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목적에는 예배, 교육, 전도, 선교, 구제,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이 중에 사회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과 효과를 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구제입니다. 여기서 바른 구제란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구제는 조용하게, 남이 모르게, 티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아무도 모르게 구제할 때 하나님이 다 아시고 역사하시며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은밀하게 구제할 수 있기 바랍니다.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만 알도록 구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고 갚아 주십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산상수훈의 팔복과 소금과 빛의 역할, 예수와 율법, 노여움에 대하여, 간음에 대하여, 맹세에 대하여, 악한 자에 대한 대적에 관하여, 그리고 원수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법과 윤리에 대해 교훈하신바 있는 예수님은 이제 6장에서 성도들이 실제 생활에 있어서 범하기 쉬운 잘못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본문은 성도들이 빠지기 쉬운 종교적 위선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빠져 있던 극단적 외식주의를 지적하면서 결코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1-4절까지에는 구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목적 3번째로 구제에 대한 말씀을 살펴 교훈과 도전 그리고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혹시 예수님이신가요?
미국의 폴(Paul)이라고 하는 한 회사원이 뉴욕에서 중요한 미팅을 마치고 자기 팀 동료와 함께 공항으로 갈려고 거리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이 금요일 오후 저녁시간이어서 교통체증이 심해 택시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어렵게 빈 택시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고 이 택시를 보는 순간 다른 동료들이 쏜살같이 달려가서 그 택시를 잡아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빨리 달려가는 바람에 바로 길가에서 장사하고 있는 노점상의 야채과일박스를 건드린 지도 모르고 달려갔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일행 중 어느 누구도 이를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폴은 택시를 타지 않고 그 자리에 순간 멈추어 서게 되었고 택시 안의 동료들이 “빨리 타라고 외치며 지금 이 택시 안 타면 비행기 놓칠 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먼저 가라고 일행을 떠나보냈고 그리고 나서 노점상 할머니에게 다가가니 그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고 합니다. 자세히 가서 봤더니 할머니는 앞을 잘 보지 못하는 시각장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앉아서 울고 계신 할머니를 폴이 위로해드리면서 바닥에 떨어진 야채와 과일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도 폴 곁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다들 자기 갈 길이 바쁜지 아무도 노점상 시각장애인 할머니의 울음과 폴의 행동에 관심도 갖지 않았다고 합니다.
폴이 야채와 과일을 다 정돈한 후에 지갑을 꺼내 돈을 할머니 손에 쥐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이 돈이면 손해 보신 것 충분히 해결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Are you JESUS”, 혹시 예수님이신가요? 이 말을 듣고 당황한 폴이 “저는 절대 예수가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때 시각장애인 할머니가 아니라면서 계속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조금 전 노점가판대가 넘어지고 과일과 야채가 바닥에 떨어질 때 내가 도움을 요청할 분은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했지요. ‘JESUS, please come help me!’, 예수님 나에게 다가오셔서 제발 나를 도와주십시오. 그랬는데 기도의 응답처럼 당신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으니까, You must be JESUS. 당신은 분명 예수님이 틀림없어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이시면 어쩌지?
몇주 전부터 교회 앞길에 백인 노숙인이 한동안 있었습니다. 낮에는 가끔 차도에 앉아 있기도 하고, 새벽예배 시간 때면 인도 길 한 가운데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을 여러 번 볼 수 있었습니다. 매트를 주려 시도해 보기도 하고, 아내는 슬리핑백을 주려 차에 싫고 다니기도 했으나 결국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어느 날은 안타깝게 택시를 잡으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태워주질 않아 택시를 탈 수는 없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디 가야할 곳이 갑자기 생각이 났나? 고향? 집? 아니면 다른 더 좋은 도시로 가려하나?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뒤 이곳을 떠나 현재 보이질 안고 있습니다.
