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祖國)에 대한 선교사들의 책무

송종록 목사 (대학선교, Ph.D)

2016년 들어 조국, 대한민국이 흔들리고 있다. 북한은 금년 9월 9일 5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진도 5.0이었다. 3일 뒤 12일에는 한국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는 1978년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력한 규모였다. 우리 한민족의 터전인 조국 땅이 북과 남에서 연거푸 흔들린 것이다. 헌데 요즈음에는 땅보다 더 중요한 민심이 흔들리고 있다. 최순실이라는 한 여자가 통치권의 정점에서 국정농단을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강남 아줌마가 5천만 명의 안위가 달려있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들쑤셔놓을 수 있단 말인가? 국민들은 하도 어이없어 허탈해 하고 있다. 이에 11월 5일에는 광화문에서 20만 명이 모여 대통령하야를 외쳤다. 설상가상이라고 했던가? 요즈음 우리 경제도 심상치 않다. 세계 최고 브랜드를 자랑하는 삼성이 갤럭시 노트7의 250만대를 리콜하고 있다. 7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 또한 여러 가지로 낙마처럼 얽힌 국정이 걱정이다.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대한민국이 통째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때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선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조국에 대한 선교사들의 책무는 무엇인가?

선교사와 조국

조국(祖國)이란 무엇인가? 이는 인간이 태어나 자라온 나라를 의미한다. 해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조국이라는 말과 고국(故國)이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모국(motherland)이라는 말을 선용한다. 하여튼 인간에게서 조국은 나서 자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자손만대의 행복이 담보되는 곳이다. 따라서 조국은 어머니처럼 언제나 우리를 감싸주는 안식처로서 신비스런 힘을 지닌다. 만일 조국이 없었다면 나의 가정과 교회도 있을 수 없다. 이에 조국을 부정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자기 나라가 없는 인간은 불행하다. 집 없는 고아와 무엇이 다르랴! 조국이 없는 인간은 마치 길가의 조약돌처럼 빛을 잃고 나뒹굴게 된다. 지금 지중해를 떠도는 수많은 시리아 난민들을 보라. 이런 점에서 선교사들에게도 조국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들은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아 교회의 지원 속에 단체로부터 파송을 받은 자들이다.

선교사의 주된 임무는 이방인 구령사역이다. 그렇다할지라도 선교사는 항상 조국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선교사에게 조국은 돌아갈 고향이요 기댈 언덕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인 볼테르 (Voltaire)의 말이 새롭다. “조국이란 인간의 마음이 묶여 있는 곳이다. 따라서 조국을 품고, 조국을 사랑하고, 조국에 마음을 바치고, 결코 조국을 잊지 말아라”고 했다. 우리 선교사들에게 꼭 한 말처럼 들린다.

바울의 동족사랑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바울은 계속적으로 배교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서는 유대 민족을 위해 다음과 같이 절박한 기도를 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9:3). 그는 이방인 구원을 위한 사도로 소명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 일을 수행함에 있어 동족으로부터 끊임없는 박해를 당했다. 그에게서 동족은 원수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다. 모세는 우상숭배의 죄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가운데 지면에서 멸절될 수도 있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본인의 생명을 내 놓고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 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컨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 참 신앙은 이처럼 자기가 속한 민족공동체나 국가에 대해 애정을 수반한다. 이렇게 쓰임 받았던 인물들은 수 없이 많다. 이스라엘의 포로기에 다니엘, 느헤미야, 에스더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안창호, 이상재, 이승훈, 조만식 선생 등 신앙적인 지도자들도 하나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민족애를 가진 분들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선교사는 섬기는 현지인 못지않게 조국을 사랑하는 자이다.

