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마음

열왕기상 3장 9-13절

구약 성경을 기록한 언어는 히브리어이다. 히브리어의 특징 중의 하나는 문장에서 동사가 먼저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사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한 히브리 동사는 추상적이 아니라 실제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움직이는 동사로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동사는 무엇일까? 유대인들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구약성경 본문은 “쉐마 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하는 신명기 6장 4-9절이다. 쉐마의 원형 동사가 히브리어로 샤마(שָׁמַע)인데, 이 단어는 hear(듣는다), understand(이해하고 깨닫는다), obey(순종한다)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정말 중요한 동사이다. 성경에서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느냐 청종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던 사람들이었다. 샤마–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되게 잘 사는 것을 원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자기의 방식대로 행복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무지개를 잡는 것처럼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허망하게 된다. 그 이유는 복되게 사는 진짜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되게 사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듣는 마음”이다.  

지혜의 왕으로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이 선친 다윗왕의 뒤를 이어서 왕이 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다. 솔로몬의 헌신에 감동하신 하나님은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셨다. 그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이 ‘듣는 마음’이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자 하나님은 그가 구한 것을 주시는데, 열왕기상 4장 29절에 보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같이 주셨다. 그 결과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 되었고 부귀와 영광을 누린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을 견고한 나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솔로몬 구한 것은 “듣는 마음”이었다. 여기서 ‘듣는’은 샤마의 분사형이다. 결국 솔로몬이 구한 것은 듣고 분별하는 마음이요, 듣고 순종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듣는 마음은 듣고 분별하는 마음이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잘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것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잘 분별하기 위해서이다. 열왕기상 3장 11절에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 듣는 마음을 백성들의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로 이해하셨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한대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셨다. 즉, 듣는 마음은 곧 분별하는 지혜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인 것이다. 

솔로몬왕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에 올랐을 때 백성들이 왕을 찾아와서 ‘솔로몬 왕 때에 우리가 노역을 너무 많이 했고 세금도 너무 과중했으니 그것들을 좀 감해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더욱 왕을 잘 섬기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르호보암왕은 백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 버거운 노역을 시켰고,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12개 지파 가운데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를 제외한 10개 지파가 여로보암으로 왕을 삼게 되어 이스라엘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된 것이다. 백성들의 말을 잘 듣고 분별하지 못해 나라가 분열되는 큰 아픔을 겪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솔로몬처럼 듣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혜로운 자이고 복된 자이다. 나라의 위정자들이 국민들의 소리를 듣고 국민들의 형편을 돌아보는 지도자라면 그 나라의 국민들이 평안함과 안전함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마음을 헤아리는 부모가 있고, 부모의 말을 듣고 그 형편을 돌아보는 자녀가 있는 가정은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넘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르호보암처럼 너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의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려고 한다.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만 행동하려고만 한다. 여기서 수많은 문제와 갈등과 대립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사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가정과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관계 속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듣고 분별하는 지혜 곧 듣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듣는 마음은 또한 순종하는 마음이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를 부르셔서 그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였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2:17-18상)는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놓았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8하). 여기서 준행하다는 말의 히브리어가 “샤마” 즉 들었다는 말이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들었음이니라.” 

쉐마–들으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요 우리가 축복을 누리는 길이다. 예수님은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요5:24).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영생을 얻고 또 복되게 사는 길은 바로 샤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신명기서에 보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들이 나온다. 그런데 신명기 11장 13절에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나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력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면....” 여기서 청종하다는 말은 영어로 earnestly obey라고 번역되었는데, 놀랍게도 이것의 히브리어의 원형이 앞에는 샤마의 부정사형이고 뒤에는 샤마의 미완료형이다. 즉, 이 말씀은 우리가 듣고 또 들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들었지만 지금도 들어야 하고 미래에도 우리가 축복을 누리며 사는 길은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데 있다는 뜻이다.    

사실 듣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출애굽기 3장 7-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 하노라”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고 건지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탄식과 눈물을 보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이것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듣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들의 말을 참 잘 듣는다. 한의원에 가도 마찬가지다. 진맥하고 침을 놓고 약을 지어주면 그대로 잘 따라한다. 그런데 만병의 의원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 듣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듣는 마음-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복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 

revkwak@gmail.com

03.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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