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사이드 한우리교회)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입니다. 약 1년반 동안 목양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에 교회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8-16장을 자세히 보시면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었던 실제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혼과 이혼, 우상의 제물, 공중예배, 성만찬의 문제, 부활의문제 등입니다.
오늘 본문에 문제로 등장되는 것이 우상의 제물에 관한 것입니다(1, 4, 7, 10).
우상이 만연한 고린도의 성도가 우상제물을 먹어야 하는가?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는가? 문제입니다.
우상의 존재를 믿지 않는 성도에게는 우상제물은 아무것도 아니며 그것을 먹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는 이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우상과 타협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상제물 문제는 고린도교회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신앙의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문제에 대하여 세 가지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1. 진리의 원칙으로 해결하라
4절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한마디로 바울은 우상에 대해서 4절에 단호하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은 사람들이 만든 것이며, 인간의 욕심과 두려움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허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가르침은 이런 우상에게 드려졌던 제물에 대해서 구속을 받거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것들은 쇠부치, 금은을 도금한 형체, 나무나 돌덩어리 같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10장 5절에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 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증거합니다.
결국,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은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중요한 것을 설명해 나갑니다.
2. 사랑의 원칙으로 해결하라.
1절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이 말은 지식보단 사랑이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무리 귀중하고, 값어치가 나가는 것이라도 올바로 사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이 지식이 올바로 사용되지 않으면, 이 지식이 형제를 망치게 하고, 형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약한 부분들을 이해하고 돕고 그들을 세우는 아가페적 사랑으로 그 지식을 완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지식이 참된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지식 자체를 정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성도의 삶의 대 원칙은 바로 사랑입니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증거합니다.
‘나만 괜찮으면 좋다’ 라는 식의 생각과 행동은 성경적인 믿음의 행동이 아닙니다. 성도의 대한 사랑이 결여된 어떠한 신앙적 행위나 영적인 지식은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3. 배려의 원칙으로 해결하라
9절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여기서 ‘너희’는 우상과 우상 제물에 대하여 바른 지식을 지닌, 소위 믿음이 강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약한 자들을 위해 조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조심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한분뿐이라는 지식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믿음이 성숙한자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2절).
우리로 인해서 약한 사람이 죄를 짓는다면, 우리는 나의 행위를 조심하고 절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아무것도 아닌 음식 때문에,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사람들을 신앙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라고 본문은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유익하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덕이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절제할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13절에서 이 문제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13절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사도바울은 고기를 당연히 먹을 수 있는 자신의 권리라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미성숙한 어떤 형제가 실족케 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바울의 고백은, 교회 안에서 발생되는 많은 문제의 해법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 은사와 달란트와 지식이 있을지라도 덕을 세우지 못하고, 형제를 세울 수 없다면 그 지식은 소용이 없습니다. 지식을 넘어 사랑과 배려로 주의 형제들을 세우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10/12/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