공동 운명체

이스라엘의 지혜서 `탈무드`에 보면 몸 하나에 머리가 둘 달린 뱀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한 마리일까? 두 마리일까? 가장 간단하게 식별하는 방법은 뜨거운 물을 양두사의 한쪽 머리에 퍼붓고 나서 반응을 보면 된다. 한 머리가 고통스러워하는데 다른 쪽은 태연한 자세로 있다면 두 마리의 뱀이다. 그러나 두 머리가 동시에 고통을 느낄 때 양두사는 한 마리라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임을 검증하는 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혈통을 중시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민족 정체성이다. 만일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인이 전쟁으로 고통 가운데 있다고 가정하자. 헌데 멀리 다른 나라에 있는 유대인이 동시적으로 고통을 느낀다면 그들은 유대인이다. 그러나 아무리 혈통이 같다 할지라도 본토의 유대인과 동고동락하지 아니할 때는 유대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리가 있다. 민족 정체성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한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한민족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민족을 사랑하며 국가와 함께 연합되어 있는 자이다. 아무리 한국여권을 가지고 있다 해도 조국을 등지고 소 닭 보듯 하면 진정 한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문제의 진단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미국을 보자.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는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는 미국만이 아닌 국제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온 연쇄적인 경제위기를 낳았다. 이 사태는1929년의 경제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계적 금융 혼란을 초래한 것이다. 그 시발점은 무엇이었나? 건국 가치인 신앙이다. 미국의 청교도적 신앙이 무너지니 퇴폐 문화가 범람했고 이런 윤리적 파탄은 탐욕스런 자들에 의해 경제파탄으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현재 위기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바라보면 뿌리가 깊다.

누가 지금의 통치자를 뽑았나? 대통령을 보좌하는 각료와 비서진 그리고 집권여당은 무엇을 했나? 심심찮게 국가VIP을 모시고 조찬기도회를 한 교회 지도자들은 무엇을 했나? 자고로 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권력 앞에는 사람들이 긴다. 고양이 앞에 쥐처럼 조용히 눈치 보며 자기 뱃속만을 채우기 쉽다. 그래서 충신을 찾기 어렵고 간신들이 득실거린다. 20대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300명이다. 이들 중 개신교인만 25% 인 75명이다. 가톨릭까지 합산하면 100명이 넘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1/3이상이다. 현재 국회의장과 여당 대표 그리고 총리도 크리스천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집권 여당과 정부 각료 그리고 청와대 일꾼 가운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포진해있다는 말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최순실의 실태를 알고 있었다. 헌데 그 누구도 의로운 양심과 신앙으로 직언하지 않았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오호통재라.

나라사랑 민족사랑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다. 세계 4대 열강이 포위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땅이 큰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중국,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센 미국, 세계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이 있다. 인구로 치면 20억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셈이다. 이 열강들은 저마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고 있다. 더구나 우리 머리 위에는 핵폭탄을 가진 북한이 있다. 북한은 우리 동족이지만 주최사상으로 뭉친 예측하기 힘든 집단이다. 따라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이끄는 리더십은 탁월해야 한다. 순진한 유비보다 조조 같은 지도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힘을 합쳐도 버겁다. 헌데 이렇게 국론이 분열되고 불의가 판을 쳐서야 되겠는가? 우리 인간은 시류에 편승해 쉽게 정죄하고 돌을 던지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크리스천들은 더욱 절제해야 한다. 두 말하고 싶으면 한 말만 하고, 한 말하고 싶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낳다. 그 힘으로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탄원해야 한다. 기도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다. 미국이 영국과 독립전쟁이 치열했을 때 보좌관들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찾았다. 그는 억수같이 내리는 비속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부관들이 웬일이냐고 하니까 "모든 행사가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독립하는 것은 군사력이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가 조국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맺음 말

일반적으로 선교사는 예수 이름으로 타 민족을 섬기는 자이다. 그들 중 어떤 이는 현지 나라 국적을 취득한 자도 있다. 그렇다할지라도 선교사는 그 나라 국민이얼 정 현지나라 사람은 아니다. 표범이 엉덩이에 있는 반점을 바꿀 수 없듯이 태생적 민족은 바꿀 수 없다. 문제는 정체성이다. 선교사는 동족과 함께 오늘의 자기가 있기까지 요람이 되어준 조국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바울과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다 그러했다.

선교사는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았다. 조국의 터전에서 태어나고 국가의 보호 속에 자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조국에 빚진 자이다. 따라서 선교사는 현지인 사역 못지않게 조국을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어렵다. 평시도 그렇거니와 위기 때에는 더더욱 기도로 나라사랑 민족 사랑을 표출해야 한다. 자기 자신은 물론 현지인에게도 우리민족과 열방을 향해 중보하도록 요청할 필요가 있다. 비단 눈앞의 문제뿐만 아니라 멀리 통일한국이 이루어져 선교한국으로 들림 받도록!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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