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제국 남자들은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고분고분하던 아내들이 어느 날 갑자기 거칠어지기 시작합니다. 들려오는 아내들의 얘기로는 왕비도 왕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우리들 서민들만 남편 말 잘 듣고 고분고분 살 이유가 없다고 아우성을 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이민사회의 가정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500년전 BC 480년경 바사왕국 페르시아 제국 아하수에로왕 때의 일입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전쟁준비의 일환으로 인도로부터 구스 지금의 에티오피아까지 방백 15000명을 초청했습니다. 일단 먹여놓고 사기를 진작시키고 전쟁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나누어서 초청을 합니다. 180일간의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잔치가 다 끝나자 왕이 살고 있는 수산성의 대소인민을 위해 왕궁후원 뒤뜰에서 7일간의 잔치를 벌입니다. 이 잔치는 식구들끼리의 잔치입니다. 금으로 만든 잔으로 왕만 마시는 어주를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게 했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는 마시지 않게 했습니다.
우리 한국 분들은 술도 물론이거니와 음식도 억지로 권해서 조금만 더 드이소 물 말아서 다 드시지요 라고 하면서 결국 배탈나게 만듭니다. 당시는 마시고 싶지 않아도 왕이 마시면 같이 마시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마시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못 마시게 만들어버리기도 하던 때입니다. 그런 때에 ‘자유롭게 마시게 했다’ 라는 것은 굉장히 흥이 넘치고 특별한 잔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들에겐 항상 술이 문제입니다. 간이 작은 사람도 술만 들어가면 간뎅이가 부어서 객기를 부리게 됩니다. 왕은 누구보다도 더 와스디 왕비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도도하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고 이렇게 대가 센 여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습니다. 술 앞에는 많이 알고 있다 라는 사실이 무용지물입니다.
술만 먹으면 개차반이 되어버리는 얌전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조용하고 얌전하다가 술만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큰소리가 나오는 사람들도 흔히 봅니다. 바로 아하수에로 왕입니다 10절을 보면 ‘주홍이 일어나서’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직역을 하면 ‘술로 인해 기분이 좋아져서’ 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나치게 마셔서 온전한 정신을 상실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술 많이 마시고 캄캄해졌다’ 라는 것입니다.
어전내시 일곱 명에게 왕비를 데려와서 수도 없이 많은 하객들 앞에서 모델처럼 아름다움을 뽐내 보라고 합니다. 왕이 자랑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나에겐 이렇게 멋진 부인이 있다 라는 것입니다. 팔불출의 하나이지요. 그러나 왕비는 비슷한 시기에 왕만 잔치냐 하면서 다른 잔치를 배설하고 왕궁에서 부녀들을 모아놓고 신나게 놀고 있었습니다. 안팎으로 잔치를 벌이니 이집 구석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왕비는 왕의 명령을 거절합니다. 만약 왕이 혼자 가서 조용히 얘기하다 거절당하면 왕 혼자서 알아서 처리하면 기분은 나쁘지만 아무 일도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일곱 명이나 되는 어전 내시 앞에서의 망신은 도저히 그냥 넘어 갈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아랫사람들 앞에서 이런 망신을 당했으니 왕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굉장히 화가 났습니다. 12절을 보면 ‘중심이 불붙는 듯하여’ 라고 말씀합니다. 원어는 ‘속에서 불이 탔다’라는 말입니다 경상도말로 ‘뒤집어졌다’라는 것입니다.
왕은 분함을 참을 수 없어 규례 및 법률 담당하는 신하에게 묻습니다. 16절을 보면 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는가? 라고 묻지 않고 왕의 명령을 어긴 자는 어떻게 처치하는 가를 묻고 있습니다. 3인칭을 써서 엄벌에 처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므무간이라는 법무부 장관 같은 신하가 말합니다.
