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을 위한 저서들

정 성 구 박사 | 한국칼빈주의연구원장, 총신대명예교수

아브라함 카이퍼의 일생동안 가장 큰 관심사는 교회의 개혁이었다. 즉 화란 국가교회인 갱신교회(Hervormed Kerk)가 계몽주의 인본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국립대학의 신학부에 자유주의 신학을 허용함으로서 세속화 되었다. 과거 돌트총회에서 채용했던 돌트신경을 무력화시키고 있을 때 카이퍼는 다시 한 번 16세기 칼빈의 신학을 회복하면서도 다원화된 세상에서 교회가 세상을 향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교회개혁에 대한 카이퍼의 저서들은 대개 그때그때의 상황에 반응하면서 내어놓은 소책자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성육신, 교회의 삶의 원리”(De Menschwording Gods Het Levenbeginsel Der Kerk, 1867)는 카이퍼의 목회 초년에 발표한 소책자이다. 이 소책자를 전후해서 “우트레흐트 교회 시찰”(Kerkvisitatie te Utrecht 1868), “갱신교회의 예배, 에베서의 구조”(De Eeredienst Der Hervormde Kerk en De Samenstelling Van Haar Kerkboek, 1869)가 있고 카이퍼가 우트레흐트를 떠나 암스테르담교회로 가면서 시행한 강연 “보수주의와 정통주의”(Conservatisme en Orthodoxie, 1870)란 강연을 했고 이것이 소책자로 발행되었다. 이때 보수주의란 말은 오늘날 한국에서 쓰는 좋은 말이 아니었다. 화란 갱신교회가 자유주의 신앙노선을 받아들이면서 전혀 자기 변화를 할 줄 모르고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것을 보수주의로 칭했다. 이에 반해서 16세기 요한 칼빈의 신앙과 신앙을 지키고 돌트 규정을 지켜 나가려는 사람들을 정통주의로 분류했다. 그 외에도 “교회 개혁을 위한 소책자”(Tractaat van de Reformatie der Kerk, 1886)는 루터의 종교 개혁의 뜻을 설명하고 오늘의 교회가 걸어가야 할 이정표를 제시했다. 또한 카이퍼는 화란개혁교회(Gereformeerde Kerk van Nedesland)를 창설한 후 그간 고통과 슬픔을 1890년에 “Separatie en Doleantie”, 즉 “분열과 슬픔”이란 책으로 출판했다.

그리고 카이퍼의 소책자 중에는 “확신컨대”(Confidentie, 1973)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카이퍼는 교회개혁문제에 대해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는 목회 생활과 신문의 편집장의 체험을 살리면서 세 부분으로 확신의 메시지를 풀어 놓았다. 첫째로, 카이퍼는 자서전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교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종교 개혁자 요한 라스코(Lasko)를 연구하고, 레드클맆가의 상속인(the Her of Redclyffe)을 읽고, 베이스트교회에 개혁주의 성도들과 만남이라고 했다.

둘째는, 이 책에서 개인이나 가족이나 교회에 대해서는 교회가 먼저 변화되어야 할 것을 요구했다. 셋째는, 카이퍼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회상을 제시했다. 즉 국가 교회는 개혁주의적, 민주주의적, 자율적, 그리고 자립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교회에는 반드시 세 가지가 균형 잡힌 목회 즉 말씀의 목회, 예배의 목회, 선교와 박애의 목회가 되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카이퍼의 책들은 하도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책을 저술 했기에 여기서 모두 논할 수는 없고 중요한 몇 가지를 간추려서 저술가로서의 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 외에도 카이퍼는 그의 정치적 스승인 흐룬 반 프린스터와 수많은 편지를 교환했으며 그것은 카이퍼 사후에 방대한 책으로 출판되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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