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 한인개혁장로교회)
‘신명기’(Deuteronomy)의 제목은 1장 1절에 언급한 것처럼 ‘언약의 갱신’(Renewal of the Covenant)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것인가, 어떻게 그 땅에서 쫓겨난 가나안 족속처럼 살지 않을 것인가, 하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들을 그 땅에서 내어 쫓으신 것은 그들의 죄가 관영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그 땅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지 않으면 그들도 쫓겨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은 그 모든 언약의 선언을 아멘으로 확인하는 장면이다.
오늘 읽은 본문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써 언약공동체의 구성원을 결정하는 규칙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의 총회,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공동체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 성경은 어떤 사람들에게 대한 혐오와 배제를 정당화하는가?
모세는 먼저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남자’(A man has been emasculated by crushing or cutting)를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거세를 행하는 가나안 종교의 부패한 의식에 대한 언급인 것으로 보인다. 절대로 성적 장애인이나 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두 번째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사생자’(מַמְזֵר, born of a forbidden marriage)이다. 이것도 역시 가나안의 신전 창기의 아들이나 딸을 묘사하는 말이다. 신명기 23장 17절에서 분명하게 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는 출생시에 이방신에게 바쳐졌을 것이다. 이교신앙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혼합시키려는 시도는 불순종이면서 또한 위험하다.
이 두 계층(거세자, 사생자)의 사람은 이방종교의 육체적이고 도덕적으로 해로운 관행을 나타내는 슬픈 증거였으므로 그들이 거룩한 백성의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같이 참석자를 제한한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구별된 고백을 보존하고, 예배하는 언약 공동체를 이교적 영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암몬 사람(Ammonite)과 모압 사람(Moabite)이다. 암몬 사람은 그들이 하지 않은 일 때문에, 그리고 모압 사람은 그들이 행한 일 때문에 그러했다. 암몬 사람의 죄는 소극적인 죄(passive sin)였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지나는 동안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모압 사람의 죄는 적극적인 죄(aggressive sin)였다. 그들은 발람의 예언자적 신탁을 통해 이스라엘을 넘어뜨리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고 덤비는 자들을 대하는 것은 차라리 쉽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아주신다. 그들의 저주를 축복으로 변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소극적인 죄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6절)고 명령한다. 이를 직역하면 그들과 친선조약을 구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은 그들과 동맹을 맺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이 명령의 목적은 그들의 태도를 배우지 말라, 즉 너희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는 신명기의 말씀을 마치 외국인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폐쇄적인 삶을 살라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형제로 받아들이라, 애굽 사람들이 예전에 너희에게 베풀었던 친절을 기억하고 말씀하신다.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신 23:7-8)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뿐만 아니라 나그네 즉 외국인을 선대하라는 말씀은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즉 율법의 가장 중요한 실천명령 중 하나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10:18-19).
신명기에서 ‘나그네’라는 단어는 ESV 성경에서는 ‘sojourner’로 번역하고 있다. 이는 일시 체류자 또는 거류민이라는 말이다. 구약성경은 그들을 환대하고 그들에게 재판을 불공정하게 하지 말고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너희와 함께 있는 거류민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 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거류민이 되었었느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34).
그리고 이 구절을 예수님의 말씀과 비교해보라!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웃은 누구라고 생각되는가? 훗날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율법의 말씀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그래서 자기들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자기들의 상대적인 의를 드러내고, 다른 이들의 잘못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이방인을 혐오하고, 장애인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오해하고 오용하고 있는 율법의 참된 의미를 바로 잡아주시면서 신명기를 가장 많이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많은 가르침이 신명기에 대한 해석을 바로 잡으시는 것이다. 혼인문제, 안식일 문제, 네 이웃이 누구인가?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이 사람이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과연 누구의 죄 때문인가라는 물음에 대답을 하신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2-3).
율법은 결코 자신을 정당화하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고 배제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거룩과 정의와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요구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구약을 포함한 모든 성경의 목적은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구원의 소망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시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사56:3-8).
우리는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Eunuch, 고자)를 기억해야 한다. 처음 세례 받은 이방인은 바로 고자였다는 사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그는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고 있다가 빌립으로부터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들어 세례를 받고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받은 우리가 바로 이방인이요 외인이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1-13).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 가운데 두 사람이 이방여인이었다. 그들은 여리고의 기생(prostitute) 라합과 모압 여인 룻이다. 성경은 여호와와 연합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이야기다!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같다. 스스로를 거세한 자처럼 아버지의 집을 떠나 그 땅의 팔고 창기와 몸을 섞은 탕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 가운데 그 이름이 끊어져야 마땅한 자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도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의 이름이 이 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의 이야기다.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그와 연합하여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하실 뿐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세우시는 이야기다.
바로 우리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직 그 피로 우리를 씻으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 성도의 회중에 들게 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 눈에 여전히 자격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에게서 철저히 악한 것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이방인을 품고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선교적 명령이 우리에게 있음을 알고, 환대하며 품어주고 사랑하며 그들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오직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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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4.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