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주의 역사와 사회정의의 태동, 그리고 정당의 대립구도(상)

새라김 사모 (TVNG 설립자, TVNEXT.org)

오늘은 미국 역사를 돌아보며, 미국 안에서 발생했던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을 살펴보겠습니다. 역사를 올바로 알게 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걸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미국도 한국도, 매우 진보적인 정치인들의 욕심으로 인해서, 이제는 한 국가의 역사까지도 왜곡하여 어린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국가적 위협이며 가장 큰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온통 혼돈스런 정보들로 가득 찬 오늘, 역사를 바로 알고 미국 안에 있는 교회들의 영적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사회정의-노예해방”을 위해 싸운 크리스천들의 희생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의 법에 따라서 노예제도는 미국의 13개 콜로니(Colony)에서 합법화 되어있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대립구도가 형성되는 안건이었다고 역사가 기록합니다. 17세기에 들어서서 기독교 복음주의 신교도들이 노예제도를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 들어서는 노예의 수가 6백만 명에 달하였는데, 역사는 당시 ‘노예제도를 지키려는 자들’과 ‘노예를 해방시키려는 기독교인들’의 처절한 갈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730-40년에 일어났던 First Great Awakening(영적대각성)으로 잘 알려진 신앙부흥운동의 주된 안건중 하나도 노예제도의 폐지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영적으로 깨어있는 기독교인들이 17세기, 18세기 때 얼마나 노예해방을 위해 노력하였는지는 역사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 후 1775년에 American Revolution War로 알려진 미국 독립혁명이 영국을 상대로 발생하였고 그 전쟁은 8년간 지속되었습니다.

United States of America의 탄생

그리고 드디어 1776년 7월 4일에 미국 국회는 그 유명한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를 작성하고 그때 바로 United States of America 라는 국가, 미국을 건국하게 됩니다. 마치 한국에서는 일제시대에서 독립했던 8.15 광복절과 같은 역사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독립혁명이 끝남과 동시에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제일 먼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펜실베이니아 주를 뒤따라 대부분의 북미주에서도 노예제도 폐지법을 통과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1808년에 들어선 토마스 제퍼슨(미국 제3대 대통령) 정권아래 노예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1854년에 미국 건국당시 가장 먼저 만들어졌던 민주당(처음에는 Federalist였음)은 당시 노예해방운동가들이 만들어놓은-흑인노예들이 다른 주로 팔려서 이주하는 것을 금하는 ‘미주리 타협(Missouri Compromise) 법안’을 다시 되돌리고자(overturn) ‘캔자스 네브라스카 법안(Kansas-Nebraska Act, KBA)’을 새롭게 만들어 통과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이 법안(KBA)은 미국 내에 노예가 더 확산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공화당”의 탄생-아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노예해방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지지하던 민주당 쪽에서 노예해방을 계속 반대하고 나왔기에, 거기에 대항하는 “노예해방운동가들(영국식민지 때부터 크리스천들로 결성됨)”이 결국 ‘공화당’이라는 새로운 정치정당을 결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아브라함 링컨은 공화당이 결성되고 몇 년 안된 1861년에 첫 공화당출신의 대통령으로 임명되게 됩니다.

1861년 같은 해에 결국은 노예해방을 원하는 사람들과 원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Civil War, 남북전쟁입니다. 노예제도를 허용하는 미 남부지역의 주들은 남부연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고 그 당시 노예들을 해방코자 했던 “자유 주(Free States)”들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결국 노예들을 해방하려는 자유 주들은 연합하여 그들에 맞서 4년간의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때 공화당 출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지휘아래 연합군은 남부연방군에게 승리하고 마침내 노예제도는 1865년에 폐지되는 역사적 획을 긋게 됩니다.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지휘아래, 노예 해방령(Emancipation Proclamation)이 선포되었고,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 들어 노예해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수정헌법 제13조(13th Amendement)가 제안되었는데, 이 법안에 공화당원이 100% 찬성, 민주당원 23% 찬성으로 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흑인 노예들에게 진정한 자유와 인권이 주어진 것이었죠. 1867년, 기적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이라고 할 수 있는 150명의 흑인과 20명의 백인으로 이뤄진 텍사스 주의 공화당이 휴스턴에서 결성된 일입니다. 이를 비롯해 남부지역의 다른 많은 주에서도 흑인들을 위주로 한 공화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역사는 기록합니다.

다음해인 1869년 제 41대 국회에서는 공화당 소속의 흑인 남성이 흑인으로는 최초로 하원의원으로 선출됩니다. 민주당에서는 65년 이후인 1934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최초의 민주당 출신인 흑인 하원의원이 선출되었는데, 그동안 공화당에서는 무려 23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 남부지역의 주들이 헌법 제 14조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이에 맞서 1870년 국회에서는 흑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헌법 제 15조를 공화당 100%, 민주당 0%의 지지율로 통과시켰습니다.

1865년 테네시 주에서는 흑인의 동등한 권리를 반대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미국 남부 주들의 백인 비밀단체 Ku Klux Klan(KKK)가 결성되었는데, 1872년에 들어서야 KKK 배후에는 민주당이 있었음을 시인하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875년에 통과된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76, or Enforcement Act)은 흑인들에게 숙박, 대중교통, 재판에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미국의 연방법(Federal Law)입니다. 이 법안은 공화당원의 99%, 민주당 0%의 지지율로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연방 대법원은 1883년에 이르러 이 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해 1876년에 들어서 하원은 민주당원들에게 장악되었고 1957년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공민권 법률도 더 이상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1892년에 들어선 하원뿐 아니라 상원, 백악관까지 민주당에게 장악되었고, 그 후 공화당의 지지로 통과되었던 법률들이 차례로 폐지되기 시작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Jim Corw Laws(흑인 차별법), poll taxes(인두세), literacy tests(문맹테스트법)와 같은 현상들이 각 주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립학교내 인종차별을 금지시킨 미 연방법원의 Brown v. Board of Education 결정을 뒷받침하는 시민권 법안(Civil Rights Act of 1957)이 1957년에 공화당 92%, 민주당 54%의 지지율로 통과되었습니다. 1964년에 통과된 시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은 인종, 민족, 출신국가, 종교, 성별에 대한 차별을 불법화시켰습니다. 지지율은 공화당 80%, 민주당 64%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예해방을 통해 공화당으로 시작된 흑인들이 어떻게 민주당으로 옮기게 되었을까요? 다음에 계속하여 알려드리겠습니다. 역사까지 왜곡되고 있는 미국과 한국에 하나님의 정의가 일어날 수 있도록, 세뇌되는 우리자녀들의 분별력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학부모들과 어른들이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으로 철두철미하게 무장되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우리도, 교회도, 인본주의와 진화론에 빠져 말씀의 원리원칙을 분별하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이 더더욱 절실한 때입니다. sarahspring20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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