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순복음안디옥교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비상 속에 LA의 한인 일가족이 모두 감염돼 80대 노모는 숨지고 딸 부부는 중환자실에서 증세가 너무 악화되어 어머님 임종과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김씨 부부의 대학생 딸과 고교생 아들도 감염이 되어 코로나19로 온가족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5월15일자 뉴욕한국일보).
4월에는 코로나19로 죽어가면서 6남매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병상의 어머니가 우리를 울리더니 지난 5월 8일 어머니날에는 멕시코 간호사 어머니가 워싱턴 주 에버렛의 42세 리터는 숨지기 전 병실 문을 사이에 두고 보지 못하고 무전기로 아이들과 작별했다. 아들 엘리야로스는 “동생들을 잘 챙길게요. 아이들도 엄마가 원하는 어른으로 잘 자랄 거예요. 사랑해요”하며 늘 아이들을 우선시하며 살았던 어머니를 위로해서 주위를 지켜보던 이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이런 뉴스들을 접하다보면 안타까움을 넘어 속이 상하게 됩니다. 우리 곁에 더 살아야 할 분들이 조용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온통 코로나 소식에 스트레스를 넘어 남이 아닌 나에게도 그 염려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한마디로 피곤은 스트레스와 함께 만병의 원인이며 건강의 적입니다.
의사들은 속상하고 피곤할 때 쉬라고 말합니다. 충분히 먹고 자고 운동하고 여행가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만 피곤이 풀리지 않습니다. 속상하고 피곤함이 계속 누적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속상하고 피곤할 때” 영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143편에 “영혼”이란 말 5번이나 썼습니다. 영혼이 피곤할 때 정신도, 육체도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한마디로 속상하고 피곤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두 달 가깝게 집에 갇혀 살므로 개인문제, 가족문제, 먹거리문제, 건강문제, 직장과 사업문제 등 속상하고 피곤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4절 “내 심령이 속상하다”, 7절 “내 영혼이 피곤하다”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한다”, 11절 환난에서 건져달라, 12절 “나의 원수들 좀 끊어 달라,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좀 멸해 달라고 합니다.
본 시는 다윗의 개인적인 비탄시입니다. 대적의 고통이 심해 죽지 못해 사는 심정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다윗은 속상하고 피곤할 때 영적인 방법을 찾았습니다.
1. 주를 묵상하고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5, 8절)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진리가 있고, 진리가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 말씀은 운동력이 있고, 빗나간 나를 제자리로 인도해줍니다. 말씀은 낙심천만할 때 제일먼저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의 말씀을 생각하여 속상하고 피곤한 나를 위로해줍니다.
5절에서 지난날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 즉 출애굽하고 홍해를 가르고, 요단강을 가르고, 아말렉을 물리치고, 쓴물을 단물로 바꾸고, 여리고성을 가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8절에서도 ‘아침에 나로 인자한 말씀을 듣고 주를 의뢰 한다’고 했습니다.
창조자이며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회복, 치료 시킵니다.
나폴레옹이 노틀담 사원에서 대관식을 할 때 하나님을 대변하는 교황이 왕관을 씌워주자 이를 빼앗아 자신이 머리위에 썼습니다. 이는 바로 나폴레옹 자신이 황제가 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한이 아니라 자신이 잘나서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가 러시아를 정복하려 할 때 승리의 확신으로 가득차서 한 귀족 부인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은 “인간이 계획할지라도 그 일의 성취는 여호와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자신이 계획한 일들은 자신이 성취한다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패전하고 돌아와 왕위도 빼앗기고 섬으로 귀양 가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역사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 스스로 역사를 주관하려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속상하고 피곤할 때는 말씀묵상하고 말씀 듣고 내 영혼이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말씀 안에 있을 때 죄인은 용서받은 의인으로, 저주는 복으로, 질병은 치료로 절망은 소망으로, 지옥은 천국으로, 불행은 행복으로 바뀝니다.
2. 속상하고 피곤할 때는 나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야 합니다(10절).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10절). 고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크리스천에게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며, 고난이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오히려 내게 유익이 많습니다.
“고난 당하기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오히려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히12:6).
물론 고난은 참 싫은 것입니다. 아파요, 괴로워요, 힘들어요, 외로워요, 답답해요, 고통 그 자체예요,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또 다른 큰 의미와 가치가 기다려요. 인간성숙, 신앙성숙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힘들 때 나의 정체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나를 잘 몰라요. 내가 어디서 와서 뭐하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헤매기 때문에 고난과 고통이 다반사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만 안다면 다시 설수 있고 고난이 오히려 더 유익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요셉은 젊은 나이에 10년을 억울한 감옥에 갇혔지만 거기서 꿈을 버리지 않으매 애굽의 위대한 총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갇혀 지냈지만 태우지 않은 가시떨기의 불꽃을 보면서 출애굽 엑서더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갇혔지만 절대자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 하면서 40년간 총리를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영국의 땜장이였던 존 번연을 12년 동안 감옥에 갇히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성경다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천로역정”을 남겼습니다.
