. 건물이 아닌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건물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무너지고 없어진다. 따라서 이 비전 설정이 바로 세워진 가운데 프로젝트도 구상해야 한다.
특히 주의해야 할 사항은 선교의 중심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사역을 했는가? 주님은 결코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 시간이나 돈을 쓰신 기록이 없다. 워치만 니(Watchman Nee)는 “예수님은 태어나신 곳도, 집도, 옷도, 무덤도 다 빌려 쓰시고 오직 그 분이 가지신 것이라고는 십자가뿐이었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어떠한가? 그가 살던 시대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프로젝트 사역을 요하는 때였다. 하지만 그 역시 철저히 예수님의 사역 모델을 따랐다.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선교에서 큰 명제는 성경이 언급한 사역적 원리(Text)는 변하지 말되 그 형태는 상황(Context)에 맞게 적절히 시행하는 것이다.
2. 한인선교가 넘어서야 할 프로젝트
현대는 보여주는 선교가 없이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어렵다. 프로젝트 중심의 사역은 짧은 시간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드러낸다. 이로서 선교사는 자기 은사유무를 떠나 프로젝트형 사역에 현혹되곤 한다. 선교사 사회에서 뭔가 기댈만한 아지트를 깔아 놓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쳐지는 분위기이다. 이에 영향을 받아 어떤 이는 선교사로서 본분을 잊고 사업가처럼 변신한 자도 있다.
전 세계에는 6만여 한인교회는 어떠한가? 이 많은 교회들은 해마다 교회창립 기념식을 한다. 특히 10주년, 20주년, 30주년 등 -0으로 떨어지는 해에는 뭔가 의미 있는 프로젝트 사역을 하기 원한다. 대체로 헌금을 모아 선교지에 교회당 세우는 일을 선호한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제3세계에 교회당 하나 정도는 거뜬히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6만 교회 중 그 1/10에 해당되는 6천여 교회만이 사역을 진행한다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가 된다. 문제는 그 내용과 과정이다.
현지 교회를 이룰 회중도 많지 않고 또한 영적 지도자도 배출되지 않았는데 예배당만 덩그렁 지어놓는 일이 허다하다. 이는 속빈 강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선교지에 교회당 신축은 심사숙고해야 한다. 비록 여건이 되었다 해도 현지인들이 주도하게 하며 우리는 저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보조적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 한인교회가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저들을 무시하고 건축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교회의 생명 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선교의 수단으로 프로젝트는 필요하다.
선교의 본질을 떠난 프로젝트성 선교는 문제가 크다.
우리는 선교사업이 아닌 선교사역적 프로젝트를 추구해야 한다.
3. 프로젝트중심 선교의 문제점
이재환 선교사는 “비본질적인 사고가 선교의 본질적 의의를 망가뜨린다. 그 지역의 특성과 선교 환경을 고려한 프로젝트는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으나 잘못된 경우는 많은 물질적,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선교지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 즉, 사람들을 시험 들게 하며 선교의 문을 닫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질이 투자된 곳에는 인간의 헤게모니(Hegemony) 싸움이 있게 되고 사탄의 궤계도 심하게 들어난다.
프로젝트중심의 선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선교에 대한 개념인식의 결핍이다. 선교사역(Ministry)과 선교사업(Business)을 혼돈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는 선교의 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되곤 한다. 또한 한인의 특성인 “빨리빨리 문화”가 선교 현장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속히 결과물을 내야 영웅적 사역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문제는 많은 프로젝트들이 충분한 리서치 가운데 전략적 수순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나아가 중복투자의 문제는 이미 도를 넘어섰다. 여기저기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한 지역에 같거나 비슷한 프로젝트를 개발함으로써 선교사끼리 불필요한 경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둘째 치고 현지나라의 시각에 어떻게 비춰질까? 두렵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4. 바람직한 프로젝트 개발
첫째는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진행할 프로젝트가 얼마만큼 성경적이며 현지인들에게 큰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전문기관이나 선배들의 의견을 종합해 전략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둘째는 나라별로 선교회와 교파를 초월해 가능한 연합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구멍가계 식 중첩된 여러 프로젝트들은 현지 나라에서도 절대 환영받을 수 없다.
셋째 현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 동원해야 한다. 현지인들이 주체가 된 가운데 진행됨이 바르다. 우리는 그들을 다스리고 군림하려고 간 것이 아니다. 그 땅의 주인은 선교사가 아니다. 이에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선교사들은 언젠가는 현지인에게 리더십이 넘겨질 것이라는 것은 전제하고 일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넷째 지속성의 문제이다. 만들어진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필요경비가 지속적으로 조달되어야 한다. 처음에는 해외지원으로 시작된다 할지라도 점차 자립으로 가야 한다. 이에 대한 마스터플랜(Masterplan)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맺음 말
우리가 익히 아는 바 중세 기독교는 선교의 본질에서 벗어나 외형적인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되므로 타락하였다. 그 때의 예배당들은 크고 화려하며 예술적 가치가 높다. 하지만 불행히도 복음의 변질을 가져왔으며 영적으로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우리는 한시도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을 의식한 전시 효과적 프로젝트는 과감히 척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며 현지인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선교의 핵심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컴퓨터에서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를 위해 존재하듯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존의 프로젝트를 냉정히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가 있다면 과감히 수정하고 가능한 선에서 통합해야 한다. 장차 현지 나라에 자랑이 될 수 있는 보배로운 프로젝트를 구축함이 관건이다. 그 방편은 하나님의 킹덤(Kingdom)으로 나아갈 때 가능하다.
jrsong007@hanmail.net
05.11.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