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 우리좋은장로교회)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개개인을 향하여 부르신 고유한 부르심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택하여 세웠나니” 우리의 모두의 삶속에서 열매 맺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 개개인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 일을 주셨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쓰임 받을 때가 행복한 것이고 최고의 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개개인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일하느냐에 따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의 종류나 일하는 장소나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명의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떨기나무의 불꽃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4절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부르시고 그에게 사명을 맡기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맡기는 이유는 우리를 축복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르심은 이제껏 살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된 삶으로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축복의 서곡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를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7)
본문 7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고,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모세를 부르십니다.
9절과 10절을 보면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여기에서 '이제' 라는 말은 '때가 되었다' 는 말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이루시려는 때가 되어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내어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계획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지금 어떠한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처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닫게 하십니다(11-12).
프랑스의 작가 '라로슈푸코'가 쓴 글에 보면 한 소년이 나옵니다. 이 소년은 유난히 넘어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소년이 다니는 길에 널린 많은 돌부리가 그 소년을 넘어지게 하여 그의 무릎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생겼습니다. 그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어서 빨리 어른이 돼야지."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소년이 넘어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거의 넘어지는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 나도 이제 어른이 되었구나." 하지만 소년이 그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소년이 다니는 길에 널린 돌부리를 매일 같이 치워주시는 아버지가 계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저는 혼자 힘으로 자란 줄 알았는데 제 뒤에는 항상 저를 바라보시는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 같으신 분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1절). 이 말씀의 의미는 "나는 그런 엄청난 일을 감당할 인물이 못됩니다. 하나님, 저에게는 이 많은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이끌고 갈 리더십이 없습니다. 제가 부족한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저는 못합니다." 모세는 주저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양하고 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12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나님께서는 못하겠다고 주저하는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동행하여 주시겠노라고 약속하십니다. 능력을 주시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강해지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어떠한 어려움이 처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함께 하십니다. 부르심의 사명을 감당케 하시려고 보혜사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게 하시고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인도하십니다.
3.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만드십니다(8).
현대인의 중 상당수가 풍요병에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이 풍요병의 특징은 허탈감과 절망감입니다. 모든 희망과 소망이 사라지는 일종의 무력증입니다. 이 병은 어떤 약으로도, 어떤 치료법으로도 치유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풍요병을 고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풍요병은 오로지 남을 위해 나누어줄 때만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형제를 돕는 것은 남을 돕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을 돕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사람을 살리면 나 자신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축복이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 8절 말씀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된 땅을 주시기 위해 모세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는 분명한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이곳에 세우신 것도 우리 교회를 통해 이 지역에 사는 한인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계속해서 복음을 흘려 내보내고, 사랑도 흘려 내보내고, 봉사도 흘려보내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축복을 흘려 내보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문제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통로는 막히면 안 됩니다. 오물이 흘러가는 하수구든, 피가 흐르는 혈관이든, 물이 흐르는 수도 파이프든 오랫동안 막혀있으면 썩든지, 터지든지, 동맥경화에 걸리든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모세처럼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능력으로 축복의 통로가 되어 나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그날까지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02.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