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누군가 인생을 축구경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예선전, 전반전, 후반전, 연장전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태어나서 20세까지는 부모와 선생님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예선전에 해당된다. 20-40세는 혈기왕성한 전반전이고 40~60세는 사회의 중견인으로서 결과물을 내야 할 후반전이다. 그리고 은퇴연령인 60세 이후는 연장전이라고 말한다. 상당히 일리가 있다. 또 다른 선교적 관점이 있다. 인생을 전반과 후반으로 나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반기는 자아 중심의 성취를 위한 삶이었다고 한다면 후반기는 하나님 중심의 헌신된 삶을 의미한다. 아무튼 현대는 의학과 식품의 발달로 100세 시대가 되었다. 옛날의 60세가 80세가 된 것이다. 요즈음 누가 60세에 환갑잔치를 하는가? 문제는 사회구조이다. 인간의 생체리듬과 수명은 확연히 달라졌건만 그 구조는 산업화 시대의 형태와 별로 차이가 없다. 한국에서는 보통 50대에 은퇴를 한다. 60대를 넘을 경우 눈치 밥을 먹어야 한다. 교회 안에는 어떠한가? 사회에서만큼 차별은 없지만 그래도 보이지 않는 냉대가 있다. 시니어 중 선교사로 나간 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설 마땅히 자리가 마땅치 않다. 이래저래 시니어들의 고독과 번민이 깊어져가고 있다. 이는 시니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와 국가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이 계층에 대한 선교적 방안은 무엇인가?
시니어들의 실태 오늘의 시대, 시니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은 살아 있는데, 체력도 있는데, 마음은 청년 때나 똑 같은데, 의욕도 있고 많은 지식과 노하우도 있는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그냥 밥이나 먹고 조용히 지내라는 분위기다. 그런가하면 언론이 종종 ‘생산성 없는 소비집단’이라고 시니어들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한다. 보라! 땅 위의 화려한 고층건물은 지하의 기초공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문명은 시니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터에서 발전되어왔다. 교회적으로도 시니어들은 헌신과 수고의 몫을 다 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부흥 된 한국교회도 없었을 것이다. 헌데 지금 시니어들은 할 일이 없다. 갈 곳도 없다. 기껏해야 맥도날드에서 동료들끼리 무료한 시간을 보내거나 아니면 취미생활이나 여행 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이는 시니어 입장에서 불행이고 교회나 국가차원에서는 손실이다.
시니어들의 역할 사례 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 어떤 직업보다 많은 격무에 시달리며 세계를 여행해야 한다. 이는 아무나 할 수 없다. 근자에 미국인의 가장 사랑을 받은 대통령은 레이건 이다. 그의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1978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중거리핵전력폐기조약'(INF Treaty)을 맺어 냉전을 종식시킨 것이다. 그는 제40대 미국 대통령으로서 1981년-1989년까지 재임했다. 이때 나이는 70-78세이었으며 연임까지 했다. 한국의 김대중 씨는 15대 대통령이었다. 그는 IMF를 해결했으며 남북 화해를 시도했다. 그의 재임 기간은 1998년 2월-2003년 2월까지이다. 나이로는 74~79세였다. 정주영 씨는 현대그룹의 창업주이며 한국 산업화의 기수로서 대표성을 띄고 있다. 그가 세계의 이목 가운데 1998년 6월 16일 판문점을 통해 통일 소 500마리를 끌고 북한으로 갔다. 이 때 그의 나이는 83세였다. 그는 나이 들어갈수록 더 왕성하게 일을 했다. 방지일 선교사는 103살까지 비행기를 타고 세계 여러 곳을 순회하며 말씀을 선포했다. 그 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 갈렙은 85세에 “이 산지를 주소서”라고 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120세 까지 사명을 감당했다. 이 밖에도 노익장을 과시한 인물들은 수없이 많다. 생물학적 나이는 그야말로 나이일 뿐이다. 젊다고 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들었다고 일 못하는 것도 아니다.
시니어들의 장, 단점 첫째, 시니어들은 가정사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특히 자녀출산, 부양이나 교육적 책임에서 해방된다. 둘째, 시니어들은 어느 정도 재정적인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간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이나 부동산 그리고 연금 등이 있기에 후원비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셋째, 시니어들은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진 경험과 지식, 전문성이나 기술 등은 선교지에서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넷째, 시니어들은 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다. 가까이는 가족들로부터 친지나 교우들 그리고 사회활동에서 알게 된 죽마교우들이 있다. 시니어가 선교지에 가있으면 자연히 그 인적 자원들이 연결되기 마련이다. 다섯째, 시니어들은 종말론적 시각이 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주를 위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러므로 시니어들은 사역에 집중할 수가 있다. 이에 비해 그들은 단점도 있다. 즉, 현지 언어학습이나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건강문제로 자주 귀국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고착화된 사고나 권위의식이 있다. 수직적 관계중심의 한국문화와 정서에 익숙해있기에 그것이 자칫 젊은 선교사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
크리스천 시니어들에 대한 선교적 대안 첫째는 시니어 자신들의 역할이다. 본인 스스로가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계수하며 설계를 해야 한다. 인생은 그 누구도 대신 책임져 줄 수가 없다. 구체적으로 은퇴 이후를 대비해 철저히 준비가 필요하다. 어디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할 것인가? 만일 은퇴 후 선교적으로 헌신하기를 원한다면 미리서부터 희망지역에 단기사역을 지속하고 자기의 전문성을 개발해야 한다. 현지에 파송된 후에도 독자적인 사역보다 선임 선교사와 함께 팀워크를 이루어야 한다. 이때도 주도적 사역보다 보조자로서 질서를 존중하며 항상 사랑과 섬김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둘째는 현장에 이미 나가 있는 선교사들의 역할이다. 시니어 사역자들의 체력과 은사에 맞게 적재적소에 안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의사 결정을 같이 하며 종종 사적으로 자문을 구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선교기관의 역할이다. 많은 시니어들이 선교적 비전을 가지고 있으나 자신에게 적합한 사역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선교지에서도 잘 준비된 시니어 인력이 필요함에도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이러한 점에서 양쪽의 요구를 접목해 줄 수 있는 일종의 선교 복덕방 같은 통합적 사역기관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시니어 사역자들을 발굴하고 훈련하여 장, 단기적으로 파송하는 것이다.
맺음 말 아프리카 구전에 의하면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고 했다. 시니어들의 존귀함을 강조함이렸다. 이제 교회나 국가는 은퇴한 시니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그들을 예우해야 할 노인으로 보기보다는 사명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시니어 계층은 우리 사회에 부담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선교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사람의 나이에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주님의 지상명령에는 사실 나이에 대한 언급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에 요구되는 것은 자연적 나이가 아니라 순도의 헌신과 준비 됨이다. 그런 점에서 시니어들은 선교적으로 중요한 인재 풀(Pool)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이 오대양 육대륙으로 나가 선임자와 묶어져 하나의 선교 용광로(Melting Pot)를 형성할 때 한국인 세계선교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