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할 때

누가복음 21장 34-36절
이종태 목사

(뉴욕 심령이가난한교회)

여러분! 대면예배도 마음대로 드리지 못하고 교제도 마음 놓고 할 수 없고 수양회나 수련회도 쉽지 않고 기도원도 갈 수 없고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없으며 단기선교도 못가는 상황 가운데, 여러분의 신앙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이러한 열악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지키시겠는가? 여러분 각자는 어떤 방법으로 어떤 자세로 신앙을 믿음을 자신을 지키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커다란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종말에 대한 교훈의 결론으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종말을 맞이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교훈을 하셨다. 이제 본문을 통해서는 종말에 성도들이 주의하여 조심할 태도를 교훈하고 있다.

단순한 경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점검하면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함을 이르고 있다. 즉 언제 임할 지 알 수 없는 종말의 때를 생각지 않고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염려로,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면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이 피할 수 없는 멸망의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할 이유와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살펴 교훈과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 공항에 갔었다. 코로나 이전과 지금의 공항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셀 수 없이 늘어서 있었던 택시는 10대도 안되게 서 있고, 가족이나 친지, 혹은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터미널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밖에 듬성듬성 서있는 것을 보며, 야 이제 세상이 바뀌어가는 구나, 아니 이미 6개월을 지나는 동안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더욱 경각하여서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할 때가 되었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느꼈다. 

국가적 변화, 사회적 변화, 경제적 변화, 가정적 변화, 개인생활의 변화, 생각의 전환, 이 모든 것이 일시에, 정말 짧은 시간사이 벌어진 시대적 변화를 겪고 있기에 자칫 방심하거나 한눈을 팔게 될 때 그동안의 인생, 그동안의 시간, 그동안의 노력, 그동안의 경험, 그동안의 지식, 그동안의 신앙 등을 잃어버린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경계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할 때, 왜 그리해야 하는가?

1. 마음이 둔하여 질 위험에 있기에(34절)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단절시키려는 사탄의 세력을 경계해야 함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의 생활에서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죄와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함을 이르고 있는 것이다.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는 성도의 신앙생활을 방해함으로 주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게 하는 치명적인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방탕’과 ‘술취함’은 성령에 충만한 상태와 대조적으로 세상의 쾌락과 관심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이지만 자신의 관심과 쾌락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을 누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8:16-18)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보면 마음이 둔하여지고, 이로 인하여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게 되고 기억조차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 염려와 근심에 빠지게 될 때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추종할 때 환경과 상황만을 탓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할 때 꿈도 계획도 없을 때 마음이 둔하여져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을 지킬 때이다. 연합국가가, 연합종교가, 미국의 달러가, 과학자가, 사업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한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둔하여 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덫에 걸리기 쉽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하여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덫’은 문자적으로 ‘함정’,‘올가미’와 같은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위험’을 나타낸다(롬11:9 ; 시68:23).

평상시 동물들이 잘 다니는 길에 놓여있던 덫이 어느 순간 갑자기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닥치듯이 여기에서의 덫은 일상 삶 속에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 곧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 만약 스스로 조심하여 경계를 서지 아니하면 종말은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예기치 못한 덫에 빠지듯 돌연히 임하여 큰 낭패를 안겨다줄 것이라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상황을 갑자기 맞이하게 되어 불안하고, 걱정되는 가운데 자칫 잘못된 길로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기주의적 자기 방어, 혹은 그 반대로 실의에 빠져 자포자기 하거나, 허무주의나 사회주의에 빠져 들어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한 덫에 걸리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9:12)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

인생에게도 재앙이 날이 있을 터인데 그 날이 갑자기 임하게 되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인생들은 덫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탄의 미혹에, 세상의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자신의 부주의로 인하여 죽음이라는 덫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사탄은 세상에 관영한 죄악을 이용하고, 점점 빠르게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통해 성도들을 옥죄 오고 있다. 생각할 틈도, 돌아볼 여유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기 위해 온갖 계략과 책동을 다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탄의 술책과 세상의 유혹과 자기 번민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할 때이다. 

 

3. 우리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의 종말이 전우주적인 사건이며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일어날 보편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종말은 특정한 사람에게 부분적으로 입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예언된 대로 일시에 모든 사람에게 임함으로 이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종말이 임할 것이며, 그 때에 죄에 대한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주님의 재림의 심판 역시 모든 사람에게 임하게 되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의 어려움도 한 사람 예외 없이 모든 인류가 겪고 있는 재앙이다. 단절의 재앙, 두려움의 재앙, 고통의 재앙, 슬픔의 재앙, 죽음의 재앙을 모든 사람이 겪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숨을 쉬며 사는 동안 이를 피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조심하여 준비할 때 하나님이 예비해 놓은 피할 길을 찾게 될 것이다.

(막13:36, 37)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도록 임하신다. 그리고 그의 심판은 온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아니하면 죽음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항상 주님 맞을 준비를 하고 믿음의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자가 되어 재앙과 재난 가운데,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가운데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힘없는 내가, 능력 없는 내가, 가진 것 없는 내가, 무엇으로 스스로 자신을 지킬 것인가라는 것이다.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

1)항상 기도함으로(36절)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는 그 때를 결코 알 수 없기에 영적으로 늘 깨어 사단의 유혹들을 대적하고 항상 하나님과 깊은 교제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말 때에 환난을 피하고 구원에 이르러 영광의 주를 맞이하도록 준비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를 통해 나아갈 바를 깨달아 알 수 있기에 종말의 때에는 늘 깨어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2)항상 깨어 있음으로(36절)

‘깨어 있으라’는 것은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로서 잠에 들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마귀와 더불어 영적전쟁을 수행하는 성도는 말세에 발생하는 많은 미혹들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영적 졸음을 이겨내고 깨어 있어야 한다.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며,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신앙의 통찰력을 가져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살전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깨어 있지 아니하면 언제 어느 순간에 주의 재림이 임하여 마지막 심판이 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있어 준비된 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할 때 이 세상 가운데, 힘든 현실 가운데, 혼란한 상황 가운데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할 시대 상황에 처해 있다. 1)마음이 둔하여 질 위험에 있기 때문이며 2)덫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며 3)우리도 재앙과 재난 그리고 심판의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힘이 없는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지킬 것인가? 1)항상 기도함으로 2)항상 깨어 있음으로 스스로를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을 때 마음이 둔하여 지지 않고, 사탄의 미혹과 세상의 유혹과 자신의 번민에 빠지지 않고, 어떠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와 여러분도! 지금이 항상 깨어 기도할 때이다. 우리를 억압하고,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려하고, 우리의 숨통을 쥐려하는 이 시대에 우리 스스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pspcny@gmail.com

09.19.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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