그 분을 보면서 언젠가는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시험하시고 계신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내가 가서 예수님을 꼭 안고 예수님 왜 이렇게 하시고 계셔요? 라고 해야지.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지도 몰라. 얘야 너 내가 누군줄 알고 이러니? 예수님 맞죠? 얘야 네 옷에 더러운 것 묻는다. 상관없어요. 얘야 냄새 안나니? 네, 괜찮아요. 얘야! 숨 막혀 죽겠다 살살 좀 안아라. 절대 안 놀 거예요. 도망갈 생각 마세요. 그래 알았어. 고맙구나. 그런데 돌아보니 제가 그 노숙인에게 한 것이라고는 돈 몇 푼을 쥐어주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그 분이 예수님이셨다면. 찢어진 누더기의 지독한 냄새나는 옷과 구멍이나 발가락이 밖으로 나오는 신발을 신고, 낮이면 뜨거운 햇볕아래 아스팔트 위에 하염없이 앉아 먼 산을 바라보고, 밤이면 그 흔한 종이 박스 한 장 깔지 않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옆으로 누워 팔베개를 하고 잠을 청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면…
내가 그 노숙인에게 대하듯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대하였을까? 돈 몇푼 손에 쥐어주고 예수님 이걸로 맛있는 거 사서 드세요. 그리고 이렇게 뜨거운 곳에 앉아 있지 말고 나무 그늘에 앉아 계세요. 밤에 주무실 때는 비와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는 빈 공간 많이 있잖아요. 그곳에 박스라도 깔고 주무세요. 라고 하였을까? 왜 저렇게 됐을까? 정신 이상자인가? 참 불쌍하다. 내가 도와줄 것이 없을까?
이렇게 마음으로 생각만하고 있는 동안 정작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갔는지? 아니면 가족에게로 돌아갔는지? 그것도 아니면 더 불행한 일을 당하였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구제는 하나님이 보시고 다 갚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생각만하지 말고 마음으로만 하지말고 조그만 것에서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구제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외면하면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구제해야할 일이, 대상이 앞에 있는데 모른척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잠28:27)“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한국 사람이 아니어도 외면하면, 관심 갖지 않으면, 남의 일로 치부하면 그것이 저주가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제를 해야 할 상황임에도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 절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제해야 합니까?
먼저는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남이 모르게, 가까운 사람도 모르게 구제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마6:3,4)‘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나와 하나님만이 아시게, 티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이 갚아 주실 것을 믿고 조용히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있는 것으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내가 자기고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눅12:33)“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네가 수고하여 모은 재산으로, 네가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구제하는데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보다 잘 살고,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이 하길 바라거나 기다리지 말고, 나에게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성실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제할 때는 아까운 마음으로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2:8)“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구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물질과 시간과 진정을 가지고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구제를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는 ‘풍족하여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은밀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성실하게 구제하면 더 풍족하여 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잠11:24, 25)“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
구제하기를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행하는 자는 오히려 풍족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제 한다하여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제한다하여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제한다하여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풍족하여 풍성함과 풍부함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갚아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주만물의 주관자요 모든 피조물의 소유자 되시는 하나님이 잊지 않고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잠19: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구제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궤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구제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칭찬하시며 복내려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행10:2,4)“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구제하는 자를 반드시 기억하시고 칭찬과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기억하여 많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죽은 생명도 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제를 평생 진심으로 행한 자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역사도 일어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행9:36,37,40)“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구제하기를 힘을 다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끼쳐 그녀의 도움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함으로 베드로를 통해 생명을 소생케 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제가 죽은 자도 살리는 역사를 일어나게 한 것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제는 죽은 생명도 살리는 큰 능력을 보게 합니다.
예수님 공생애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였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의 손길을 폈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들 살리는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지상에서의 사역을 마감하셨습니다.
성도인 저와 여러분은 힘을 다해 구제해야 합니다. 구제를 외면하고 모른 체하면 저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구제할 때에 은밀하게, 있는 것으로,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구제할 때 풍족하여 지고, 더 좋은 것으로, 더 많이 갚음을 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어 칭찬과 보상을 해 주시며, 구제를 진정으로 하는 자에게는 생명 소생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나의 것으로 나의 힘으로 최선을 다해 은밀하게 구제하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보상의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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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