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보다 더 나은 자

잠언 16:32
지용수 목사

(한국 양곡교회)

어느 원주민들은 문명인들의 생일잔치를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의문을 제기한답니다. 

‘사람이 노력해서 가치 있는 일을 했을 때, 노력해서 발전했을 때 축하하고 잔치를 해야지, 가만히 있어도 오는 생일에 왜 잔치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깊이 생각해 볼만한 그들만의 철학인 것 같습니다. 베드로 후서 3장18절에 보면 “오직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이 자라가고, 빛과 소금된 삶이 자라가고, 기쁨이 커나가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축하할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여러분이 찾으시는 은혜를 주시고 또 여러분을 자라게 하실 줄 믿습니다. 말씀으로 인해 날마다 강한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우리 중 어떤 것에 화를 내고 분을 내어 일을 망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오늘 이 말씀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서 용사는 보통 용사가 아니라 역전의 용사, 굉장한 장군을 뜻합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127도를 다스리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이었습니다. 감히 그 나라를 엿볼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평안하니 즉위 3년에 그는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후 와스디 후궁에서 여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왕은 그 자리에서 자기 아내 와스디를 자랑하고 싶어 왕후를 청하라고 명합니다. 그러나 와스디는 “내가 술집 색시냐?”고 화를 내며 불복종합니다. 이 일로 왕후의 위를 폐하고 쫓아냅니다. 왕후 와스디는 화를 내어 쫓겨나는 여자가 되고 아하수에로 왕 역시 분노 때문에 아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화를 내면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역대하 26장에 웃시야 왕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웃시야 왕이 어릴 때는 그의 아버지 아마샤왕처럼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블레셋과 아라비아와 마온을 치게 합니다. 웃시야가 다스리는 나라가 점점 강성해지고 농사도, 축산도 잘 됩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큰 바윗돌을 쏘고 던질 수 있는 대포까지 만들자 그 소문이 원방에 퍼져 감히 그 나라를 엿보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강성해지니 왕이 교만해 집니다. 그래서 제사장만 들어가서 분향할 수 있는 성소에 들어가 자기가 분향하려 합니다. 그때 용기 있는 제사장들이 말렸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고 화를 냅니다. 그 즉시 하나님은 그를 나병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별궁으로 쫓겨나 죽을 때까지 외롭게 살았습니다. 웃시야왕은 화를 내다가 건강도 왕의 자리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분을 급히 내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잠언 12:16)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야고보서 1:4)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분을 내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화를 낼 자리, 분노를 터뜨릴 자리에서도 주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얻는 것이 많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을 빼앗는 자는 명장입니다. 옛날 성은 여리고 성처럼 성벽이 두터워 정복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은 ‘Mind’가 아니라 ‘Temper(기질)’을 뜻합니다. 

‘나는 기질이 이렇다, 나는 취향이 이렇다, 나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것이 기질입니다. 

본문의 ‘마음’은 바로 이런 성질을 뜻합니다. 이런 성질, 기질을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핑계대지 말고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마음은 열 때 열고, 닫을 때 닫아야 합니다. 항상 열려 있거나 항상 닫혀있는 창은 창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열어야 하고 유혹의 바람이 올 때는 닫아야 합니다. 마음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 성을 빼앗는 사람보다 더 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선하고 아름답고 겸손하게 지켜 놓으면 우리에게서 귀한 것이 나옵니다. 

잠언 16장 24절에 “선한 말을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선하면 그 말이 선한 꿀 같아서 듣는 사람들이 달게 듣고 살맛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기쁘면 기쁜 말을 하게 됩니다.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3장 1절에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안에서 기뻐하라”, 4장 4절에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또한 요한복음 15장 11절에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기쁨이 가득해야 합니다. 성도의 마음은 기쁨으로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도 행복하고 장수하고 우리 가족도, 우리교회도 기뻐하게 됩니다. 기쁨을 전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의학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의사 선생님이 “당신은 6개월밖에 살지 못합니다.”라고 할 때 그 말을 받아들인 사람은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답니다. 그러나 “오진이겠지. 내가 이렇게 건강한데 6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니”라며 그 말을 믿지 않는 사람은 3년, 4년도 더 산답니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마음 관리를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 관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야 결국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기도하고 화가 나며 분할 때 “주님, 주님!”해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고 유혹을 받을 때, 선악과를 따 먹고 싶을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한 집사님의 남편이 바람이 났습니다. 자존심이 상한 집사님이 “누구는 놀 줄 몰라서 안노는 줄 알아?”하며 차를 몰고 마산으로 향했답니다.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아무나 함께 놀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봉암 다리를 지나갈 때 성령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어디 가니?”, “다른 사람이랑 저도 놀려고 갑니다.”, “네 남편이 그런다고 너까지 그러니? 그러면 네 집은 어떻게 되고, 네 아이들은 어떻게 되겠니? 너는 구역장이고 집사인데 어찌 그러니?”, “주님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그랬습니다...”

그 집사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새벽에 들어온 남편에게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무나 붙들고 놀려고 나갔는데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돌아왔어요.” 그 말에 남편 얼굴이 빨개지며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남편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만약 그때 집사님이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나가서 아무나 붙들고 놀았다면 어찌되었겠습니까?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낫습니다. 그리고 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분을 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분이 날 때 기도하며 감정을 추스르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흔들릴 때 기도하며 마음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은 것을 길이길이 누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큰일을 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수있기를 축원합니다.   

0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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