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 선교전략 연구소)
크리스마스! 12월이 되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세상은 성탄 분위기로 바꾸어진다. 성탄의 계절이 되면 신자가 아닌 이들도 괜스레 흥겨운 축제 분위기에 들뜨게 된다. 솜 털 같은 흰 눈, 휘황찬란한 불 빛, 자극적인 음악, 군밤 굽는 냄새, 포장마차, 팔짱을 낀 연인들의 겨울 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낭만적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불빛 반짝이는 성탄 추리와 캐럴 송은 성스런 제단보다 백화점이나 술집에서 더 요란하다. 이에 사람들은 배회하는 불나방처럼 무리지어 다니며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여러 모임들을 갖기에 바쁘다. 크리스천들은 교회와 성당을 찾아가 아기 예수 나심을 기리며 기뻐한다. 일반인들은 식당이나 주점 등에서 정든 이들과 함께 회포를 풀며 위로와 함께 낙(樂)을 누리려 한다. 이 때가 되면 사람들은 성령이나 술 아니면 뭔 가라도 취하기를 원한다. 한 해를 날려 보냄이 아쉬워서일까? 혹은 흘린 땀에 비해 손에 쥔 것이 없어서일까? 이래저래 성탄의 계절은 우리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한다.
크리스마스 유래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의 합성어로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를 의미한다. 이를 통칭 성탄절(聖誕節)이라 하며 기독교의 최대 축제일이다. 크리스마스의 기원은 2015년 전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날로 기인한다. 하지만 역사적인 유래는 크게 두 개의 시각이 있다. 하나는 교회의 전통 가운데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로마제국의 전통 가운데 그 절기를 흡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아무튼 이 날이 사람들에게 공적인 축제로 시작된 것은 교황 율리오(Julius) 1세가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한 AD350년부터이다. 성탄절은 본래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기독교와 서구 문명이 퍼지면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편적 명절로 토착화되어왔다. 대한민국에서는 1949년부터 “기독탄신일(基督誕辰日)”이란 이름하에 국가적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이제 성탄절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모든 인류에게 하나의 축제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문화
첫째는 성탄트리(X-Mas Tree)이다. 이는 옛 게르만인들이 악령을 막기 위해 성탄절과 주님 공현 대축일 사이 열두 밤 동안 푸른 나뭇가지를 집안에 걸어두던 풍습에 기원을 둔다. 푸른 나뭇가지는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아 엄동설한에도 굴하지 않는 삶의 신비한 힘을 상징한다. 성탄나무에 달린 장식용 구슬들은 생명의 열매를 나타낸다. 또 초와 전구로 성탄 나무를 밝히는 것은 춥고 어두운 밤을 빛 추이는 예수의 사랑을 의미한다. 둘째는 캐럴(Carol)이다. 이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사람들이 동짓날 춤을 추며 부르던 노래에서 유래한다. 교회에서는 5세기경부터 불려졌다. 초기에는 거의 구전으로 전해졌는데 종류가 500여곡에 달했다. 중세시대 급속히 확산되던 캐럴은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엄격주의를 주창한 개신교도들이 그 것을 '비종교적 노래'로 규정하고, 대신 '시편성가'를 보급했기 때문이다. 이후 18세기 캐럴 복원운동이 일어나면서 19세기부터는 다시 널리 불려졌다.
셋째는 산타클로스(Santa Claus)이다. 그는 붉은 옷에 흰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로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분으로 상징된다. 원래 산타클로스는 4세기 소아시아 리키아 미라에서 활동한 성 니콜라우스를 가리킨다.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했던 성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던 이웃집 자매를 도와주기 위해 묘안을 짰다. 깊은 밤 그 집 지붕으로 올라가 굴뚝으로 금이 든 주머니를 내려 보낸 것이다. 우연히도 금 주머니는 세 자매가 벽난로에 걸어놓은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굴뚝 속 산타크로스와 양말 속 선물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한다. 넷째로 이 밖에 성탄 음식으로 칠면조구이나 크리스마스 푸딩, 케이크를 먹곤 한다. 그리고 예쁜 성탄 카드에 마음을 담아 서로 위문하는 문화가 일반화 되어 있다.
성탄의 계절에 인간의 실상
크리스마스! 이 뜻 깊고 사색적인 계절에 우리들의 심령은 어떠한가? 부요하며 안녕(安寧)한지? 만일 안녕치 못하다면 무엇 때문인가?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인가? 아니면 얽히고설킨 문제 속에 있어서인가? 본시 인간은 태생적으로 안녕할 수가 없다. 죄와 사망의 덫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는가? 끝없는 탐욕으로 치열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 아래 현대인은 심신이 지처 있다. 안녕을 추구해왔건만 오히려 인간의 굴레에 갇히고 말았다. 그간 모든 철학과 종교는 안녕을 위해 무던히도 투쟁해왔다. 이는 아래로부터 위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신은 인간의 구원과 안녕을 위해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 오셨다. 그러므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없는 성탄은 알맹이 없는 빈 강정과 다를 바 없다. 높고 깊은 신적 은총과 의미를 망각한 체 세류에 휩싸여 떠내려가는 인생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밤 문화가 화려하고 우리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할지라도 곧 청명한 아침이 오기 마련이다.
성탄을 맞이하는 크리스천의 자세
2015년 크리스마스! 그리스도 예수의 나심이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했다. 여기서 평화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들은 곧 메시아를 구주로 영접하고 경배하는 자들을 일컬음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천박한 가치에 혼을 팔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산타나 외형적인 크리스마스 문화가 아니다. 인간 중심의 문화에 가려져 말구유에 나신 아기 예수가 안 보인 것은 문제이다. 우리는 차가운 지성 뜨거운 감성으로 인간을 위해 오신 평강의 왕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구세주가 없는 인간은 땅에서의 수고가 헛되다. 참된 평강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를 떠난 유아가 어떻게 평강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또 한 해를 마감하는 세모에 우리는 먼저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인 죄를 털어 버리고 평강의 왕으로 심령을 채워야 한다. 그리고 시야를 돌려 힘들어하는 우리 이웃들을 보아야 한다. 이 땅에 소외되고 천대받은 사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배회하는 사람, 그늘 진 곳에서 눈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이 교회에 기대하신 것은 주님을 예배하며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헌데 교회가 세상에 담을 쌓고 끼리끼리 모여 떡을 떼며 잔치로 일관할 때 주님을 그 교회를 어떻게 보실까?
맺음 말 올 해도 뜻 깊은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성탄의 의미는 한 마디로 평강이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평안하지 않다. 메시아를 거부하고 탐욕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 세계가 평안할리 없다. 그것은 더하기 인생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식물을 더하고 지식을 더하고 재물을 더하고 사람을 더하고 명예를 더해왔다. 거라지(garage)에 잡동사니 물건이 꽉 차 있듯이 인간의 심령이 그러하다. 문제는 인간이 이렇게 땅의 것으로 가득 채워왔건만 평안은커녕 오히려 번잡하다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하늘의 영역을 대신 채울 수 없다. 이제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탄을 맞이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뺄 필요가 있다. 단출하고 가벼운 인생살이가 복 되다. 나아가 우리의 보화를 이웃과 함께 나누며 구세주 탄생 소식을 알려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Merry X-Mas)! 이메일: jrsong00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