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와 선교

송종록 목사

(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모르게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 문화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사고의 틀을 갖추는데 기초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현지인의 사상과 생활 속에 배어있는 전래문화를 모르고서는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선교를 위해 타문화권에 뛰어든 사람은 맞닥뜨린 현지의 문화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는 내용과 형식에 따라 존중하거나 갱신 아니면 타파의 대상일 수 있다. 아무튼 인간 사고체계를 겹겹이 감싸고 있는 문화를 우리는 학자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생명의 씨앗을 심기 위해서는 엉겅퀴나 돌짝밭을 좋은 토양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교사가 먼저 겸손하게 현지 문화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영적 통찰력 가운데 멀리 문화사역까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문화는 인간의 산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그 문화의 포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선교적 시각은 무엇인가?

문화의 정의와 특성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Culture)라는 단어는 숭배를 뜻하는 ‘칼투스’(Cultus)에서 유래되었다. 선교학자인 루이스 루즈베택(Louis Luzbetak)은 “문화란 삶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했다. 루즈베택이 내린 정의처럼 클리포드 길츠(Clifford Geertz) 역시 문화는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는 내면적인 생각의 문제, 태도, 지식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문화란 용어는 하나의 농축된 개념이다. 이는 개체적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성격이 강하다. 즉, 문화란 한 사회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적 가치체계의 표현이며 생활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문화는 동적(Dynamic)이며 통합적(integrated)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문화는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정체성과 안정감 및 영속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문화의 핵심은 우주의 본질과 인간의 위치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로서의 세계관이다. 그 세계관은 종교적일 수도 있고 세속적일 수도 있다. 문화는 크게 유형문화와 무형문화로 나눈다. 유형문화는 무형문화의 최소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문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심층적인 세계를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예화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온다. 그는 유산을 탕진하다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 돼지와 같이 쥐엄 열매를 먹으며 생활했다는 내용이다. 돼지는 더러움의 상징성이 있다. 하지만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에게 돼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치 그 이상이다. 아주 즐겁고 복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 곳에서는 한 여인이 자기 아이와 새끼 돼지를 양쪽에 안고 젖을 물리는 그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나라에서 돼지는 부와 행운의 상징 및 사랑스러운 동물로서 묘사된다. 반면에 이슬람 또는 유대주의 문화권에서는 돼지가 부정한 짐승이요 경멸의 대상이다. 이렇듯 문화는 지역과 종교, 인종에 따라 음식문화, 종교의식, 가치관, 생활관습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만일 우리가 세계로 나아갈 때 문화의 영역을 무시한다면 오해하기 쉽고 나아가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계는 넓고 다양한 문화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현지 문화를 경시한 선교의 결과

과거 제국주의 시대는 식민 통치자들의 힘을 등에 업고 선교가 진행되었다. 당연히 그들은 서구 문화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선교사들은 복음을 서구 문명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현지의 전통문화가 안중에 없었다. 그것은 저등한 타파의 대상일 뿐이었다. 결과 기독교가 토착화되는데 어려움이 있어왔다. 아직도 많은 국가에서 기독교를 서양 종교라고 여기고 있다. 그것은 현지문화를 배타시 한 결과이다. 오늘날의 선교현장은 많이 발전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토착민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선교사들은 자기 몸에 밴 문화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열심이 특 심인 한인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선교현장은 자국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선교에 있어서 비본질적인 것에 목숨을 메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

문화에 대한 폴 히버트(P. Hiebert)교수의 견해

첫째로 복음은 모든 인간 문화들로부터 구별되어져야 한다. 오늘날 선교사역에서 크게 실수하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복음과 인간문화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자주 복음과 그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동일시 할 때가 있다. 그 결과로 토착문화를 정죄하게 되고 마침내 문화제국주의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둘째로 복음은 인간 문화로부터 구별되지만 역시 문화적 형태로 표현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복음은 사람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형태로 성육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이 한 문화권 속으로 성육화하는 과정을 우리는 ‘토착화’(Indigenization) 또는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고 부른다. 모든 문화가 각각 복음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셋째로 복음은 모든 문화가 변화되기를 요구한다. 궁극적으로 복음은 각 개인의 죄성(罪性)에 대하여 정죄하는 것처럼 인간들이 만든 구조악(構造惡)에 대해 정죄한다. 복음은 참으로 문화 변형적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문화를 통해서 풍요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전달되어져야 한다.

전통 문화 가운데 선교방향

선교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선교는 개체적 인간뿐만 아니라, 그 인간을 형성하여 왔던 문화 역시도 선교의 대상이다. 그래서 개인의 삶이 존재론적으로 변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 공동체도 변혁을 전제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지의 타파해야 할 문화가 있고 복음 안에서 갱신해야할 문화가 있다. 우상을 숭배하며 인간의 생명을 해하고 복음을 적대시하는 사탄의 문화는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건강한 미풍양속의 문화는 존중하며 복음으로 승화되도록 도와야 한다. 여기에 모든 기준은 성경이다. 성경은 토착화 신학의 알파와 오메가이며 초문화적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성된 문화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인간을 복되게 할 때 바른 귀결점이 있다.

맺음 말

문화를 알면 선교가 보인다. 전통 문화를 모르면 선교가 겉돌게 된다. 현지 문화에 대한 정복적 시각은 문제가 크다. 필연코 마찰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선교사는 정복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이다. 영토나 문화를 점령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수용적 시각은 혼합주의를 유발하게 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문화사역은 절대 진리를 훼손하게 된다. 복음적 시각이 바른 태도이다. 그것은 말씀이 신앙화 되고 신앙이 생활화 되며 생활이 문화화 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선교 궤적은 사탄이 함부로 침노할 수 없다. 만일 말씀이 문화로까지 연결되지 못하면 그 선교는 당대로 끝나기 쉽다. 세대가 바뀌면 모든 것이 원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교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는 문화로 정착해야 한다. jrsong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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