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지혜

에베소서 5장 15-21절
최창섭 목사

뉴욕에벤에셀선교교회

하나님께서는 잠언서를 통해(3:14-15, 4:6)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말씀하셨다. 바울 사도도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라”고 권면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당시 교회 안에 지혜 없는 자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에 지혜가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기 위해, 교회를 아름답게 섬기기 위해, 직장생활, 사업, 학업, 사회생활을 성공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솔로몬(왕상3:10,12-13)왕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큰 복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일천번제”로 표현했다. 그가 번제를 마치니 하나님이 크게 감동하시어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셨을 때에 그는 “백성을  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고, 그 구하는 것이 주의 마음에 들었다”고 하시면서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 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하셨다.

야고보서 1:5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다. 그만큼 지혜가 중요함을 말씀해준다.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준다. 엡5: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자세히 주의하라”하셨다. 왜? 삶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70-80년, 100년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보다 “삶의 질”이다. 인생은 두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닌 단 한번 주어지기 때문이요, 그 삶의 기간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그분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로 쓰임을 받는 기간이 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삶은 언젠가 주님께 보고해야 되고 우리의 영원을 결정짓기 때문에 너무 중요하다. 

그러면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한 지혜자의 삶은?                                 

 

1. “세월을 아끼라”(5:16)

 

하나님은 태고적 어느 시점에 시간을 만드셨고(창1:1), 그 시간 속에 인간이 살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뿐만 아니라 시간을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은“시간의 주인”이시다. 우리는 매순간 시간을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는 관리인과 같다. 

우리는 시간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의미의 첫째는, 정확성이고 둘째는 “효율성”이다.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하여 쓸데없는 것들은 잘라내고 최소한의 시간 내에 최대한의 생산을 이뤄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 삶의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그 모든 계획을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월을 아끼며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구속하라”는 뜻이다.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그 귀한 시간을 낭비하는 삶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하나님 앞에 가서 결산해야 될 것인데... 주어진 시간, 인생 다 낭비하여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에게 하루 24시간을 주셨다. 우리는 시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내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시간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는다. 언젠가 내게 맡겨주신 시간의 기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직고해야 하고, 그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시간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날 동안만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바쁜 일과 중요한 일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다 바쁘게 산다. 그러나 그 바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쁘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바쁘게 살았는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 무엇을 했는가를 보신다. 이제 우리는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가? 좋은 과실을 맺기 위해 불필요한 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것처럼, 무가치하게 내 인생을 낭비하는 일들의 가지를 과감하게 자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일이다. 주님께서는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하셨던 일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독대하심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고대 헬라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

1)크로노스(Chronos)=가만히 있어도 흘러가는 자연적 시간으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한 번 돌면 1년의 시간이 지난다. 즉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을 말한다. 2)카이로스(Kairos)=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성 있는 시간을 말한다.

시 90:10, 12,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    이다.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2. 주의 뜻을 이해하고 그 뜻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5:17) 

 

세월을 허송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종교 지도계층의 사람들 중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성경도 많이 연구한 자들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도 하였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한 자들이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셨다. “화있을 찐저,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왜 그러셨을까?

그들은 성경의 지식도 열심도 있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탕자의 비유”를 예를 들어주셨다. 작은 아들이 돌아왔다는 요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큰 아들은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자기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풀자 원망하기를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아버지를 거역한 일도 없고, 열심히 일했고, 속을 썩여 드린 일도 없는데, 나를 위해서는 염소새끼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더니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위해서는 소를 잡아 잔치를 베푸니 자기는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첫째 아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마음, 뜻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이다. “큰 아들과 같이 주님의 뜻과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자들이 많이 있다. 교회를 가장 힘들게 하는 자들이 누군지 아는가? 교회 일에 대한 열정도 있다. 문제는 주님의 마음도, 주님의 뜻도 모르고, 교회의 질서도 무시하고 자기 생각, 자기 열정만 가지고 일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나,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인지를 배우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의 뜻을 바로 알고 일해야 한다. 그런 자가 지혜로운 자    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분의 뜻이 다 담겨 있다. 말씀의 훈련을 받아가면서 교회를 섬길 때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성령충만한 삶을 살라(5:18)

 

당시 에베소는 방탕과 향락의 도시였다. 술에 취한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거나 길거리에 들어 누워 있는 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류의 사람들이 교회 내에도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술 취한 자를 비유로 들면서 성령충만을 받을 것을 권면하였다. 

술에 취하면 말이 많아지고, 폭언, 폭력을 휘두르며, 무엇이든 아까운 줄도 모르고, 아무데나 뒹굴고 배설하고 추한 행동을 한다. 이처럼 방탕한 삶을 살면 건강이 위협받게 되고, 돈이 저축될 수 없고, 무절제한 삶을 살게 된다. 교회 안에 이런 자들이 많다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지 못해 전도문을 막는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충만을 받아야 한다. 성령충만은 받아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 반드시 받아야한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의 죄이다. 그리고 성령충만함은 한번만이 아닌 지속적으로 받아야 된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받아야 한다. 목사도, 장로도, 안수집사도, 집사도, 권사도, 성도도....성령충만 받지 않고 교회 일을 하면 인간냄새만 피운다. 

마른 나무가 불에 잘 타지, 생나무는 잘 타지도 않고 연기만 피우는 것처럼, 성령충만하지 못한 자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주의 일에도 아름답게 쓰임 받지 못한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지배,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한다. 내 생각, 언어, 내 눈, 손과 발, 내 가치관, 내 행동을 다스림을 받는 것을 말한다.

 

4. 성령충만의 결과(5:19-21) 

 

첫째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란, ”영적인 이야기,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라 해석할 수 있고, ”서로 화답하며“란 “원활한 의사소통”을 말한다. 우리가 모일 때마다 나누는 대부분의 말은 어떤 말들이 주를 이루는가?.

우리가 정치와 경제얘기, 자녀이야기, 교육, 직장, 사업이야기 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대화의 밑바탕에 흐르는 생각이다. 생각의 밑바탕에는, 늘 주님 중심으로      대화하며 낙심한 자에게는 위로와 격려, 기도를 해주며 건설적인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란, 성령충만하면 우리 마음속에 언제 어디에 있든지 무슨 일을 당하든지 노래와 찬양이 계속되어야 한다.

셋째,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란 성도는 병들어도, 가난해도, 무슨 일을 당해도 감사해야 한다. 

넷째,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때 서로 간에 복종하는 마음이 생긴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복종하게 된다. 성령충만하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게 된다. 진리가 아닌 것은 서로 양보하게 된다.

 

결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남은 생애를 어리석게 살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세월을 아끼며, 주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그 뜻대로 살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주님의 일에 귀하고 복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다 되시라. 

 

07.2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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