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

마태복음 28장 18-20절
김성일 목사

(빅토빌예수마음교회)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들 가슴을 절절하게 아프게 하는 사건입니다. 끔찍한 영상물을 통해 참혹하게 처형시킬 뿐만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까지도 총질해대는 장면을 보면서 앞으로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자유를 속박당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나 신앙 때문에 죽임당하는 형제·자매들이 많아진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합니다. 더욱더 복음을 전하기에 힘들어진 나라가 더 늘어난 상황이기에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한 나라 형편 가운데서도 2000년 초 파송 받아 현재 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여러 번의 수술 과정에 죽다 살기를 반복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에 그 땅을 떠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기에 애쓰는 평신도 자매를 비롯한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들이 그러한 삶을 목숨을 걸고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오늘 우리 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대면하면서도 믿느냐 못 믿느냐의 자세를 취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것은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입니다. 오직 이스라엘의 구원만 생각하고 자신들을 핍박하고 학대하는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기를 소원하던 요나와는 달리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4:11)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혹시라도 니느웨가 구원받을까 봐 니느웨로 가라고 했음에도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 도성 한 바퀴를 돌려면 삼일 길이나 되는 니느웨성을 돌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음에도 딱 하루만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3:4)라고 외쳤던 요나의 마음이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마음일지도 모릅니다. 죄지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죽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우리가 전도할 대상을 제한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핍박하던 사울이라고 하는 인물에 대해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요?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만나주시고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행9:5)라는 사실을 밝히시고 그를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9:15) 하시고, 바울로서 소아시아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구원받을 사람을 제한시키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인종, 다른 국가, 다른 피부 색깔, 다른 문화, 다른 삶의 형태를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 대상이 한국인, 한인으로만 국한되어진다면 모든 족속을 재자 삼으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부분적 순종은 아닌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을 사람에 대해서도 복음을 전할 대상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각이나 관점에 사로잡힐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능력이나 권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 자신께서 명령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손쉽게 변형해서 사용하는 현대인의 특성상 다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사람 얼굴도 인생살이도 삶의 구조도 생활 형태도 심지어 강단에서 전하는 설교도 예술적인 디자인도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어 그냥 멋들어지게 보이는 게 하는 데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나름대로 독특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우리 주 예수님 앞에서 각자 부르심에 따라 다양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품 진열대 놓인 일정한 제품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빚으신 작품의 삶, 주님의 권세 앞에서 주어진 말씀 따라 살아가도록 합시다.

 

1. 가라

 

모든 족속을 제자 삼기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로 “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하다보면 현대 시대의 기준으로 볼 때, 은퇴 후 나이임에도 역사의 전환점의 지도자로서의 인물이 되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아브라함의 75세 나이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12:1) 하시고, 애굽 왕궁에서 자라났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살다가 80세에 부름을 받은 모세에게 출애굽기 3장의 말씀 9절에서 “이제 가라” 하시고. 헤브론을 유다 지파의 기업으로 차지하기 위하여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수14:12)라고 외치면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나아갔던 85세의 갈렙의 사역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세우심에 나이로 핑계를 댈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고백하며 누구도 하나님의 약속의 부르심 앞에서 자신의 나이를 이유로 핑계를 대지도 소외되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젊든지 인생의 노련미를 갖춘 나이가 되었든 지에 상관없이 생각만 하고 현장에 가지 않으면 아무런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신이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듯 말하고 다니는 사람일수록 정확하게 그 일을 해결할만한 실력이 없거나 말로만 일하는 척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언제나 자기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듯이 감당해내는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일꾼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로 삯꾼과 사명자를 구별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주변에는 선교사님들이 참으로 많이 계십니다. 국가도 나라 영역도 다 다르게 사역을 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가라 하는 곳으로 순종하며 가신 분들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갔을까요? 바로 모든 족속을 제자 삼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이러한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것은 필요한 때를 기다리기 위하여 마치 사냥꾼처럼 적절한 시기를 위해 오늘도 호흡을 조절하며 손가락의 힘을 빼고 그동안 준비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어놓지 못하고 한 눈은 감고 한 눈만 크게 뜨고 기다릴 때가 많습니다. 신중하고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 그러다가 아까운 세월을 그저 낭비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제는 생각을 멈추고 말씀에 순종하여 가라하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2. 제자 삼는 일을 하라

 

두 번째로 내가 예수님의 제자 된 것같이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되도록 “제자 삼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인생이 평범하다고 할 수는 없는 인생임을 봅니다. 대충 살펴보아도 야곱은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고 삼촌도 속이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고 유다는 신전 창녀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과의 동침을 통해 자식을 낳았던 사람이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숨기기 위해 충성된 우리아장군을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취했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나시는 그 족보에 이름이 올라갔다는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십니까? 

죄악 된 사람은 결코 거룩한 자리에 함께 할 수 없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심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푸심을 믿고 바리새인들처럼 자기 의에 사로잡혀서 함부로 정죄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찬송을 부르고 있다면 정말로 나 같은 죄인이 구원받았음에 대한 감격과 기쁨과 감사와 아울러 다른 사람에 대한 자세 역시 구원함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게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 중에 당연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공동체의 하나가 됨을 파괴하는 시작점은 외부의 말쟁이들의 주절대는 말에 대해 평소 불평불만에 사로잡혀있던 내부의 동조하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사람들을 배도자, 배신자라고 합니다. 어디든지 직분으로 신분 상승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그들도 구원의 대상임을 믿어야 합니다.

 

3.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세 번째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나의 옛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을 위한 새로운 인생살이를 시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간혹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인생의 행복추구만을 위해 사는 것이 목표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인생살이에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행복 추구는 자신도 타인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내가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인생이 최고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인생의 패턴이나 문화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연륜은 자신의 등에 새겨져 있기에 누가 내 등을 보고 살고 있는지를 알면 세상을 겸손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남의 등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의 등을 보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에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통해 복음을 전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라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려면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발 선교 현장을 직접 가보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선교를 말로만 배운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선교는 현장에서 아직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 대신에 드려야 하는 피가 묻은 무릎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죄악 중에서 한 영혼 한 영혼 구원을 위한 절실한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듯이 주님께 헌신된 굳은 살 박힌 손발로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 가지 과정들 속에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흔적을 하나씩 새겨나가며 배워야 합니다. 간혹 목사님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되고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사는 방법을 보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얼마나 섬겼나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묵상해보면 사랑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음을 생각하면서 습관적 접대의 기질적 성향은 문화적 영향이지 신앙의 깊고 낮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기 때문에 새벽기도회 참석 여부로 신앙이 좋고 나쁨을 논하는 것은 대인 관계 속에서 뒤통수를 맞는 지름길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하고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어도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주는 일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아가고 예수님의 베풀어주신 사랑으로 제자로 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주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하게 임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세상 끝날이 언제인지에 관심 두지도 말고 각종 가짜 뉴스에 현혹되지도 말고 주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으로 무장하도록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기도가 메말라가는 시대 속에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기도해야 산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순간마다 주님께 여쭈어보며 응답받아 순종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결론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십시다. 각자의 처소에서 일어나 주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가서 주님께 순종하는 구원받은 백성들이 되도록 예수님의 사랑의 삶으로 섬기십시다. 회개와 헌신의 은혜가 임하도록 예수님 섬기는 사람은 성령 안에서 이렇게 사는 것임을 보여주십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능력을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증거하십시다. 우리의 삶을 드림으로 말미암아 행여라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말 듣는 사람 없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니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처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하신 말씀이 성취되도록 모든 족속을 향해 복음 전함에 우리의 기도와 물질로 손발로 헌신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10.0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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