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는 삶을 위하여

요한삼서 1장 1-4절
양민석 목사

(뉴욕그레잇넥교회)

2016년 12월 출간해서 2020년까지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에플 팟케스트비지니스 1억 뷰이상 다운로드를 받은 책이 있다. 세계적으로 각 분야에서 가장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200명을 만나 취재하고 잘 정리해서 내놓은 책이다. 바로 타이탄의 도구들(Tool of Titans)이란 책이다. 그 외에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은 성공에 관한 주제를 가진 책들이다. 

또 한쪽에 인기 있는 분야가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관심이 증폭되고 많이 찾는 책들과 강의들이다. 다름 아닌 건강에 관한 것들이다. “재산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점점 시간이 갈수록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그럼 이 같은 내용들이 세간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다름 아닌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이다. 매사에 성공적인 삶을 살고 싶고,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람과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이라고 다를까? 그렇지 않다. 기도제목들 들어보면 누구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공통기도제목은 범사에 잘되고, 건강한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본인도 그렇게 기도하고 서로 중보기도로 응원한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에 보면 사도요한이 쓴 편지 요한3서 2절에서 가이오를 위한 기도의 내용이 소개된다. 참고로 가이오라는 이름은 한국의 철수나, 영철이처럼 아주 흔한 이름이었는데 어떤 가이오를 말하는지 잘 알려있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한3서의 짧은 편지가운데 “사랑하는 가이오”라는 수식어가 3번씩이나 붙은 것을 보면 상당히 사도요한이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로 판단할 수 있다. 

아마도 초대교회 시절, 환난과 역경 중에도 충성스럽게 사역을 함께 해왔던 제자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요한은 본문처럼 더욱 진심을 담아 가이오를 축복하고 싶었고, 내용가운데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라는 기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소망처럼 ‘만사형통’, ‘무병장수’의 삶이 되기를 요한도 기도했던 것이요 성령에 감동된 요한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도 반영된 기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축복은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되고, 더 건강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님께 기도 안해도, 미신에게 빌어도 잘 먹고, 잘되고, 건강하게 살더라는 것이다. 

그럼, 오늘 요한의 기도는 가이오가 세상 사람과 똑같은 차원의 축복을 받으라고 기도한 것일까? 크리스천들이 받는 축복과 세상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 같은 종류로 주어지기를 기도한 것일까?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도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오늘 본문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그 앞에 전제로 붙어있는 단어이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말이다. 즉 세상일이 잘되고, 육신적으로 건강하게 되기에 앞서 먼저 네 영혼이 잘됨으로 인해 복이 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그렇다. 기독교 축복의 키워드는 영혼의 잘됨에 들어있다. 영혼이 잘못되면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과 더 멀어질 수 있기에 복이 아니라 저주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이란 무엇일까?

 

1)먼저 영혼은 창세기의 인간창조에서부터 설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 여기서 생기는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숨)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즉 인간생명의 뿌리는 하나님의 숨이요, 이것이 바로 영혼이며, 이 영혼이 인간육신에 들어갈 때 비로소 생령-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란 존재는 영혼이 육에서 빠져 나가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혼이 있어야 현세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죽음 후에도 영생과 심판이 있기에 제대로 관리해야만 하는 너무도 중요한 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사도 베드로는 (벧전3:3-4)“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했다. 즉 육신의 건강, 물질적인 삶에만 집중하지 말고 영혼관리에 진정으로 힘써야한다는 것이다.

 

2)또한 영혼이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부분이다. 본문에서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라고 할때, ‘잘됨’이란 단어는 원어, ‘성공’이란 뜻이 포함되어있다. 이는 하나님과 교제에 있어서 성공을 뜻하는 말이기도하다. 따라서 영혼의 잘됨은 하나님과 교제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우리는 각종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여질 때 우리는 진정한 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활발하여도 범사에 여전히 시험이 계속 될 수 있고, 질병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린시절 하나님으로 부터 꿈을 받은 사람이였다. 하지만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애굽에 팔려갔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노예가 되어 인정받을 정도로 성실한 삶을 살며, 하나님과 교제 속에 성결의 삶을 지키려했지만 오히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동조하지 않음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정말 분통터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따라온 것이다. 

다니엘은 날마다 하루에 3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성공적인 교제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사자굴에 던져져야했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선교에 불타 전도하던 중 질병으로 인해 힘들어짐으로 하나님께 3번씩이나 병 낫기를 간구하였다. 하지만 네 은혜가 족하도다 라는 응답 속에서 병을 안고 살아야했다.

이런 예들은 참으로 신앙의 모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성경은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더욱 분명하게 당신의 존재를 인생 한복판에 드러내주셨다. 어두워야 밤하늘의 달과 별이 더 선명히 드러나듯 인생의 어두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사랑을 더욱 잘 깨닫도록 해주셨던 것이다. 요셉은 노예로 있던 보디발의 집안에서 그리고 감옥에서 형통케 하심으로(창39:2-3, 창39:23),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알게 하셨고, 끝내 만인을 위한 총리가 되도록 하셨다. 

다니엘 또한 사자굴에 던져지는 시련을 통해서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명해 보였고, 이방 왕으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돌리도록 만드셨다(단6:13-20). 사도바울 역시, 고통을 통하여 겸손의 성품을 간직토록 하였고,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약함을 통하여 지속적인 능력사역이 가능케 되었음을 알게 하셨다(고후12:8-9).

따라서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기를 원한다는 말씀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성공적으로 잘되기 때문에 꼭 내 삶에 시험과 역경 자체가 다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전히 믿음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는 공격을 당하기도하고 교묘한 사탄의 계략이 성도들의 삶을 무너뜨리려 달려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성공적인 교제를 이루어가는 사람들은 바로 역전의 드라마를 경험케 하시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점점 더 강하게 세워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의 삶이 진정으로 잘되기 위해서는 영혼의 잘됨에 우선순위를 두도록 힘써야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영혼을 잘되게 만들 수 있는 것인가? 여러 가지 영적인 훈련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참된 예배를 세워가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일번지이기 때문이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성공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떤 예배일까? 를 성경에서 찾고 우리 영성에 담아내야한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성공적인 예배는 상한심령을 쏟아놓는 예배이어야 한다.

(시51:16-17)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심중을 드리는 예배, 깊은 샘에서 퍼올린 샘물처럼 내 깊은 영혼 안에 것들을 끌어올려 주님께 올려놓는 예배,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깨닫고 기도의 두레박에 영혼의 감사를 담아 올리는 예배, 죄로 인한 양심의 아픔을 눈물주머니에 담아 회개하며 드리는 예배, 예배중 주시는 레마의 말씀, 깨달음의 말씀으로 내 심중에 소망을 발견하며 새롭게 주님 뜻대로 살겠노라 결단하며 고백하는 예배…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에게 이런 예배가 회복되어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지는” 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원한다. 

lilyumc@hotmail.com

10.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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