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탄성!

은희곤 목사

평화드림포럼 대표

「1981년 여성 최초로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종신 교수직에 임용된 엘렌 랭어(Ellen J. Langer)는 70~80대 노인 8명을 대상으로 재미있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인 곳의 집은 평범한 가정집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정집의 모든 것은 20-30년 전의 스타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20년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의 추억여행에 초대된 것이었는데 이 여행에는 2가지 규칙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1958년으로 돌아가 그 시대를 사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인들은 매우 즐거워했습니다. '벤허',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의 영화를 지금 처음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보고, 로즈메리 클루니의 노래와 냇 킹 콜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두 번째 규칙은 집안일을 직접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신도 힘든 노인들은 내켜하지 않았지만 노력해서 청소, 빨래, 요리 등을 직접 해냈습니다. 그런데 노인들에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보호자의 도움 없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노인들이 시간이 지나자 혼자 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고, 식욕도 크게 늘었습니다. 마치 몸과 마음이 진짜 20-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젊음과 건강을 단순한 지난날의 추억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내 마음속의 한계를 깨트릴 수 있다면, 정신은 육체의 힘듦과 부족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퍼온 글) 사는 게 참 바쁩니다. 이 바쁨이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우리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게 만듭니다. 사람이 제대로 산다는 의미와 가치, 인생의 꿈과 목표 등등은 어느덧 그렇게 그렇게 살다가 부르시면 가는 인생 안에 매몰되어지고 사치스러운 감정으로 치부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잠깐이지만 이 가을에 ‘시계 거꾸로 돌리기’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한번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등등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의 작가 ‘모치즈키 도시타카’는 행복한 사람들은 다음 3가지를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과거에 감사하고, 둘째는 미래의 꿈을 꾸고, 셋째는 현재를 설레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과거라는 영역의 분명한 고백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서로 작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롬 8:28) ‘과거에 감사’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보따리 안에 담겨진 수많은 삶의 내용들이 경험과 경륜이 되어 미래의 나를 그려봅니다. ‘미래의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이 나의 현실이 되도록 오늘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정직한 수고의 땀들 안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오늘의 셀레임’입니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추억여행’은 우리들의 오늘을 반복되는 일상의 무기력에서 ‘설레임’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주님(히 13:8) 안에서 우리 크리스챤들의 ‘오늘의 셀레임’은 무엇일까요? 아니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선한 영향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크리스챤들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 하나님 나라를 점점 넓혀 나가는 일(마 13)에 꿈을 꾸며, 오늘도 성령이 도우심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 바로 이 일에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그 믿음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신앙의 무기력, 제도적 종교라는 틀을 깨고 나와 다시 한번 역동적 신앙의 자리를 회복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개혁과 변화를 위해 일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 우리 크리스챤들의 ‘오늘의 설레임’이 아닐까요? 바로 ‘신앙의 탄성’입니다. 탄성(彈性, elasticity, 문화어: 튐성)은 힘을 더하면 형태가 바뀌지만, 힘을 빼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성질을 말합니다. 영어로 ‘elasticity’, 그리스어로는 ‘돌아오다’라는 뜻입니다. 브레이크 없는 욕망이라는 열차로 한컷 부풀어 오른 즉 어느덧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마음먹는 교만이라는 힘이 가해져 기형적 형태로 변한 인생이, 하나님이 아담(=사람)을 향한 처음 2 질문중 1번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와 주님의 ‘탕자의 비유’(눅 16)」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와의 올바른 관계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2번째 질문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와 주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를 통해 ‘나와 세상, 사회, 공동체와의 올바른 관계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세상 안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도(마 16:24)를 통해 세상과 공동체를 향해 선한 영향력의 길을 걸어가는 그 자리를 회복하는 것, ‘신앙의 탄성’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예배를 통해 우리들의 영성이 살아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이렇게 부르시고 다시 회복시키셔서 ‘오늘의 설레임’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감사의 계절인 이 가을에 시계를 거꾸로 돌려 ‘신앙의 탄성 - 신앙의 초심 자리’와 ‘오늘의 설레임’이 회복되는 은총이 감사의 내용으로 가득 채워지시기를 축복합니다.                 

pastor.eun@gmail.com

 

11.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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