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정 목사 (주성선교교회 담임)
여러분의 이마에 ST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창피해서 아무 곳도 나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이것이 초기 청교도들 중에 Sheep thief 즉 양 도둑에게 이니셜로 ST를 이마에 찍고 다니게 한 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두 사람의 양 도둑이 ST란 낙인을 받았는데 둘 중의 한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 먼 곳으로 도망 다니면서 못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사람은 마을사람에게 불행한 일이 생기면 가서 다 도와주고 대신 아파해주고 대신 매맞아주고, 누가 임종하면 슬픈 사람 옆에 사흘이라도 같이 있어줍니다. 그러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많이 흘러 사람들은 양 도둑이라는 의미의 ST를 성자(Saint)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도둑놈이 성자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그냥 되었을 까요? 그는 숫한 회개의 삶의 노력과 훈련으로 변화 되었고 결국 성자란 칭호를 받게 된 것입니다. 훈련을 통해 결국 변화된 것이지요.
변화하는 시대를 사는 사람 가운데는 3부류의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1. 변화의 시대와 상관없이 그냥 흘러가는 사람 2.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주하는 사람
3. 변화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어야할까요? 모두가 3번을 말씀하셨는데 왜 3번이어야 합니까? 이것에 대한 대답을 창세기 1:26에서 잘 가르쳐주신다고 믿습니다. 창1:26절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하시면서 사람을 다스리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다스리는 존재는 변화에 반응하지 못하면 다스릴 수 없고, 변화에 뒤 떨어지면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스리는 자로서 끝없이 변화하길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보면 가나안이라는 새로운 변화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봅니다. 그들이 아무리 2세들이라고 해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로,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한 것을 직접 본 자들이요, 아니면 그런 사건을 수 없이 부모님께 듣고 자랐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모압에서 가나안 땅, 새로운 땅을 바라보며 새로운 변화 앞에서 그들은 22절에 “정탐하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변화에 대해 두렵고, 불안하고, 겁을 내고 있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새로운 변화가 겁이 나고 두려워 하는 것을 봅니다. 어쩔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서기위해 성화(제자)훈련으로 가는 길이 필요한 줄 알고 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우리도 불안합니다. “얼마나 시간을 내야 할 지, 이러다 성경에 빠져 사모가 된다든지, 목사가 되는 건 아닌지, 맹신자가 되어 도로에 뛰쳐나가 ‘예수 믿으세요!’ 하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예수 믿는 사람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내가 있게 되는 건 아닌지, 분명히 또 숙제 내어 줄 텐데 학교 다니면서도 숙제한 것도 모자라서 이 나이에 또 숙제 하리!” 하면서 아마 여러 가지로 생각이 들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뿐만 아니라 우리 교역자도 교인들이 힘들진 않을까? 이렇게 훈련한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텐데 중도 포기하면 아니 함만 못하는데...하면서 또 과연 잘 따라 올 수 있을 까?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저는 성경 속에 베드로를 훈련시켜 가시는 예수님을 생각해봅니다.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의심 없이, 겁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무식하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바다에 풍덩 뛰어듭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지지 않고 물위를 걷고 있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신이 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 바라보고는 걷고 또 걸었습니다.
몇 발자국이나 갔을까요? 그는 자신이 물 위로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는 예수님을 보는 것을 놓치고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보게 된 겁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치는 순간 그는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물에 빠져 죽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다가가서 베드로를 건져 주셨다고했습니다. 그리고는 물위에서 예수님과 베드로는 포옹을 하면서 아마도 이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베드로야! 정말 놀랬지, 정말 죽는 줄 알았지, 하시면서 베드로야 난 네가 자랑스럽다 왜냐하면 나를 보고 물위를 걸은 사람은 너 한 사람 뿐이니까!” 하시면서 물에 빠진 사건보다는 예수님을 보고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칭찬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로 이 상황이 지금 우리 이민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인 예수님의 제자를 키우기 위해, 흠이 없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숙시키기 위해 성화(제자)훈련 더욱 열정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과 똑 같다고 봅니다. 따라서 오늘 바로 이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우리게 한 마디 말씀을 하신다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이렇게 말씀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내 사랑하는 이민교회 성도들아, 이스라엘 백성처럼 정탐하지 말고 베드로처럼 그냥 나 만 보고 한 번 해보렴, 너희들이 잘하면 내가 칭찬해주고 하다가 잘 못하여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면 내가 건져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라는 음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사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삶이라면 이 우리 이민교회가 적든, 크든 성화(제자) 훈련 시스템을 하다가 어려움이 생기고, 힘든 일이 생겨서 베드로처럼 물에 빠지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온전한 제자로 살아 기쁨을 드리겠다는 선한 마음, 선한 동기를 보시고 어떡하든 하나님은 우릴 건지시고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바울도, 요셉도, 아브라함도, 오늘 본문의 모세도 여호수아도 갈렙도 훈련의 기간이 다 있었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실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성령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분이요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나를 먼저 변화시키고 제 가정과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길 원합니다. 예수님께 여러분의 삶을 내어 드리길 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돕고 결국엔 변환된 그리스도인, 성화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하게 하실 겁니다. 도우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을 다해 구원을 우리에게 이루신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세우실겁니다. 온전한 성화(제자)훈련으로 이민교회는 예수님의 제자로 넘쳐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가 오리라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과 함께 변화를 위한 훈련이라는 황금 길을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