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그린 선교교회)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에 은평평화공원이 있습니다. 그 공원에 한 미군병사의 동상이 서 있는데 6.25전쟁 때 9.28서울수복작전에 참가했다가 녹번리 전투에서 전사하신 윌리엄 해밀턴 쇼우(William Hamilton Shaw) 미해군 대위의 동상입니다. 해밀턴 대위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1년에 한국에 와서 선교를 했던 윌리엄 얼 쇼우 선교사님의 외아들인데, 그는 평양 외국인학교를 마친 후에 아버지의 모교인 오하이오 주의 웨슬리언 대학교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해군소위로 임관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해서 공을 세웠지요.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한국으로 와서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며 해안경비대 창설에 기여를 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중에 6.25전쟁이 터지자 젊은 부인과 두 아들들을 처가에 맡기고 재 입대를 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내 조국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있겠습니까? 공부는 조국에 평화가 온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유창한 한국어로 맥아더 장군을 보좌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뒤 해병대로 보직을 바꿔서 서울탈환작전에 자원했다가 녹번리에서 공산군 매복조의 기습을 받아서 안타깝게 전사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저 분은 원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해서 공을 세운 군인이며 이미 제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보직도 해군입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재 입대를 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그것으로도 충분히 훈장을 받을만 합니다. 그런데 보직을 해군에서 해병대로 바꾸어서 빼앗겼던 서울을 탈환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숭고한 삶에 감명을 받은 대한민국정부는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추서(追敍)를 했고 은평평화공원에 기념 동상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분은 백인이면서도 왜 서울을 탈환하려고 재 입대하면서까지 싸우려고 했을까요? 왜냐하면 공산당이 저지르는 불의와 싸우며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지요. 시편 106편 3절을 보면,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뭐가 복이 있느냐?”고 반문하실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분명히 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해밀턴 대위의 숭고한 삶에 감명을 받은 미국의 교회가 기증한 대전의 목산 언덕에 기념예배당을 세웠는데, 그 예배당이 바로 지금 목원대학교 안에 있는 예배당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신학생들이 그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도했겠습니까?
한편 해밀턴 대위의 아내인 후아니타 로빈슨(Juanita Robinson)은 비록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었지만 하버드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치고 남편이 생명을 바친 한국으로 들어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수로 가르치면서 세브란스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젊은 여학생들이 후안니타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았겠습니까?
또 해밀턴 대위의 아들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 와서 훌브라이트 장학사업을 펼치면서 서울대학교 법대교수로 재직했고, 해밀턴 대위의 손자는 연세대학교 의대에서 근무했고 손녀는 오산 공군기지에서 장교로 복무하면서 대한민국을 지켰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님, 그의 아들, 손자, 손녀를 통해서 혜택을 입었을까요?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녕 우리 후손 대에 가서라도 필경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 2의 이스라엘의 광복절이 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광복절’이 있습니다. ‘유월절’과 ‘부림절’인데, 유월절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을 맞은 날이고, 부림절은 페르시아에서 진멸당할 뻔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서 광복을 받은 날입니다.
유월절은 창세기 1장 14절(모에딤)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여호와의 일곱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부림절은 ‘여호와의 절기들’ 중에는 들어가지는 않지만 지금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크게 지키는 명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어디서 부림절이 생겼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전 중동에 페르시아라는 강대한 제국이 있었는데, 그 제국을 다스리던 아하수에로왕, 세상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 1세라고 부르지요. 그 나라에 하만이라는 엄청난 권세를 가진 총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4절을 보니까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다”고 했습니다. 즉, 하만이라는 사람이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고 제비를 뽑아 날짜를 정했는데 그 제비를 페르시아어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몰살당할 수밖에 없었던 히브리 민족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화위복으로 구원을 받은 날이 부림절이고, 제 2의 광복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만이라는 사람이 아각 사람 함므라다의 아들, 모든 유대인의 대적 하만이라고 자세히 풀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각이 누구일까요? 사무엘상 15장 32절을 보니까 “사무엘이 이르되 너희는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내게로 끌어 오라 하였더니” 즉, ‘아각’은 ‘아말렉이란 나라의 왕’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은 ‘아말렉 족속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족속은 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아말렉을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출애굽기 17장 14-16절을 보니까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고 하시고,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40년이 지나고 나서도 하나님은 다시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신명기 25장 18-19절을 보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멜렉을 진멸시키지 않았지요. 그러자 도리어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죽도록 방치하실 수가 없어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지요.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입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은 불신자들도 잘 알만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지면관계상 생략)
그러면 도대체 이 아멜렉이 누구일까요? 아말렉이란 이름이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4장 7절입니다. “그들이 돌이켜 엔미스밧, 곧 가데스에 이르러 아말렉 족속의 온 땅과 하사손다말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친지라.”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에서 벌어진 메소포타미아 연합군과의 국제전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연대를 따진다면 주전 2천년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약 주전 450년 전의 이야기니까 약 1500년 이상 존재했던 사람들이 아말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말렉은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해있던 족속들입니다. 출애굽기 17장 8절을 보니까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고 하셨는데, 르비딤은 ‘시내광야 서쪽’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민수기 13장 25-29절을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보고하기를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한다”고 했습니다.
여기를 보면 아말렉 족속들이 가나안 땅에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사무엘상 15장 7절을 보니까 “사울이 하윌라에서부터 애굽 앞 술에 이르기까지 아말렉 사람을 치고”라고 했는데, 하윌라가 어디입니까? 창세기 2장 11절과 10장 29절, 그리고 25장 18절에 언급한 하윌라와 같은 땅이라면, 아말렉 사람들의 영토는 애굽에서 북아라비아를 포함하여 유프라테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말렉이 1500년 간 이상 존재하던 족속들이고 광범위한 지역에 분포했던 족속들이라면, 최소한 세상 역사에 한번이라도 등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말렉이란 이름은 세상 역사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말렉이란 이름의 뜻도 불분명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고 하시며 “내가 대대에 아말렉과 더불어 싸우시겠다”고 하신 말씀에서 힌트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왜 사랑이 많으시고 무한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족속만큼은 그토록 미워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신명기 25장 18절에 나오는데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즉,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그토록 미워하시고,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유는 그들이 뒤에 쳐진 약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연약한 자들을 뒤에서 공격하는 불의한 세력들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자들은 모두 아말렉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일본 식민지시대 때 연약한 소녀들을 위안부라는 미명 아래 잡아가서 성노리개로 삼고, 힘없는 10대 소년들을 징병으로 잡아서 총알받이로 만든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아말렉 족속의 후손입니다. 또, 주일이었던 6월 25일 새벽, 선전포고도 없이 몰래 기습공격하면서 수많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을 연약한 죽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공산당원들은 아말렉 족속이 후손입니다. 실제는 사탄의 후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이 분명해집니다. 이제 9.28서울수복기념일이 다가오는데 이러할 때 우리는 해밀턴 대위처럼 불의를 보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예레미야 5장 1절을 보면,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불특정 다수’인 ‘한 사람’을 찾으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모스서 5장 24절을 보면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정의와 공의를 물에 비유하셨을까요? 왜냐하면 물은 그 어떠한 공간에도 침투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요, 물은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 한 사람이 되어서 불의한 세력이 점령하고 있는 그 어두운 곳에 들어가 불의를 파괴하고 정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요. 9.28서울수복기념일을 맞이하는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입니다. 불의의 싸워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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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