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과거와 미래라는 이중성을 띄고 있다. 이에 우리 크리스천들은 두 가지 시각으로 살아야 한다. 당장 주님이 내일 오실 것처럼 진지한 태도와 함께 앞으로 천년, 만년 후에 오실 것을 대비해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종말론적으로 주님의 재림은 선교와 직결되어 있다. 그 날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편만이 전파될 때”(마24:14)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지구촌에는 약 2/3의 절대 인구가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있다. 지금의 선교확장 속도라면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그렇다면 오늘 선교의 주역들이 물러나면 누가 이 사역을 계승할 것인가?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를 비롯해 세계교회는 선교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다. 그 여파로 선교 헌신자의 비율도 감소하고 있다. 양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장기보다는 단기, 그리고 젊은이보다 고령화가 추세이다. 큰 집은 한 순간에 지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대를 이어 지어야 한다. 지금 1세대가 아무리 힘 있고 사역이 화려하다 할지라도 바톤을 이를 차세대 주자를 예비시키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무엇이든 맥이 끊기면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한인교회는 열방을 향해 수평적 선교를 하는 것 못지않게 한편으로 내일의 기업 이를 자를 위해 수직적 선교를 해야 한다. 그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 자녀세대요, 그 중에서도 MK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선교사 부모들을 통해 예배해 놓으신 세계선교의 희망이다. 문제는 그들을 어떻게 주의 일꾼으로 키우느냐에 달려있다.
MK들의 실태 MK란 선교사 자녀(Missionary Kid)를 약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부모가 선교사로서 해외로 이주해 타 문화권에서 자라났거나 아니면 그 곳에서 태어난 자들이다. KWMA 통계에 의하면 2015년 말로 파송된 한인선교사는 171개국에 27,205명이다. 그리고 MK들은 18,543명이다. 적지 않는 수다. 이들의 실상은 어떠한가? 이들은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많은 어려움 가운데 놓여 있다. 정체성의 혼란, 현지적응 실패, 언어습득 어려움, 우울증, 수시로 바뀌는 생활환경, 극심한 재정난 등에 다중적 고통을 겪고 있다. 따라서 심한 경우 탈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혹자는 그들이 부모의 대를 이어 선교하면 좋겠다고 소리치지만 실제 헌신자는 많지 않다. 한국선교연구원(kriM)에 의하면 한인MK들중 2012년까지 2.3%만이 선교사로 헌신해 타 문화권으로 가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대 다수 MK 들이 한참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MK들의 열악한 환경 MK들이 안고 있는 제반 문제의 원인은 첫째로 가정환경에 기인한다. 부모 된 한인 선교사는 거의 가 일 중심적이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오직 현지인 사역을 위해 쫒기 듯 부담 가운데 살아간다. 자녀들은 사역에 밀려 늘 뒷전이다. 아직까지는 한인 선교사 문화가 그렇게 가정적이지 않다. 이로 말미암아 MK들의 마음이 공허하다. 둘째로 생활환경에 기인한다. 이들은 이질적인 타 문화권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린 아이 때부터 현지 말 한마디 못하면서 그 나라 유치원이나 학교에 강제로 밀어 넣어 진다. 한 가지 언어도 정리가 안 되는데 한국어, 현지어, 영어라는 3중 언어에 시달려야 한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다른 낯선 이들과 어울려야 하는 환경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셋째는 사회 환경에 기인한다. 선교사는 희생이 미덕이다. 그래서 선교사 자녀들도 부모들처럼 희생해야 된다는 분위기 속에 함몰되어 있다. 행여 MK들이 도덕적으로 모나거나 좋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경우에는 쉽게 눈총을 받기 일쑤다. 선교사는 성인이며 헌신되었기에 난관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MK들은 아직 어리며 헌신자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MK들에 대한 선교적 고찰 “너는 MK이기 때문에 네 부모처럼 무조건 선교지로 가야 한다”라고 몰아붙일 필요가 없다. 이는 비 성경적이다. 인간의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과 은사를 띄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간의 진로는 자라온 환경과 무관치 않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우연이란 없다. MK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선교사로서 소명 받을 기회와 준비됨이 크다. 선교사 부모를 두고 타 문화권에서 자란 것이 어찌 우연이랴! 과연 하나님께서 이들을 제쳐두고 누구를 차세대 선교주자로 부를 것인가? 설령 헌신한다 해도 그들은 모든 것이 맨 땅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MK들은 신앙과 현지 문화와 언어 위에서 기초를 하고 있다. 100m경주라면 이미 절반 이상의 앞에서 출발하게 된 것과 같다. 만일 이들이 선교사로 헌신한다면 그 잠재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따라서 부모 된 선교사는 자기 자녀 중 적어도 한명이라도 풀타임으로 헌신하도록 하나님께 탄원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자녀들에게도 선교적 DNA가 전가되도록 힘쓸 필요가 있다.
MK들을 위한 교회의 대책 좋은 일꾼은 어느 날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산고의 수고를 곁들어 투자해야 한다. 한국 피겨의 여왕인 김연아 같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은 일찍이 가정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리고 학교와 국가차원에서 가능성을 보고 아낌없는 투자를 했다. 이렇게 인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동네경기 입상자 이상이 될 수 없다. 어떻게 선교과업을 이를 차세대 일꾼들을 키울 것인가? 첫째로 선교사 부모의 역할이다. 부모는 자녀를 낳고 적어도 고교까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때 신앙인, 한국인, 현지인으로서 균형 잡히게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수직선교의 일환이다. 둘째는 파송 선교회의 역할이다. MK들을 위해 부모가 할 수 없는 교육적 대책을 세우고 추진하는 것이다. 모국방문 추진, MK수양회, 여타 자녀교육과 관련한 프로젝트 등이다. 셋째는 후원이나 자매 교회의 역할이다. 그것은 MK들을 미전도 종족 입양하듯 일정기간 입양하는 것이다. MK들은 선교사들의 자녀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자녀들이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는 혈통을 초월한다. 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국제인으로서 설 수 있도록 교회가 짐을 나누어질 때 하늘에서는 환호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
맺음 말 화란의 대표적 철학자인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다. 그는 순간적 지구 변화에 연연하지 않고 갈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선교에 심혈을 기울려왔다. 그 결과 선교사 파송 2위국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를 변곡점으로 젊은이들 중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는 자가 별로 없다. 이 흐름대로라면 우리의 선교미래가 상당히 어둡다.
새로운 대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모세를 이은 여호수아처럼 차세대 선교의 주역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모자리판이 여기 있다. 이들은 2만 명에 육박하는 예비 된 MK들이다. 과제는 이들을 어떻게 하나님이 쓰실 만한 정금으로 단련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인교회가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은 MK에 대한 그간의 무관심, 무대책, 무능력이란 3무에서 탈피해 그들과 함께 선교의 백년대계를 꿈꾸는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