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 중에도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베드로전서 1장 1-9절
장성철 목사

(보스턴장로교회)

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집안에 갇혀서 감염의 두려움 가운데 떨고 있고, 23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감염되고 1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지만 죽음이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15만이라는 숫자의 감이 제대로 오지 않습니다. 죽음에 대한 무게를 회피하면서 하나의 숫자로 말하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죽은 사람 어떻게 하겠는가? 산 사람이나 감염되지 않고 잘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죽음에 대하여 이기적이고, 의도적으로 무감각하게 됩니다. 엄청난 범죄와 책임의 무게에 눌리게 되면 ‘죽으면 끝인데’라는 생각으로 자살합니다. ‘잘못하다 죽으면 모둔 문제가 해결된다고’하면서 한탕주의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죽은 후에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철학이나, 이론이나, 논리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역사적 사건과 그에 대한 믿음이 중요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더믹(pandemic)이라는 두려움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면서 교회는 부활주일을 맞이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가 믿는 신앙은 모두 헛것입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우편과 온라인으로 헌금하는 모든 것이 부활이 없으면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부활의 비밀을 알고 확신하며 믿었기 때문에 조롱받고 채찍에 맞고, 결박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사자의 밥이 되어 죽음의 자리까지 갔지만 모든 시련과 고난을 감당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을 때 ‘통곡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도리어 ‘죽음을 부활로 받았다’고 했습니다. ‘하루 일찍 죽으면 하루 더 천국에서 산다’는 확신을 가진 성도를 세상은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터키 카이세리라는 지역의 갑바도기아에 가면 ‘괴레메’라는 지하 도시가 있습니다. 땅 속 12층 깊이 아래 동굴을 파고 성도들이 지하에서 살았습니다. 신학교와 예배당도 있습니다.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그들이 살았던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믿음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땅 속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 그리고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된 성도들을 아픈 마음으로 바라보는 베드로가 위로의 말씀으로 기록한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모든 것이 중단되고 사업이 문을 닫아서 수입이 없게 된 바이러스사태가 심각하고 힘들다고 해도 우리가 위로받기 미안할 정도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어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신앙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숨어사는 저들에게 위로해주시는 본문의 말씀이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 번째 위로의 말씀은 먼저 거듭난 자에게 “산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3절).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부활이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산 소망”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산 소망”이 있다면 ‘죽은 소망’도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죽으면서 끊어지는 소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잠11:7). 믿음 없이 살면서 가진 모든 소망은 죽음과 함께 끝납니다. 하지만 믿음의 성도가 가진 소망은 죽으면서 더 찬란해집니다. 고구마 줄기를 들면 붙어있는 고구마들이 다 따라 올라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부활하셨으니까, 예수님의 생명에 믿음으로 붙어있는 우리도 다 부활하는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소망을 걸고 삽니다.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가져보고, 해보고, 누려보았던 솔로몬은 세상의 소망은 헛된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소유하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소유한 것을 지키려고 경쟁하고 싸우고, 그러다가 결국 인생은 다 가버리고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세상의 소망, 죽은 소망입니다. 

성도의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정말 살아있는 소망인데, 본문은 이 ‘산 소망‘을 “유업”이라고 했습니다(4절). “유업”을 성경의 다른 번역들은 ’하나님의 나라‘ ’영생‘ ’구원‘ ’약속‘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현재 나의 삶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가는 것과 같이 힘겹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해도 “산 소망”을 가진 사람은 ’좀 더 힘을 내자‘하면서 성도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구할 것입니다.

오늘날 죽음을 놓고 슬퍼합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니까 정말 슬픈 것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랑하는 부모님이 옆에 자녀도 없이 외롭게 죽어가는 현실이 참으로 슬픕니다. 하지만 마지막 가는 길, 죽음이 올 때부터 성도는 시작입니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있기 때문에 슬픔보다는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나는 살아도 좋고 죽으면 더 좋다’는 바울의 신앙, 죽은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두 번째 위로의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5절). 

 

땅굴에서 살면서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너희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너희를 보호해주실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는 말은 문법적으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계속하여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거듭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자랑할 것이 없고, 가진 것도 없고, 무시를 당할 처지에 있다고 해도 하나님은 “너는 내 것이라”이라고 하십니다(사43:1). 

여러분은 주님의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적과 삶의 여정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운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광야를 지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호위하시고, 보호하시고, 눈동자와 같이 지키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눈동자를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고의 힘을 자랑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국방의 힘, 경제의 힘, 과학의 힘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9.11테러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이런 힘자랑이 하나님이 보호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국방의 힘을 자랑하는 미국 펜타곤에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거대한 군함에도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져서 정박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경제의 상징인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고 바이러스로 경제활동이 모두 정지되고, 과학의 힘으로 모든 병도 고칠 수 있다는 미국이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으면 인생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것입니다. ‘그라운딩 스톱(grounding stop)’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미국의 막강한 국방력과 경제력이 아무 것도 아닙니다. Nothing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두렵습니까?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91:10)라고 약속해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위로가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가정과 자녀와 여러분 자신을 지켜 보호해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위로의 말씀은 시험 중에도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6, 7절).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성도는 거듭나고 성화의 길을 갑니다. 성화는 순간적 사건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성화의 과정은 어려운 고난과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시험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시험을 통해 믿음이 더해지고, 고난으로 인하여 성화의 단계가 오르고, 장차 그리스도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위로해 주십니다. 성경은 “너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앎이라”(약1:3)고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당시 환난 가운데 사자의 밥이 되어 죽어가면서, 살기 위해 핍박을 피해 동굴에 들어가서 일생을 살아가는 지하에 있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라’고 합니다. ‘고난은 잠깐이지만 영광은 영원하다’고 말씀합니다. 

사업이 문을 닫고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시간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잠깐입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간에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 “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며 “기쁨”으로 이겨내는 성도에게 예비 된 영광은 영원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래서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나는 정금같이 나올 것입니다.’ 욥의 고백입니다. 시련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잠깐 근심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신앙이 단단해지는 것을 봅니다. 고난이 올 때 고난만 보지 말고 그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길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하거나 그냥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신앙의 성장을 위해 고난을 주시는 것으로 깨닫고 오히려 감사함으로, 시련을 기쁨으로 받아서 축복을 체험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는 세상에 사는 동안 신앙의 집을 지어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인생에 세 가지 신앙의 기둥을 세우도록 합니다. 생명의 창조 신앙, 새 생명의 부활 신앙, 그리고 온전한 생명의 재림 신앙입니다. 신앙의 기둥이 잘 세워져야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풍조에 밀려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믿음에 견고하게 서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schang@bostonkorea.org

04.25.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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