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성경공부(하)

박종순 목사 (충신교회 원로)

대부분 교회 밖의 성경공부가 지니는 약점은 반 교회적이거나 교회론이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교회를 강조하다 보면 설 자리가 허약해진다. 그들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했고 교회 인적 자원을 다양한 이유로 포섭해 자기네 단체에 헌신하도록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든 성경공부는 교회 중심이라야 한다. 교회를 멀리하고 떠나가게 하는 성경공부일수록 내용과 성격, 목적과 과정이 문제가 된다.

어떤 목회자의 경우 한 성경공부에 참석한 후 강한 도전을 받고 교회로 돌아와 광고를 시작하고 수강생을 모집했다. 성경공부로 모이는 날은 수요일 기도회 시간으로 정했다. 평소 수요일 기도회에는 150명 정도가 모였다. 그런데 성경공부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나자 100명으로 숫자가 줄고, 10주가 되면서 70명으로 줄어들었다. 필자에게 그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안 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과 젊은이들은 직장 때문에 수요일 밤 예배 출석이 어렵고 나이 든 노인 그룹이 수요 예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성경공부를 한다며 신청하라, 등록하라, 교재를 구입하라, 매번 출석을 부른다, 빠지면 안된다 하면서 부담을 주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따라가려니 힘들어진 것이다. 거기다 교재도 청장년층이나 적응이 가능한 것을 선택한 탓으로 진도 맞추기도 힘들어졌다. 다시 말하면, 관심과 흥미 유발에 실패한 것이다. 필자는 그에게 수요 예배를 환원하고 성경공부는 교회 상황과 교인 수준을 고려하고 연구한 후 시작하도록 하라는 충고를 준 일이 생각난다.

성경공부는 필요하다. 개인과 교회공동체의 성숙과 부흥을 도출하고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공부가 최상의 방편이거나 출구전략인 것은 아니다. 어떤 목회자는 “성경공부 합시다. 사복음서 공부 시작합니다”라며 시작한 사복음서를 채 끝내지도 않고 바울 서신으로 갔다가 성경 파노라마로 넘어가는 하면, 이것저것을 편력하기 때문에 단 한 가지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 교회 교인들 말에 따르면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끝내 본 일이 없었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 벧엘성경공부나 크로스웨이 성경연구 제 1회 수료증을 받았다. 크로스웨이의 경우는 교회에서 시작한지 1년 지나면서 수강생이 8백여 명으로 불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가급적 교재는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유는 교회 토양에 맞는 교재라야 하고 담임목사가 직접 만든 요리를 식탁에 올려야 된다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근자에 이르러 여과 과정도 거치지 않고 토양 검증도 없이 외래 수입상품을 밥상에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아무개 교회가 그것으로 성공했다고 하면 무조건 교회현장으로 끌어들이는 목회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수입상품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좋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유대인을 한 권의 책과 한 채의 집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한 권의 책은 성경이고 한 채의 집은 성전을 말한다. 그러나 저들의 성경은 신약이 없고 성전은 그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다. 성전을 재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곳엔 모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고난의 역사를 넘어 유대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성경공부였다.

한국교회 역시 선교 초기부터 전개된 성경공부가 든든한 초석을 쌓았고 건강한 성장을 견인했다. 그러나 반드시 경계할 것은 성경이 교리나 교단을 수호하는 증빙고두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단의 특징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성경을 증빙전(證憑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목사가 삼가야 할 것은 성경공부라는 명패를 내걸고 이곳저곳을 편력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인들이 조심할 것은 성경공부가 교회생활의 이력서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만난 어느 교인의 고민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유명하다는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등 10여 개의 수료증을 받았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민을 와 교회를 찾는데 이민교회 어느 곳을 가도 만족이 없고 수준 맞는 교회가 없어 한국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성경공부라는 과정과 제자훈련이라는 절차를 거쳤을 뿐 성경공부의 결과인 변화와 섬김의 제자도를 외면했다. 다시 말하면 쓸데없는 자존심만 키웠고 기독교 지식인이라는 허세만 키웠다. 그런 성경공부는 의미도 없고 그런 류의 제자훈련은 득보다 실이 크고 가치도 없다. 성경공부 2년 했다고 사람이 변하고 신앙이 변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삶의 변화와 신앙의 갱신을 촉발하는 강력한 파워는 성령과 말씀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그 증거를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성경공부는 필자의 목회에 청아한 윤활유였다. iamcspark@hanmail.net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