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대한 선교사의 책무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한국에서 5월은 가정의 달로 지켜진다. 5월 5일은 어린이날, 5월 8일은 어버이날, 5월 11일은 입양의 날, 5월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미국에서는 가정의 중심인 Mother’s Day가 5월 두 번째 주일이다. 사실 1년 365일은 모두가 가정의 날이 되어도 무방하다. 헌데 날자 별로 의미를 부여하고 그 대상을 축하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때만이라도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고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가족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기에 가족은 우선순위에서 업무와 외부 손님에 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특히 한인 선교사의 경우는 그 도가 지나치다. 선교사의 머리에는 항상 사역들로 분주하다. 설사 가족들이 곁에 있다 해도 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선교사의 가정이 훼파되고 그 가족 구성원이 시험에든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선교사는 갈등하게 되며 사역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선교사에게 사역 못지않게 가족도 중시되어야 한다. 이 뜻 깊은 가정의 달을 맞이해 선교사는 주변의 가족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간 어떻게 대했으며 그들에 대한 무슨 책무가 무엇인지?

일반론적인 가족의 정의와 기능

가족(家族)이란 무엇인가? 위키백과사전(Wikipedia)에 의하면 이는 혈연, 혼인, 입양, 친분 등으로 관계되어 같이 일상의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또는 그 구성원을 지칭한다. 집단을 말할 때는 가정이라고도 하며 그 구성원을 말할 때는 가솔(家率)이라고도 한다. 가족은 인류의 발생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발생된 가장 오랜 집단이며 어떤 사회·시대에나 존재하는 기본적인 단위이다. 이 같은 보편성과 영구성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기능면에서 다양성을 보여준다. 즉, 사랑과 애정을 공급하는 정서적 기능, 자녀 출산 및 양육이란 교육적 기능, 이윤 창출과 소비를 공유하는 경제적 기능, 노동을 통한 생활의 봉사적 기능, 하나님을 예배하는 종교적 기능 등이 있다. 가족은 형태 및 기능에 있어서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서 다양하지만 사회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보편적인 단위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현대 사회의 변화와 개인의 욕구가 다양해지면서 기능이 변화, 축소되고 있지만 가족이 사회의 기초단위로서 영속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는 창조주가 인간을 위해 설계한 첫 조직체이기 때문이다.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선교사의 책무

Out of sight, out of mind! 인간은 멀리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선교사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낯선 타향으로 가는 자이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 형제와 작별을 해야 한다. 형제들이야 장성하여 저마다 자리를 잡고 살기 마련이다.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은 상심이 크실 수밖에 없다. 형제간이 많은 집안이야 두루 부모님을 보살필 수 있지만 독자를 둔 가정에서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피차간에 부담이다. 이때 사명을 받은 선교사는 대해 어떠해야 하는가? “무릇 내게 오는 자가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무조건 인륜을 저버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주의 나라와 의를 앞세우라는 데 방점이 있다. 성경은 명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은 인륜의 첫 계명이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친히 본을 보여 주셨다. 주님은 부모를 부양하려 하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정죄하셨으며(막7:5, 10-13)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실 때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다(요19:26, 27). 사도 바울도 부모를 공경에 대한 “가정생활지침”(household codes)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파송 받기 전에 부모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무리 선교가 중요하다 해도 의탁할 곳 없는 노부모를 방치하고 떠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젊은 선교사야 이국에서 일속에 파묻힐 수 있다지만 그 부모는 죽는 날까지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나님은 그렇게 냉혹한 분이 아니시다. 또한 선교사는 선교지에 간 후에도 가족을 틈틈이 살펴야 한다. 선교사가 이국 만리에서 어떻게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을까? 중보기도와 말씀을 전화와 편지를 통해 그들이 주안에서 서도록 돕는 것이다. 가족 영혼구원과 신앙성장을 위해 현지인을 향한 1/10 정도의 마음이라도 배려해야 한다. 자녀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는 선택이 아니라 인륜의 첫 도리이다.

동행하는 가족에 대한 선교사의 책무

동행하는 가족이란 주로 선교사 자녀들 MK(Missionary Kids)을 말한다. 저들은 부모를 따라 어쩔 수 없이 선교지에 가게 된다. 어린 나이에 사전 준비도 없이 타 문화권에 맞닥뜨려지게 된다. 낯선 언어와 환경으로 인한 문화적 충격은 산술적으로 계산하기 어렵다. 선교사의 자녀는 헌신자가 아니다. 저들에게 선교사처럼 동일한 사명과 헌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사인 부모의 일차적인 책임이 막중하다고 볼 수 있다. 선교사역에 있어서 자녀들은 잘 키우면 선교를 위한 재목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저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가? 첫째는 신앙인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비록 저들이 피동적으로 선교지에 갔다 할지라도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아를 발견케 하면 된다. 그러면 저들이 삶의 현장 가운데서 인생의 주체로서 서게 된다. 기도와 말씀이 몸에 확실히 베이고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야생초처럼 키워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coram Deo)가 답이다. 둘째는 한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체성의 혼돈은 자녀들을 방황하게 한다. 이를 위해 한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언어의 수준만큼 문화와 동질성도 깊어지게 된다. 한 방편으로 자녀들의 모국방문을 주선하는 것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기 때문이다.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선교지에서 방문하는 단기 선교팀과 함께 공동의 한국문화 체험 학습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는 국제인으로서 양성하는 것이다. 타문화에 대한 선별적 수용은 타문화에 대한 장단점을 비교 선택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소화하며 자기 개발에 힘쓰도록 도와야 한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지 그것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가운데 미래의 이상을 품게 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현지 언어와 영어는 필수적이다. 아무리 신앙 있고 마음이 착하다 해도 준비되지 않으면 주의 일꾼으로 쓰임 받을 수가 없다.

맺음 말

선교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자가 아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인척의 돌볼 속에서 성장한 자이다. 오늘 한 사람의 선교사가 있기까지는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 이에 선교사는 비록 부름 받아 먼 타향으로 있다 할지라도 부모형제와 골육을 한 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교사가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영적으로 돕는 것이다. 그들이 주님을 닮아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족으로서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는 문안 차원이 아닌 사역을 의미한다. 또한 선교사는 같이 있는 자녀들을 한 동역자로 바라보며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부모의 바통을 이을 차세대 지도자들이다. 먼 미래를 예견하며 하나님이 쓰실 만한 재목으로 키워야 한다. 선교사의 주된 책무는 당연히 현지인들을 선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제사장적 책무도 무시해서는 아니 된다.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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