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수요일 오전에 성경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성경공부를 하는 데 이어서 간단히 식사를 나눈 후에는 2부 순서로 찬양 노래 교실을 한다. 신앙고백서들과 요리문답서 등 교리 공부로 진지했던 시간 후에 식사 나눔과 함께 부르는 노래들이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목회를 은퇴하고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음대 출신의 목사님 부부께서 인도하는 이 시간에는 찬양도 부르지만 동요와 건전가요, 기억의 숲에 누워있던 한국과 외국 가곡도 불러와 선율과 화음으로 만난다. 그래서인지 주로 70대를 넘어선 교인들이 함께 하는 수요일 오전은 추억이 묻어나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태원 사고와 같은 소식들로 무거워진 마음들에 오랜만에 이틀간 내린 비로 촉촉해진 마음 때문일까 지난주 선곡된 ‘꽃병’이라는 노래가 이 시대를 향한 교회의 마음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생각나나요 아주 오래전 그대 내게 주었던 꽃병 / 흐드러지게 핀 검붉은 장미를 가득 꽂은 꽃병 / 우리 맘이 꽃으로 피어난다면 바로 너겠구나 / 온종일 턱을 괴고 바라보게 한 그대 닮은 꽃병... 어느 모퉁이라도 어느 꽃을 보아도 나의 맘은 깊게 아려오네요 / 그대가 준 꽃병 생각나나요 아주 오래전 그대” 그대를 꽃이라고 노래한 시인은 많았지만, 이 노래 가사는 그대가 ‘꽃병’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부흥사 무디가 꽃병을 거론했었다. “회개란 꽃병 속에 넣은 주먹과 같다”고 외친 무디는 이렇게 덧붙였다. “아가리가 좁은 꽃병 안에서 주먹을 움켜쥐면 손을 뺄 수 없다. 옛 관습과 욕심과 아집을 버리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다.”고 주먹을 펴고 손을 빼내라고 회개를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찰스 카우만은 이런 꽃병얘기를 남겼다. “어떤 사람이 경매장에서 싸구려 꽃병을 샀다. 그는 그 꽃병 안에 값진 기름을 넣어 보관했다. 그래서인지 꽃병은 기름을 다 비운 후에도 향내가 여전했다. 근데 어느 날 꽃병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이 났다. 그런데 그 깨진 조각마다에서는 고소한 기름 향기가 퍼져나왔다.”

활짝 핀 꽃이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회개와 향기를 가르쳐주는 ‘꽃병’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주는 노래가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교회의 미래를 염려하며 준비하자는 심포지엄과 세미나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리서치 통계가 제공되기도 하고, 발제강연과 논찬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장에 참석하기도 하고 내용을 전해 듣기도 하는데, 주제가 ‘꽃’에서 ‘꽃병’으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바닥에 꽃병 떨어져 깨지는 소리도 들려오고, 꽃병에 넣고는 빼지 못하고 쥐고 있는 주먹 쥔 손을 여전히 풀지 않고 있다.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크고 강해지려는 욕구가 담긴 꽃병 앞에서 이 꽃이 가장 아름답고 예쁘다고 박수치는 소리가 가득한 모습들.

교회들이 장미, 백합, 수선화, 접시꽃 그리고 수많은 꽃들에 관심을 갖다보니 저마다 자기 자랑, 자기 과시로 자랑하는 꽃밭이 되어버린 것 같은 시대 속에서 구약 에스라서는 보잘것없이 던져진 창고 속 그릇들이 얻게 된 성전 회복의 기쁨을 말하고 있다. 바사의 고레스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때 왕궁 창고에 있는 전리품으로 가져간 성전 그릇들을 다 갖고 가라고 창고문을 열어 주는데 금그릇은 거의 다 사라지고 30개 밖에 안남아있지만 은접시 천 개를 비롯해 오천사백 개의 그릇을 가져가라고 한다. 금그릇은 바사의 어느 귀족 집의 부엌에 머물러있게 되지만, ‘그보다 못한 그릇’들은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그릇으로 회복되게 되는 사건 속에서 꽃병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금그릇, 세상의 고귀한 가치는 바사국 귀족집에 그냥 살아라. 먼지 덮여 버려졌던 보잘 것 없는 그릇들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에스라의 메시지가 이런 세상에 비춰오는 한줄기 소망이다. 창고에서 나와 귀족 집 식탁에 오른 것을 자랑하는 금그릇같은 신앙을 부러워했던 교회들은 이제 버려진 자리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회복의 대열에 설 수 있게 되었다. 그 소망의 빛을 찾아가야 한다, 그 소망이야말로 ‘꽃병’을 아름답게 해줄 진정한 ‘꽃’이 아니겠는가! 그 꽃병같은 교회로 회복해야 하지 않은가! 할로윈 데이를 지나고 추수감사절과 이어서 상업화된 성탄 장식들이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계절, 온통 ‘꽃’들로 덮여오는데 어디선가 양희은의 ‘꽃병’노랫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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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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