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公儀)와 인간의 감사(感謝)로

이동진 목사

(성화장로교회)

감사라는 한자 단어는 다양한 뜻을 갖고 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감사(感謝)가 있는가 하면, 일을 잘하고 있는가 조사하고 따져보는 감사(監査)도 있고, 자기가 싫으면 가지 않을 평양감사(監司)도 있다.

인류 역사가 늘 그랬지만 세계정세는 점점 더 흔들리고 있다. LA의 유가는 고공행진에 맛을 들인 듯 내려갈 줄을 모르고, 집 있는 사람도 렌트로 거주하는 사람도 모두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의 소식과 흔들리는 세계 경제를 개개인이 가정경제에서 피부로 체험하다 보니 사람들의 심리는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만 같다.

그러나, 어느 시대이든 성경은 광야, 골짜기, 전쟁, 기근 등을 통해 어둠의 세력이 존재하는 곳이 세상이라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빛은 사라진 적이 없으며 그 빛을 찾는 자들에 의해 회복과 소망의 힘이 역사를 이끌어왔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LA에서는 뜻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 위브릿지 컨퍼런스(We Bridge Conference), ‘예배회복과 선교적 삶으로의 결단’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모임은 ‘교회와 교회, 세대와 세대, 교회와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렸다. 목회자, 신학자들의 강연과 현장 목회자들의 간증들도 유익했지만, 이 모임이 감사한 근원적인 이유는 자립한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재정후원금을 만들어 미자립 교회(정한 기준이 있다)에 3년간 월 500달러를 지원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이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팬더믹 기간 동안 무너지고, 흩어진 크고 작은 교회들이 ‘사랑의 나눔으로 하나임을 확인하는 만남’을 모토로 모였기 때문이다.

재정을 후원하는 교회나 재정지원을 받는 교회는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 오직 ‘We Bridge’라는 이름 안에서 모으고 나눔으로써 ‘하나’라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다. 한 두 대형교회가 이끌지도 않고, 어떤 연합단체가 이끌지도 않는다. 교회들이 서로 다리(bridge)가 되어 든든하게 서감으로써 나아가 이 시대, 이 세상에 선교적 교회로서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세상에 다리가 되는’ 교회의 사명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러한 모임에 참여하면서 ‘감사’라는 단어를 통해 다시 다짐해본다. 감사(監査)와 감사(感謝). 한국 국회는 국정감사(國政監査)가 진행되고 있다. 행정부가 하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고 점검하며 확인함으로써 바르게 사용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국정감사이다. 거의 칭찬이나 격려는 없고, 인신공격이나 흠집내기 등으로 얼룩져 있지만,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필요한 장치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필요한 것이 이와 같은 감사(監査)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공의(公儀, Righteousness of God)’라고 부르시고 당신이 그 공의의 중심에 서 계신다. 그러므로 교계의 행사에 대한 감사(監査)는 숫자나 방법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조사이다. 재정지원을 할 만해서 참여하는 자립한 교회나, 미자립상태로 지원받는 교회나 중요한 것은 이 공의의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필요한 것이 감사(感謝, thanksgiving)이다. 없으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많으면 감사를 버려버린다면 교회가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어제 사과 농장을 갔다. 사과의 품종이 얼마나 많은지… 후지, 갈라, 골든 딜리셔스, 허니 크리스프 등 무려 수십 가지인데 입구 전시장에 열댓 종류의 사과를 시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맛이 다 다른데 다 맛있다. 감사는 어떤 상황, 어떤 때에도 아름다운 인생을 맛보게 해준다는 깨달음을 다양한 사과 품종들을 통해 얻고 돌아왔다. 

이 시대, 한마디로 살기 힘들다,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公儀)와 인간의 감사(感謝)가 있는 한, 교회가 아무리 힘든 상황을 지나며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을 살아내는 것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참으로 공의로운 교회들이라고, 아름다운 삶이라고 인정해주실 것이다.

djlee7777@gmail.com

10.15.2022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