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록 목사 (대학선교, Ph.D)
12월이다. 북반구에서는 눈 오는 겨울이다. 성탄과 연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배회한다. 끼리끼리 크고 작은 모임에 참석하느라 바쁘다. 가진 자들은 향락에 젖어 술잔을 높이 들 것이다. 그러나 빛이 강할수록 어둠도 짙다. 우리 사회에 그늘진 곳이 너무 많다.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사방에 있다. 이 때가 되면 그들은 더 추위를 탄다. 마음이 시리다. 더구나 이민자에게 연말은 외롭기 그지없다. 누가 이들을 보듬을 것인가? 교회이다. 교회가 성탄을 맞아 담장 안에서 축하공연으로 에너지를 다 쏟을 일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이다. 우리가 예수의 사랑으로 구제의 손길을 뻗쳐야 한다. 기쁨을 같이하면 배가 되고 고통을 같이 하면 절반이 된다. 이 참에 크리스천들이 취해야 할 구제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살펴보자.
구제의 정의 사전을 보면 ‘구제’(Giving, 救濟)란 ‘불행이나 재해 등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는 것'이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구제를 가리켜 쩨다카(צדקה)라 한다. 쩨다카의 본뜻은 '의로움, 공의'라고 할 수 있다. 원 뜻만 가지고 말하면 구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구제라는 용어로 사용하게 된 것은 유대인의 전통에 기인한다. 그들에게서 구제란 공의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의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를 돕고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것이 곧 공의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구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랑의 표현이다. 구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 곳에는 어떠한 조건도 들어가 있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덧입은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구제의 당위성 성경은 곳곳에서 그의 백성들에게 구제할 것을 명하셨다.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신15:10-11). 가난한 형제를 향해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악한 눈으로 대하거나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구제하지 말며 궁핍한 자를 향해 손을 펴라(신15:7-11)고 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 2:15-17).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히13:16)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도 가는 곳마다 구제사역을 펼치셨다. 따라서 크리스천은 구제할 의무가 있고 또 필요한 사람은 부끄러움 없이 구제 받을 권리가 있다.
구제대상 일반적으로 빵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재정 능력이 안 되어 학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를테면 불의의 사고를 만나 자립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다. 생활 능력이 없는 고아나 과부 그리고 소년소녀 가장이다. 일을 할 수 없으며 도저히 혼자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여 얼마든지 일할 수 있으면서도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은 구제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 오히려 자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구제의 방법 목적이 좋으면 그 방법이 좋아야 한다.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6:2-4). 구제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외식이다. 외식이란 두 마음을 품는 것이다. 순수성이 사라진 구제는 거지에게 주는 적선과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값싼 구제로 매스컴에 자신이나 단체의 이름을 들어내는 것을 절제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의도와 배치되며 도움을 받는 이에게 부끄럼과 부담을 주게 된다.
구제의 모범적인 사례 자선(慈善) 냄비는 구세군 사관 조지프 맥피(Joseph McFee)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1891년 성탄이 가까워 오던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시 빈민들과 갑작스런 재난으로 슬픈 성탄을 맞이하게 된 천여 명의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했었다. 그는 오클랜드 부두로 나아가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을 다리를 놓아 내걸었다. 그리고 그 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을 끊게 합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성탄절에 불우한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만큼의 충분한 기금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웃을 돕기 위해 고민하며 기도하던 한 사관의 마음이 오늘날 전 세계 100여 개국으로 확장되었다. 구제의 손길은 매년 성탄이 가까워지면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타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든다.
유대인의 8가지 구제원칙 유대인들은 남을 돕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다. 구제의 방법에 많은 신경을 쓴다. 상대방을 도울 때 그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무척이나 배려한다. 여기 8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가장 높은 구제의 단계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어 사업을 일으키게 하거나 동업 또는 직업을 구해 주어 구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경우이다. 둘째는 돕는 자나 도움을 받는 자가 서로 모르는 상태에서 도움이 이루어지는 경우이다. 구제를 받는 사람은 누가 자기를 도우는 지 모르기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 받을 일이 없다. 셋째는 돕는 자는 누구를 도우는 지 알지만 도움을 받는 자는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는지 모르는 경우이다. 넷째는 도움을 받는 사람은 자기를 돕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누구를 도우는 지 모르는 경우이다. 다섯째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으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주는 경우다. 여섯째는 어려운 사람의 요청을 받고 직접 돕는 단계다. 일곱째는 자기가 도울 수 있는 양보다 적은 양을 돕되 기쁜 마음으로 돕는 경우이다. 여덟째는 가장 낮은 단계로서 무뚝뚝한 태도로 돕는 경우이다.
맺음 말 이 세상에서 구제를 가장 잘 하는 민족은 유대인이다. 그들은 철저히 모으고 절약하며 가치 있는 곳에 통 크게 봉헌한다. 그들에게 구제는 의무요 일상이다. 천주교회도 구제 면에서는 개신교를 앞선다. 존 칼빈은 교회가 '말씀, 성례, 치리'를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행이란 덕목을 넣지 않았다. 그것은 가치가 가벼워서가 아니다. 교회가 위의 3가지 항목은 성실히 수행하면 선행은 자연히 열매로 맺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명문화되지 않는 선행은 기독교회에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선행으로 대표적인 것은 구제이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선교와 구제를 멈춰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요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우리는 구제가 비단 절기뿐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 습관화 되어야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우리 사람은 누구나 구제할 것은 없어도 도둑맞을 것은 있다고 한다. 비록 나의 작은 보화라 할지라도 더 필요한 이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은 복이다. 우리 크리스천은 사랑하지 않고도 줄 수는 있으나 주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다. 구제는 선교의 연장선에 있다.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