➄예수님은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이 대단하십니다(막1:9-15). 세례요한으로부터 침례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하였지만(12-14) 성령이 매몰차게 광야로 몰아내서 광야 들짐승들과 우거하게 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버리셨나요? 아닙니다. 고난으로 오히려 신앙인격훈련으로(14-15) “하나님나라 전파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혹자는 묻길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더니 왜 광야에 보냅니까?” 할지 모르겠어요. 아니에요. 예수님의 정체성을 위함이요. 능력 있는 복음 전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게 하심입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신다”(호2:15)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아골 골짜기, 인생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인생의 에스겔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알면 걱정할 것 없습니다. 역경지수가 크면 축복지수가 커집니다. 속상하고 피곤해도 하나님 말씀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3. 복음을 증거하며 선교하는 주의 종으로서 주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12, 10절).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12하).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10).
인도해 달라는 것은 따른다는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 다시 신령한 것에 붙들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구령의 복음 전하고 선교와 봉사의 삶을 살게 하소서! 성경은 믿고 따르는 것과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얘기합니다. 종의 자세로서 우리의 주인, 왕(Majesty)되시는 주님 음성 듣고 순종하며 따라 가시길 빕니다.
찬송가 478장이 생각납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이 찬송은 1896년 쿠싱 목사가 가사를 쓰고 생키가 곡을 부쳤는데 쿠싱 목사가 목회도중 성대에 이상이 생겨 목회를 그만 두게 되었는데 ‘설교 못하는 목사는 무기 없는 병사와 같습니다’라고 하면서 강단을 떠나 좌절감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찬송을 쓰라는 영감이 왔습니다. 그래서 받아 적고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말씀 묵상하고 말씀 듣고 주안에 머물러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인 되신 주님이 종이 되는 우리를 천국 가는 날까지 인도하십니다.
4. 주를 향하여 손들고 영혼을 주께 맡기는 기도가 절절했습니다(6, 9절).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6절)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9절)
손을 폈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과 무소유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저는 힘이 없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주를 향해 손을 펴고 영혼을 주께 드린다는 것은 빈 마음으로 오직 내 영혼이 주님께만 의지하고 기도로 맡긴다는 뜻입니다.
영혼의 평안은 영혼을 하나님께 맡길 때 가능합니다. 속상할 때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십시오, 맡기고 기도하십시오.
10세기 초 세계 최대의 나라였던 사라센 제국의 왕인 압둘라라만 3세는 49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렸습니다. 그의 1년 수입은 약 3억3천6만 달러(약4천억원)에 달했고 그의 부인 수만 3,321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들만 616명을 낳았습니다. 아마 찾아와도 누군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한 말은 “오랜 세월 영예로운 통치에도 불구하고 내가 진정한 행복을 누린 날은 다만 14일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인간의 물질과 환경으로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아도 내용이 없습니다. 야훼 하나님 없이 집을 세우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된다는 것은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영혼의 만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자기의 사업, 자기의 권력, 명예, 지위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아무리 성을 지키려고 해도 성은 무너집니다.
시편 39편 6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45장 4절에 “또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그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나의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나의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이러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세계와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낮추기도 하시고, 부하게도, 가난하게도 하시고, 천국에 올리기도, 음부에 내리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을 지켜주지 아니하시면 하나님 없는 인생이 교만하고 자랑할 것 없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와서 뽑아 버릴 수가 있고 인생을 끝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헛됩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과 노력으로 아무리 애써봤자 무너지는 눈덩이와 같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하여 손을 드십시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항복하십시다, 맡기십시다! 우리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십시다.
(시55:22) “네 모든 무거운 짐을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여러분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고 절절하게 기도드리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도 잘 되시며 강건해집니다. 코로나로 인한 모든 마음의 병, 육체의병, 생활의 병이 다 치료될 것입니다.
결론
다윗이 심령이 속상하고 피곤할 때 영적인 방법을 찾은 것처럼 주님을 묵상하고 주님 말씀을 들으십시다. 나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며 삽시다. 복음을 증거하며 선교하고 봉사하는 주의 종으로서 주의 인도를 받읍시다. 주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우리의 영혼을 절절히 기도하며 주님께 맡기십시다. 반드시 평강이 임하고, 강건하시며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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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