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과 예배

창세기 8장 20-22절
나성균 목사

샬롯장로교회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쳐 우리에게 상상하기 어려운 피해를 주고 있다. 육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사업적으로 너무도 힘든 때에 과연 우리에게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영적인 피해 곧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모이기도 어려운 때에 모임 자체를 파기하겠다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신앙의 선조들은 과연 어떻게 하였는가? 노아에게서 배우는 바가 너무도 크다. 방주 안과 밖에서의 그의 예배는 무엇이었는가? 그를 통한 배움과 영감을 통하여 이번 기회에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온전히 회복한다면 우리의 신앙생활도 깨어 있는 것이 되고 펜데믹도 온전히 극복하게 될 줄로 굳게 믿는 바이다.

1. 방주 안에서의 예배

 

방주 안에서 무려 1년 10일을 지나게 되었다. 375일쯤 되는 이 긴 기간 동안 어떻게 여덟 식구가 지났을까?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기 짝이 없다. 물론 처음 며칠 동안이야말로 죽지 않고 살아난 감격에 시간가는 줄을 몰랐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계속되는 동안에 어떻게 처음 마음만 같았겠는가 말이다. 그들도 아담 타락 이후에 부패한 성품을 타고 태어났기에 우리와 절대로 많이는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점점 불편하고 지루하고... 여름 장마철에 하루를 지나본 기억이 나는가? 아니 한 여름 수련회에 건물 가득히 앉아서 여러 시간 수련회에 참석하여 보았는가? 장마철 낮 동안에도 히끄무릇하고 밤에 깜깜하고....

방주 안에서 사는 삶이 어떠하였을까? 물론 하나님의 특별섭리로 생각보다 나았을지언정 아마도 틀림없이 보통 지나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지붕에 굵은 비 쏟아지는 소리, 노아 여덟 식구를 비롯하여 열이 나는 온혈 동물들 때문에 밀려오는 더위와 습기, 탁한 공기, 좁은 공간, 짐승들에게 매일 먹이를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 지루한 나날, 짐승들의 싸우는 소리, 그들의 배변과 방뇨...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반드시 겪어야만 되었다. 그 옛날 에어컨이나 선풍기 한 대인들 있었겠는가 말이다. 오죽하였으면 어떤 영화가 묘사하였듯이 그들이 거의 미칠 지경의 삶을 살았을까?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서 여전히 하루 하루 일년 365일 10일을 참고 지날 뿐만 아니라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로우심을 묵상하며 그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창세기 6:9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하였다. 하나님 중심의 철저한 신앙을 가진 그가 무려 120년이나 방주를 짓는 동안 온갖 조롱과 욕설과 멸시와 천대 그리고 철저한 왕따를 당하면서도 연단되어진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버텼기에, 같은 신앙으로 방주 안에서의 삶에서도 예배로 승리하였다.

그들과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예를 들어 보자.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 주어진 해방과 축복과 그것에 대한 감격도 잠시, 출애굽 이후의 그들의 삶을 보면 우리의 삶의 실패의 가능성을 금방 알 수가 있다. 구원과 감격을 주신 그 은혜로 충만하여 있지 않는 한 반드시 원망 불평 싸움 책임전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으로 얼마든지 나아감을 볼 때 우리나 방주 안의 여덟 식구나 광야의 이스라엘이나 예배로 충만한 삶,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그 삶으로 충만하지 않는 한, 인생의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이 실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그 은혜를 구하고, 그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월남에서 미국과 월남이 치열하게 전쟁을 치르던 어느 날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포로들을 다루는 월남의 잔혹성이 극에 달하였다. 부자유, 영양 결핍,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가운데에서도 제일 어려웠던 것이 도무지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입만 열면 극형에 처하겠다는 서슬이 시퍼런 지옥의 삶을 살던 어느 날 이 삶의 탈출구를 생각해낸 한 병사가 있었는데, 그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 옆의 병사에게 입모양만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여 주었다. 말씀을 나누는 방법 그것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나눈 말씀으로 엄청난 힘과 위로와 용기를 얻은 그는, 다시 자기가 기억하여낸 다른 말씀을 다른 옆의 병사에게 나누었다. 