왕비는 2가지 죄를 범했습니다. 첫째는 왕께 지은 죄이고 둘째는 온 나라에 악한 영향을 미쳐 미풍양식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는 연이어서 ‘오늘이라도’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은 하루라도 빨리 법대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늦을수록 온 세상에 나쁜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므무간이란 신하는 일곱 신하 중의 가장 낮은 자입니다. 낮은 자가 가장 먼저 말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날의 왕의 기분에 때라 말 잘못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괜히 그 사람을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면 왕이 너나 죽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재미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 줄과 줄 사이를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제 에스더가 설자리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는 것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가를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가능성이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섬세하신 솜씨를 우리는 읽어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희한한 역사를 만들어 가셔서 에스더를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불러들이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이사야 55장 8-9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되는 한계에서 머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었기에 하나님의 뜻을 좇는 길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인생의 머리로는 해결방법이 안보여도 이루어주실 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없이 큰 오빠의 손으로 자라난 이방 여인 에스더가 대 페르샤 제국왕후가 될 줄 누가 감히 알았겠습니까? 누가 우리 교회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갖고 하나님 앞에 오전 예배드인다고 생각했겠습니까? 누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렇게 살아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다른 사람 다 믿어도 난 안 믿는다고 뻐기던 사람들도 주일날 늦게까지 남아 예배드리고 주님 앞에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놀라운 일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 사역이 지금 이 시각 바로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성전을 통해서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불러들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에스더에게 일어났던 그 놀라운 일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 일어날 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큰 기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손길이 어떻게 펼쳐지실 것인지를 기다리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쁨으로 소망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렇게 믿고 감사하며 살아 갈 때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바사 남자들은 고민에 빠졌지만 유대민족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죽음에서 해방되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되어 온 유대백성들을 죽음에서 구하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주님이 구원의 큰 일꾼들로 삼아주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부르신 것입니다.
바사 남자들은 와스디 왕비로 인해 고민을 하겠지만 에스더는 왕비가 되는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역사를 통해 우리도 어떻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게 될 것인지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야긴과 보아스 같은 기둥으로 우리주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역사가 우리교회와 온 교우들 위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둘째는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던 왕후 와스디가 폐함을 당한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초청을 거절한 신부들은 어린양 혼인잔치에서 쫓겨남을 당하고 이를 갈며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한 예표이기도 합니다. 고후 6:2절에는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조건 없이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왕의 명령처럼 주님의 명령은 온 세상에 전해져야 합니다. 잔치에 초청해야 합니다.
신부는 신랑이 부르면 달려가야 합니다. 내일이 바쁘다고 내일이 급하다고 신랑이 부를 때에 딴 일하고 있으면 아무리 좋은 신랑이라도 신부를 폐위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일에 빠져서 신랑도 모른 체하며 세상을 즐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왕의 초청을 거절한 와스디 왕비를 생각하십시오. 속히 나와야 합니다. 하던 일을 중지하고 왕이 부르면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에 우선을 두고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는 남자들의 고민입니다.
가정의 가권을 잡지 못해 슬퍼하는 남자들의 고민입니다. 오늘도 2500년전 바사제국남자들처럼 우리 중에도 고민하는 남자들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하수에로왕이 와스디 왕비를 폐하고 에스더 왕비를 얻는 것처럼 현부인을 폐하고 후부인을 들일 수 없기에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고민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거룩한 고민에 빠지시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옆집의 부인이 남편에게 잘못하는 것 옮게 될까봐 고민하시지 말고 내 생각과 내 행동 내 믿음생활이 혹 아내 남편 자녀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주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내 신앙의 모습을 고민해야 합니다. 혹시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말뿐이라는 모습을 부인에게나 남편에게나 주변에게서 듣게 된다면 이것은 벌써 나도 그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딤전 4:16절에는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들은 것을 행할 때에 나를 보는 주변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민에 빠진 바사제국 남자들 중에는 자신의 행실이 온전하다면 아무도 왕비의 행실을 본받아 그들의 남편을 업수이 여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이 되지 못하는 추한 삶을 살아가기에 바사제국남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고 22절을 보면 법을 정해야만 가정을 주관할 정도로 한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이제 마칩니다.
바사제국 남자들 같은 고민하시는 분들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방향을 바꾸십시오. 내 삶의 모습이 가정과 이웃과 그리고 교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십시오. 나의 행실과 나의 입술을 누군가가 본받게 된다면 어떤 일이 있게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조서를 내려 법으로 정하지 않아도 온 가정의 주관자들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스더를 준비하신 하나님이 놀라우신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놀라우신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세상 속 현실의 어려움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 크신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 기대를 가지고 주님의 명령을 외쳐야 합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초대받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의 주변에는 한사람도 없도록 외쳐야 합니다. 폐함 받은 왕비처럼 슬픈 인생이 없도록 우리도 왕의 명령을 외쳐야 합니다. 이 일을 감당할 때 놀라운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에스더 같이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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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