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디모데후서 4장 6-8절
조응철 목사

(라스베가스갈보리장로교회)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시기로 말미암아 체포되어 가이사에게 재판받기 위해 로마에서 옥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후 62년 경 로마감옥에서 풀려난 바울은 서바나(스페인)에 가서 복음을 전파한 것 같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서바나를 땅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후 66년-67년 경 네로 황제 치하에 바울이 다시 체포되어 옥중생활을 하면서 디모데후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후서는 “목회서신”이며, 또한 “옥중서신”입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를 기록한 후 네로 황제에 의하여 로마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서신” 중 최후에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기록한 바울의 유언적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기록할 당시의 바울의 형편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바울은 그 때 가장 외로운 형편에 있었습니다.

바울에게서 은혜 받은 모든 사람이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딤후1:15),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가에 갔고, 바울 곁에는 의사 누가만 있었습니다(딤후4:10-11).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자신이 치고 먹인 교회를 목회할 후계자인 디모데는 멀리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교회들을 돌보면서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생명 바쳐 설립한 교회들의 소식을 전해줄 사람은 오직 디모데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울은 외로운 나머지 디모데에게 두 번씩이나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너는 어서 오라”(딤후4:21)고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인생길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외로움, 곧 고독입니다.

2) 바울은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할 날을 눈앞에 두고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 오직 교회의 안전과 성장만을 생각하여 디모데에게 주의 교회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계하며 많은 것을 교훈하였습니다.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딤후1:13).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복음)을 지키라”(딤후1:14).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3:14).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주의 양 무리를 목양하는 목회자는 항상 교회의 안전, 건강, 성장을 위하여서만 일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자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어떤 경우에서도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생활 방법이어야 합니다. 결코 교회에 자신의 몸을 의탁하거나 믿을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예수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몸인 교회를, 주께서 피 흘려 구속하여 맡기신 주님의 양 무리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목사들의 자세여야 합니다.

3)이 편지는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4:22)라는 말씀으로 마감하였습니다. 편지의 수신자를 “너희”라는 복수로 부른 것을 보면 디모데만을 위한 편지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교인들”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경본문 중에서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말씀의 뜻을 묵상하면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영국의 Glasgow Bible College 교수였던 바클레이 박사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는 말씀에는 다음 네 가지 뜻이 있다고 해석하였습니다.

 

1. 정해진 코스대로(법에 따라) 달렸다는 뜻입니다.

 

경주자는 정해진 코스대로(법대로/하나님의 말씀대로) 달려야 합니다. 정해진 코스가 아닌 곳을 아무리 잘 달려도 아무 상이 없습니다.

언젠가 올림픽 달리기에서 1등한 선수가 후에 금메달을 몰수당하고 1등한 것 취소를 당했는데 그것은 법을 어겼기 때문이었습니다. 1등하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해진 코스, 곧 법대로 경기하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 지식, 정치가 세계의 선진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조국은 세계로부터 크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재계, 학계, 정계에서 잇따라 대형 사고가 터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한 코스대로(법대로) 하지 않고 남의눈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가장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가짜 성장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떠한 경우에서도 서두르지 마시고, 빨리 성공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정해진 코스대로, 법에 따라(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인생을 달려가십시오! 하나님이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섬기는 여러분, 오직 정해진 코스대로(하나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섬기십시오! 그런 사람에게 주님께서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2. 원거리 코스를 잘 달렸다는 뜻입니다.

 

단거리 선수도 귀하지만 장거리 선수는 더 귀합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숨이 막힐 것 같아도, 그 먼 길을 잘 참고 견디어야 훌륭한 경주자입니다.

육상경기의 꽃은 Marathon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합니다. 중간에 주저앉아 버리려는 싸움에서 이겨내야 완주할 수 있다고 합니다.

모든 신도들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장거리 선수라야 가치가 있고 귀합니다. 1년, 2년, 5년은 잘 달리다가 중간에 주저앉으면 보기에 흉하고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히12:1)을 실망케 합니다.

가룟유다는 3년쯤은 잘 달리다가, 막판에 가서 코스를 벗어났고, 중간에 주저앉아서 인류 역사상 가장 창피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의 경주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을 달리는 길고도 먼 장거리 경주입니다. 바울처럼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려야 합니다.

 

3. 많은 장애물들을 잘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장애물 경주는 실수하기도 쉽고 넘어지기도 쉽습니다. 

바울에게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들을 잘 견디고, 잘 통과하였습니다. 동족 히브리인의 장애물도 있었고, 유대인 율법주의라는 장애물도, 이방인의 장애물도 있었고, 핍박과 가난의 장애물이 있었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아니라는 비난의 장애물이 있어서 바울을 항상 괴롭혔고, 견디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라는 장애물 등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주 예수의 사랑에 압도되어 견딜 수 있었고,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는 중에 견딜 수 있었고, 주 예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함으로 견디어 낼 수 있었고, 날마다 전능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중에 최후 순교하는 날까지 잘 달려간 우리의 믿음의 대선배(大先輩)입니다.

예수의 뒤를 따르는 주님의 제자들 앞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고독과 고립의 장애물, 멸시와 천대의 장애물, 몰이해와 비난의 장애물, 마귀와 세상으로부터 오는 공격적 장애물, 죄와 싸우는 투쟁의 장애물, 주님이 주신 권위가 도전받는 장애물, 가문과 친족의 장애물, 유혹의 장애물 등등이 있고, 욥처럼 인간으로는 견디어 낼 수 없는 불치의 병이라는 장애물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인들은 무겁고, 거칠고,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예수께서 앞서 가신 길인 때문에 반드시 견딜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주께서 내 어깨 위에 지워 주신 십자가는 피할 수도, 바꿀 수도, 내려놓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그 십자가를 벗겨 주시면서 “이제는 편히 쉬어라”고 하실 때까지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예수를 사랑하기만 하면 예수를 바라보면서 그 어떤 장애물도 통과할 수 있습니다.

 

4. 완주자였다는 뜻입니다.

 

완주자를 영어로 Tape Cuter 라고 합니다. 아무리 잘 달렸어도 완주자가 아니면 실패자입니다.

언젠가 Marathoner 라는 영화를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달리기를 즐기는 한 청년이 1등으로 달리다가 뒤를 돌아다보는 순간 발이 돌에 부딪혀 쓰러지면서 몸 일부가 마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는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서기를 거듭하면서 저는 다리를 끌고 몇 시간이 지난 석양에 경기장 결승점 Tape을 끊었습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만장한 구경꾼들이 일제히 기립하여 칭찬과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경기장, 구경꾼 속에서 이것을 지켜보던 Marathon에 미쳐버린 남편과 별거 중이던 그의 아내가 경기장 안에 뛰어 들어가서 장애된 몸으로 완주한 남편을 자랑스럽게 부축하고 집에 돌아왔고 그들의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이를 때까지 완주자여야 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시오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완주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결승점은 갈보리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 흘리신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법대로 인생을 사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낮아지시고, 항상 배고프시고, 평생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은 30에 팔리시고, 십자가에 목 박혀 죽으시는 그 길고도 지루한 인생길을 잘 통과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Tape Cuter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습니다.

1. 정해진 코스대로(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달리십시오!

2. 원거리(장거리) 코스를 인내로써 잘 달리십시다!

3. 모든 장애물을 잘 극복하면서 달리십시오!

4. 완주자(Tape Cuter)가 되십시오!

그렇게 살면 “의로우신 재판장”,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의의 면류관”을 들고 기다리고 계시다가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1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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