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과 선교

송종록 목사 (대학선교, Ph.D)

2017년도 부활절은 4월 16일이다. 이때가 되면 교회와 선교지마다 여러 행사로 북적거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부활절 아침 연합예배이다. 여기저기서 잔치도 하며 채색된 계란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금번 절기가 또 하나의 연례행사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과연 부활신앙이 있는가? 성도들의 가슴과 얼굴에 부활의 소망과 환희가 있는가? 솔직히 우리에게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부활의 생명이 별로 없다. 대다수 크리스천들은 불행히도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교회가 제 구실을 못하고 세상의 손가락질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내면적인 부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절기는 신앙적 구습과 매너리즘의 구각을 깨뜨리는 좋은 기회이다. 마른 뼈처럼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영적 패잔병들이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예수부활의 증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새롭게 변혁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예수 부활의 역사성(歷史性)

예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다. 이것이 곧 기독교의 두 기둥이다. 그 중에서도 부활이 없으면 십자가 사건은 한낮 해프닝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구속 자체가 무효화된다는 말이다. 오직 부활로 인하여 그의 하나님 아들 되심과 구속 주 되심이 공인되었다(롬1:3-4). 말하자면 부활은 “다 이루었다”(요19:30)고 외친 성자 예수의 선언에 대한 성부의 화답인 셈이다. 그렇다면 예수 부활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부활에 대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빈 무덤, 부활의 주님을 목격한 증인들(고전15:5-8), 사도들의 극적 변화, 초대교회의 설립, 주일 제정 등 헤아릴 수 없다. 또한 예수 부활에 대한 증인들이다. 헬라어로 ‘증인’(μαρτυ?)이란 영어에서 ‘순교자’(martyr)라는 말이다. 순교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부인할 수 없어서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다. 누가 거짓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겠는가? 예수님의 부활 이후 오늘날까지 수천만 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부활의 증인들이 순교하고 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도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다(행9:1-18). 이 사건은 바울에게 있어서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완전히 뒤바뀐 생의 전환점이었다.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 H. Ridderbos는 “바울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속사의 중심사건이며 또한 바울의 설교와 가르침 전체의 중심이다”이라고 했다. 그렇다.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은 그의 삶과 사역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만일 바울에게서 부활신앙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바울이 되었을까? 이는 비단 바울 사도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택함 받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3년 동안이나 주님과 함께 지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도나 믿음, 헌신, 권세 등에서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자리다툼이나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했다. 의심 많던 도마, 성질 급한 베드로 등 모든 제자들이 피장파장이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과 성령을 받은 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다. 절망에 빠졌던 이들이 영적 전사로 돌변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에 몸을 던졌으며 종국에는 대부분 순교했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선교사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개신교 최초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제물포 항에 도착했다. 그들은 영적 흑암의 권세에 놓여있는 조선 민족을 바라보았다. 그때부터 이 민족에게 천국문이 열리고 복음이 선포되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머나먼 이 땅에 왔는가? 왜 1년 365일 중 부활절 아침에 도착했는가? 그들은 부활 신앙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만일 천국이 없고 예수 부활이 없으면 그들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부활신앙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본 것이다. 선교는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권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에게 미래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며 샘플이다. 고전15:23에 보면,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 부른다. 무슨 뜻인가? 과수에 열매가 처음 열리면 다음에 계속 열릴 것을 암시한다. 하나의 사인(Sign)이요 보증이다. 우리는 언젠가 썩지 않고 죽지 않고 강하고 아름답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그 때는 사망 끝, 질병 끝, 고난 끝이다. 완전한 치유이며 창조의 원형으로 회복이 된다. 또한 이 부활은 현재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 부활은 우리 신앙에 역동적인 에너지가 된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마28:20)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 하겠다고 말씀하셨다(요14:18). 성령은 예수의 영이요 부활의 영이다. 육체를 입은 주님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으셨으나 이제 영으로서 무소부재하며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다.

부활신앙의 실제

부활신앙을 소유하면 어떤 특징이 있는가? 첫째는 승리(勝利)이다. 인류에게 최대의 적은 죽음이다. 죽음은 인간을 절망하게 한다. 죽음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간다.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없다. 아니 작은 문제만 생겨도 버거워 한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통하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다. 그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예수부활은 죽음에 대한 생명의 승리요, 죄에 대한 거룩의 승리요, 불의에 대한 진리의 승리요, 미움에 대한 사랑의 승리이다. 둘째는 성결(聖潔)이다. 성도들은 거룩한 성령님이 내주하며 장차 부활할 몸이다.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현세가 전부이다. 그러나 성도는 현세도 중요하지만 영원한 내세를 바라본다. 따라서 부활 신앙인은 늘 조심하고 성결한 삶을 살게 된다. 셋째는 헌신(獻身)이다. 현명한 사람은 미래를 내다본다. 성도는 미래의 천국과 부활이 있기에 오늘 거룩한 투자를 한다. 부활의 주님은 선교 명령을 주셨다. 선교는 교회의 특권이요 축복이다. 부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이 사명을 위해 가든지 보내든지 순교자적 각오로 헌신하게 된다.

맺음 말

부활 신앙인은 어떤 자들인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산자들이다. 세상에 속했으나 세상을 초월한 자들이다. 영화로운 하늘나라를 내다보는 자들이다. 자기 힘이 아니라 부활 생명으로 사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한 그리스도의 대사들이다. 세상의 죄악을 통회하며 역사의식 가운데 사는 자들이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시온 산처럼 요동치 않는 자들이다. 주의 영화로운 얼굴을 구하며 이 땅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소원하는 자들이다. 자기 킹덤이 아닌 하나님의 왕국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죽음까지 초월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다. 초대교회 카타콤의 성도들이 그러했다. 일제 치하의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던 우린 선진들이 그러했다. 오늘 목회와 선교가 이러해야 한다. 아니 우리 크리스천 모두가 부활신앙으로 참 생명을 회복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 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요11:25-26).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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