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연합감리교회)
캔사스에서 LA를 가다 보면 처음에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진다. 그렇게 한 10시간을 가면 콜로라도의 록키산맥이 나타난다. 그때부터는 계속 산을 넘어가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그러다가 콜로라도를 다 지나갈 때쯤 되면 점점 사막으로 바뀐다. 그리고 유타 주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사막이 시작된다. 가도 가도 사막이다. 암갈색밖에 보이는 것이 없다. 그렇게 가다 보면 점차 푸른색들이 나타난다. LA에 다 와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금 캔사스의 평원을 지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콜로라도의 험한 산을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유타 주나 네바다 주의 황량한 암갈색 광야를 지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금 초원에 있어도 언제 인생의 산을 넘어가게 될지 모르고 지금 가나안에 있어도 언제 인생의 광야로 들어가게 될지 모른다.
1. 인생은 산 넘어 산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로 시작하는 시편 121편은 유월절 같은 절기에 순례자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불렀던 노래였다. 그러나 즐거워서 부르는 노래라기보다는 사실은 기도였다.
여리고는 해발 마이너스 300미터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예루살렘은 800미터 산꼭대기에 있다. 쉽게 말해서 예루살렘은 대관령 꼭대기에 있는 것이고 여리고는 강릉 앞바다에서 300미터 더 바다 속으로 내려가야 있다. 여리고와 예루살렘 사이의 거리는 25마일 정도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알 수 있다. 1200미터 되는 산을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야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순례자들이 아침 일찍 여리고에 모여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길을 떠난다. 앞을 보니 첩첩산중이다. 저 산을 어떻게 다 올라간단 말인가? 무사하게 저 산들을 다 넘어가서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걱정을 하게 된다.
우리말에 걱정이 태산 같다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산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넘어야 할 어떤 대상, 우리가 극복해야 할 어떤 장애물을 뜻한다. 또 산 넘어 산이라고 하는 말도 있다. 이 산만 넘어가면 다 될 것 같은데 그런데 그 산을 넘어가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산을 넘어 왔고 또 앞으로도 많은 산을 넘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렇게 우리 앞에 넘어야 할 산이 가로막고 있을 때 우리는 이렇게 탄식하게 된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2. 광야를 지나는 인생
예루살렘은 산꼭대기에 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벗어나자마자 광야가 펼쳐진다. 광야 한 가운데 산꼭대기에 예루살렘이 있는 것이다. 여리고도 광야에 있다. 유대 광야 한가운데 있다. 여리고는 오아시스이다. 광야인데 샘이 있어서 지금부터 1만년전에 사람들이 모여서 성을 쌓고 살았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지역은 다 광야이다. 쉴만한 나무 한 그루 없다. 동네 하나 없다. 샘 하나 없다. 완전히 다 광야다. 그런 광야를 하루 종일 지나가야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갈 수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고가실 때마다 바로 이 험한 길을 지나셔야 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라고 했는데 순례자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보다도 황량한 광야였다. 사실은 "내가 광야를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그렇게 탄식했을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에는 광야가 없기 때문에 인생을 산에 비유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가나안)은 절반 이상이 광야다.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젖과 꿀만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야 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인생을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광야를 지나는 것에 비유를 하고 있다.
우리는 풍요의 가나안에서 살고 있지만 광야에서보다 더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광야 길보다 더 험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 광야에서보다 더 자주 길을 잃어버린다. 광야에서보다 더 많은 위협에 직면한다. 광야에서보다 더 지쳐있다. 광야에서보다 더 외롭게 살아간다. 우리는 다 광야를 지나는 인생들이다. 지금도 코로나 광야를 지나고 있지 않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다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 고국으로 귀환하게 되었다. 에스라가 왕의 허락을 받고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갔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스7:9).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네 달 걸려서 갔다고 했다. 그러나 그냥 4달 걸려서 갔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갔다고 했다. 왜 굳이 이런 표현을 했을까? 그가 온 길-이라크에서 이스라엘-은 다 사막이다. 사막을 네 달이나 걸려서 건너온 것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온 것이 아니라 사막을 건너온 것이다. 사막에는 사방에서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그런 사막을 네 달이나 지나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다. 정말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이 아니면 네 달 동안 사막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광활한 "불뱀이 우글거리는 건조한" 사막을 지나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100% 하나님의 은혜였다.
에스라가 고백하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의 선하신 손이 도우심"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광야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인생의 광야를 지나왔는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질병의 광야, 고독의 광야, 실패의 광야, 외로움의 광야, 버림받음의 광야, 잊혀짐의 광야, 가난의 광야, 실직의 광야, 이혼의 광야, 사별의 광야 등등 그 어떤 광야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무사히 통과하게 될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그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광야를 지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탈하게 여기까지 왔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만 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광야이기 때문이다.
3, 산을 넘고 광야를 지나는 인생
젊은이들이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직장에 들어갔다. 목표를 이루었다. 정상을 정복한 것이다. 그러나 직장 생활 하는 것은 광야를 지나는 것과 같다. 참고 견뎌야 한다. 가슴 속에 사표 한 장씩 품고 다니는 것이 직장 생활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결혼을 했다. 산을 정복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혼생활은 광야를 지나는 것과 같다. 목사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마냥 기뻐할 일이 아니다. 그때부터 광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미국에 어렵게 어렵게 왔다. 목표를 이룬 것이다. 산을 정복한 것이다. 미국에 오기만 하면 주말마다 백야드에서 파티를 할 줄 알았다. 미국이 가나안인 줄 알고 왔는데 와서 보니 가나안이 아니라 광야였다. 한국에서 보다 우리는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산을 넘고 광야를 건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기 위해 험산준령을 넘어야 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한다. 나무 한 그루 샘 하나 없는 뜨거운 광야를 지나야 한다. 걱정이 태산 같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그들은 기도한다. "하나님 이 산을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시옵소서. 이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게 해주시옵소서. "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산을 무사히 넘어가고 그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인생은 산을 넘고 광야를 건너는 것이다. 산도 넘고 광야도 지나는 것이 인생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탄식하게 된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답이 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그렇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건너지 못할 광야가 어디 있겠고 넘어가지 못한 산이 어디 있겠는가? “눈을 들어 산을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눈을 들어 광야를 보니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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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