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은 성도의 표시입니다

(요한일서 2장 29절-3장 3절)
김요섭 목사

열매교회

미국 신학교에서 기말고사 때 맨 마지막으로 물어보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학기 동안 읽어야 할 성경본문을 다 읽었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의 정답은 오로지 학생 스스로의 양심에 달려있습니다. 학생이 읽지 않고 읽었다고 대답해도 교수는 점수를 줍니다. 질문의 대답은 학생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양심적으로 대답하는 학생도 있고, 점수를 얻기 위해서 읽지 않고 읽었다고 대답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모르는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일을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를 아무도 본 사람이 없으면 그냥 숨기려 합니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어 드러나지 않으면 자신이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이 세상살이를 잘하며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만약 자신의 실수가 발각이 되면 재수 없어서 들켰다고 말합니다. 운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도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와 같이 생각하며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모습입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진 인간은 죄에 대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고 하는데 삶에서는 전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온갖 사기와 나쁜 일은 다 행하며 살아갑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은 성도들로부터 신앙에 대한 이론에 설복되어서가 아니라, 성도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이유는 성경 내용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교인들의 불친절함과 누추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도들을 향해서 무엇인가 다른 모습을 기대합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바라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도와 세상 사람과 삶 속에서 구별이 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은 신뢰가 갔습니다. 믿을 사람이 없으면 그래도 정직하게 살아간다는 성도에게 일을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더 나쁘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이민국에 가서 성도의 영주권 인터뷰에 도와주기 위해서 갔습니다. 한 가지 서류가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목사인데 제가 보증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민국 직원이 “저는 목사를 믿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왜 이와 같이 성도들이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신뢰를 상실해가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축복에 대한 잘못된 신앙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편향된 신앙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축복이 곧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라는 잘못되고 편향된 신앙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물질의 축복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물질을 모으는데 노력합니다. 그러는 과정에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고, 거짓말도 밥 먹듯 합니다. 그리고는 전혀 신앙의 갈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물질을 얻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추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잘 믿으면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물질의 축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물질 대신에 자녀의 축복을 주십니다. 물질 대신에 믿음의 축복을 주십니다. 물질 대신에 사람의 축복을 주십니다. 기도의 축복을 주십니다. 건강의 축복을 주십니다. 평강의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과 똑같은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성도와 세상 사람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도라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 당연히 우리는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겪는 갈등으로 인해서 고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갈등하면서까지 세상 사람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까? 요한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참된 성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성도가 거룩하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요한은 본문을 통해서 자신이 성도라면 거룩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 거룩의 추구는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v.29).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29절). 요한은 자신이 성도라고 말하면서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예수님을 안다면 예수님에 대해서 한 가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인데 바로 ‘예수는 의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의롭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서는 부정한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거룩하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자신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태어난 사람이라면 거룩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거룩을 추구한다는 것은 바로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난 사람이라는 표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룩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종으로 의에 대해서는 자유로웠다고 지적합니다(롬6:20). 믿지 않는 사람들은 거룩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갈등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거룩에 대해서 갈망합니까? 예수님으로 의의 종이 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예수님의 사람임을 나타내며 살아가기를 소원합니다.

 

2.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vv.1-3).

 

요한은 1절에서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엄청난 특권에 대해서 상기시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이 무엇인지 말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만을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입양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는 아버지인 하나님을 닮지 않으면 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 아버지의 형상을 닮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자녀가 된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는 완벽하게 닮을 것이지만 현재는 아직 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2절에서 설명해줍니다. 요한은 1절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 후 2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언제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는지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불 것이기 때문이니” 언제 우리가 완벽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자녀가 됩니까? “그가 나타나시면” 바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요한은 1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고, 2절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 온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된다고 말하고, 결론적으로 3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써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말해줍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어느 날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되기를 갈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지금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완벽하게 될 것이니까 지금은 아무렇게나 살자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처럼 되기를 사모하며 예수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행하신 것처럼 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피나는 싸움을 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요한 삶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써 우리는 얼마만큼 우리 자신의 거룩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우리가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명입니다. 성도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이 바로 거룩입니다. 

아멘!

 

05.1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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