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그림선교교회)
한 현인이 친구 몇을 다음 날 저녁 식사에 초청을 해 놓고 자신의 하인에게 장에 가서 제일 좋은 것을 사다가 음식 장만을 하도록 지시했다. 다음날 주인은 그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았다. 다섯 개의 코스로 음식이 나오는데 모두 다 혀로 요리한 것이었다. 참다못해 주인은 하인을 불러 다그쳤다. “자네, 내가 장에 가서 제일 좋은 것을 사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하인이 대답하기를, “주인님, 저는 말씀하신 대로 장에서 제일 좋은 것을 사 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혀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습니까? 혀는 매우 사교적이고, 설득력이 있고, 친절하며 또 예배하는 일에도 사용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주인은 이렇게 지시했다.
“그렇다면 내일은 장에 가서 제일 나쁜 것을 사다가 음식을 준비하게!” 다음 날 주인이 친구들과 다시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몽땅 이런저런 모양의 혀로 된 음식만이 올라왔다. 다시 화가 난 주인은 하인을 꾸짖었다. “내가 이번에는 장에 가서 가장 나쁜 것을 가져다가 음식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하인이 이렇게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않았습니까? 혀처럼 나쁜 것이 어디 있습니까? 혀는 모욕적이고, 중상을 입히는 것이고, 거짓된 것이니까요.”
결국 우리가 혀를, 즉 입술의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것이 될 수도 있고 가장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이러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 18:21) “이것(혀)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야고보서 3:9-10) 오늘 우리가 함께 대하는 잠언의 말씀은 지혜와 화평의 입술(말)에 대한 귀한 교훈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먼저, 진실을 말하는 입술이다.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12장 17절)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12장 19절) 거짓말을 하려면 이중기억력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진리와 거짓 둘 다를 기억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계속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 앞선 거짓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러기에 거짓말의 입술을 가진 자는 늘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거짓을 매우 엄하게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속된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새 하늘과 새 땅)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요한계시록 21:27)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입술을 가진 자는 마음에 자유함과 평안함이 있다. 다른 사람과 의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세상을 밝게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 미움이 아니라 기뻐하심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한다. (잠언 23:15-16)
둘째로, 지혜와 화평의 입술은 남을 세워주는 말을 한다.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잠언 12:18) 격려와 칭찬, 사랑과 축복의 말은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비난과 험담은 남을 깎아내리며 상처를 주는 말이 된다. “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상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건을 이야기하고, 협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남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는 격언이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에게 상처와 불화를 가져다주는 비난과 험담, gossip의 말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그것이 나에게까지 올 때 나에게서 멈추게 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어떤 미국 목사에게서 얻은 지혜를 소개한다. 그 목사는 어느 사람이 자신에게 전화를 하여 “이런 이런 사람에 대해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하고 이야기를 꺼내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잠깐만요, 나중에 당신에게서 들은 이야기라고 해도 좋은 것입니까? (May I quote you?)” 그렇게 하면 보통은 긴 침묵이 흐른단다. 그리고 난 후, 상대방이 “그것은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응답하면, “그렇다면 제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중단시킨단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과 축복의 말을 나누기에도 모자라는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입술은 비난과 험담을 멀리하고 격려와 사랑으로 남을 세워주는 말을 하는 입술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이사야 50:4)
셋째로, 지혜와 화평의 입술은 화평을 주도하는 말을 하는 입술이다. “악을 꾀하는 자의 마음에는 속임이 있고 화평을 의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느니라.”(잠언 12:20) 화평케 하는 자(peacemaker)의 삶은 참으로 고귀한 것이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유명한 팔복에도 이와 같이 기록되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9) 집을 건축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재료, 도구와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집을 허무는 것은 망치 하나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쉽게 다툼과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본다. 반대로 한번 깨어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는 공동체의 일치와 화목을 위해 혀를 삼가 조심해서 사용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공동체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매우 지혜로운 일이 되는 것은 “화평을 논하는 자에게는 희락”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지혜와 화평의 입술은 불평의 말을 삼가고 감사의 말을 하는 입술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한 번은 늘 불평을 잘 하는 남자가 일행 몇과 함께 지방으로 휴가를 떠났다. 하루는 저녁 늦게 어느 촌에 들어가 하룻밤 잘 곳을 찾아야 했다. 찾고 찾다가 겨우 한 허름한 여인숙을 찾았다. 그 여인숙에 들어서면서 불평 많은 남자가 여인숙 주인에게 물었다. “이 돼지우리 같은 곳에서 하룻밤 자는 데 얼마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상한 주인이, “한 마리 자는 데 이만 원, 두 마리 자는 데 마리당 만 오천 원이요”하고 대답했다. 손님들은 매우 기분이 상했지만 이미 밤이 늦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 날 밤 돼지가 되어 그곳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에 이렇게 잘 곳이 생겼으니 참 고맙소”하고 여인숙 주인에게 말을 건넸으면 얼마나 좋은 시작이 되었겠는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시작도 먼저 이미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특히 예수 안에서 얻게 된 구원과 영생에 대해 감사로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찾아오게 됨을 경험한다. 서로에게 불평의 말보다는 감사의 말을 먼저 건네는 가정, 원망보다는 고마움을 전하는 대화의 교회의 삶에 기쁨과 화평이 있게 마련이다.
지혜와 화평의 입술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된 말, 험담이 아니라 격려의 말, 이간이 아니라 화목의 말, 불평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힘쓰는 입술임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자신의 입술을 지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야고보서 3:2)고 야고보 사도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시편 기자와 같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매일 드리며 참 지혜와 화평의 입술로 자라가기를 애써야 할 것이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시 1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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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