이렇게 하여 옆 사람 또 그 옆 사람을 통과하면서 점점 더하여진 말씀은 마침내 커다란 자원이 되어 풍성한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를 열었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자유가 주어져 조금씩 말이 허락되었을 때에는 온 수용소가 하나님의 말씀의 도가니가 되다시피 하여 그 지긋지긋한 삶을 무사히 승리하게 되었다.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 그분과의 약속만을 붙들고 살아가는 것 곧 예배의 삶만이 극한 상황을 이기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예배를 완전히 회복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그 때만이 이 펜데믹을 이기고 새로운 축복과 능력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 방주 밖에서의 예배

 

분명히 믿기로 방주를 건축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후에 120년 동안 연단 받은 노아의 영적 리더십에서 날마다 방주 안에서의 예배와 경건생활에 승리한 여덟 식구는 방주에서 나오자마자 감격을 갖고 자기들을 같이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살려주신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 맨 먼저 예배부터 드렸다. 번제 곧 온전한 헌신과 진노하시는 하나님께 회개하는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이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오자마자 하고 싶은 일이, 궁금한 일이 한 두 가지이었겠는가? 여기 저기 다녀 보고 싶고,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의 모습이 궁금하고 새로 싹이 나서 자라는 식물들이 궁금하며, 특별히 이제 어디다 새 삶의 보금자리를 펴기 위하여 집을 지을 것인가? 등등 하고 싶고 급하게 느껴지는 것이 한 둘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그렇게 하였더라면 어떻게 노아의 예배가 빛을 발하였겠는가? 모든 것을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일이요 가장 소중한 분께 은혜의 근원으로 이렇게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격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최우선 하여야 할 일이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예배보다 더 급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 삶에 있어서 이것만 잘 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이번 기회에 바로 이 관념을 확실히 정립하도록 하자!! 내가 이제까지 평안하고 아무 문제없는 형통한 삶을 살았는데.. 그때에 과연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는가? 만의 하나라도 그렇지 못 하였다면 이번의 펜데믹 기회야 말로 어디서 그 사랑이 떨어졌는가를 살피면서 다시 하나님 제일주의로 예배우선주의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겨 맨 먼저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 회개의 제사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을 주시었다. 내가 다시는 인류를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 무지개 언약을 주신 것이다. 21절 후반에 보면 놀라운 말씀이 나와 있는데,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그 사실을 아시면서도 노아의 중심을 다한 예배를 받으시고 인류를 다시는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정말 중심을 다한 예배,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나아갈 때의 그 태도, 하나님은 너무도 귀히 보시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희망 없는 인류에게 예수님을 보내시겠다는 간접 약속이라고 믿는다. 인류의 희망 없음을 아시면서도 다시는 물로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통한 영원 속죄를 간접적으로 약속하시는 것이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22절에서 이제 이후로 다시 자연 은총을 베푸시며 자연법칙을 회복시키시겠다고 약속하시었다. 이것도 대단한 축복인 것을 알아야한다. 그렇지 않고 계속 홍수 주시던 때처럼 하시면 얼마나 혼란할까? 심음도 거둠도 없음은 물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온전한 회복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주신 회복의 놀라운 은혜를 알면 뜨거운 여름에도 더위를 원망하지 않고, 추운 겨울에도 눈을 쓸면서 원망하지 않고 감사 감격할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김진홍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직접 박정희 대통령을 대항하여 민주화 운동을 벌이며, 정권에 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정치 사상범 수용소 독방에 수용되어 지나던 어느 날 감옥에서 성경을 깊이 읽고 또 읽다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 은혜로 살아났는데... 수감되어 어머님께서 자주 불러 달라시던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부르고 또 부르는데, 옆방에서 어떤 사람이 벽을 자꾸 친다. “선생님, 좀 더 큰소리로 불러주세요. 좀 받아 적으려고 그래요.”

몇 번 그 일이 있어 도대체 누구인데 그러는가? 불러주고 알고 지나고 보니 젊은이가 개척교회 아버지에게 심히 반항하다가 아주 탈선하여 마음대로 살아 타락하여 사고치고 이렇게 기가 막힌 곳까지 왔다가 그 찬송소리를 듣고 바로 그 찬송이 그 젊은이도 어머니가 부르시던 찬송이었기에 들으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아파하며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 얼마 후 석방이 되었다.

찬송 한마디를 중심을 다하여 부르고, 기도 한 마디에 정성을 싣고, 설교 한 마디에 인생을 거는 거룩한 예배... 그것은 지금도 진행되는 기적의 현실을 만들고야 말 것이다. 노아의 예배를 통하여 지금 우리가 배우는 것이 무엇인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나서 교회 문을 나서기 전에 내가 실천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고치며, 어떻게 삶을 변화시킬 것인가? 우리 각자가 아이템을 마련하여 실천할 때, 참된 예배자로 응답을 받고 기적과 치유 그리고 형통과 행복이 우리의 것으로 반드시 찾아오고야 말 것이다.

revskna@gmail.com

07.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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