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장로교회)
LA의 기차여행은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낭만이 있다. 하룻길 여행이라면 다운타운의 유니온역에서 남쪽으로는 오션사이드나 샌디에고까지, 북쪽으로는 산타 바바라나 샌루이스 오비스포까지 다녀오는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기차여행에 가장 좋은 친구는 한 권의 너무 두껍지 않은 책이면 훌륭하다. 저자의 프롤로그(Prologue) 부터 에필로그(epilogue) 까지 다 읽으면 도착할 수 있는 기차여행에는 출발역과 도착역이 있다. 그 길이 여행이라면 출발은 설레이고, 도착은 행복하지만, 그 기차에 탄 모든 승객이 여행길은 아니어서인지 책을 든 승객이 많지않다. 하긴, 책보다 흥미로운 스마트폰을 든 손에 책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정보, 분량, 흥미 모든 면에서 스마트폰은 책과 비교가 안 된다. 그런데도, 이번 짧은 기차여행 길에 책을 한 권 백팩에 넣은 것은 지혜로운 결정이었고, 행복한 결과를 가져왔다. 스마트폰에 없는 프롤로그를 읽었고, 도착할 때쯤엔 에필로그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는 마치 책을 읽지 않는 스마트폰 인생과도 같다. 프롤로그도 에필로그도 없는 교회, 창세기의 알파도 요한계시록의 오메가도 없고 줄거리도 잃어버린, 그래서 더 이상 생명이 이어지지 않는 교회가 되어가는 것 같다. 임진각에 서 있는 고철 덩어리 기차처럼 잠시 와서 보고 가는 무생물이 되어가는 것같아 두렵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 진행될 이야기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상징하거나 보여준다. 신앙 인생이 들고 올라탄 성경책은 음식의 에피타이저(appetizer) 처럼 맛깔스러운 주방장의 손맛을 짐작하게 하는 프롤로그로 시작해 에필로그의 붓끝이 하늘을 가리키며 막을 내리고 있다. 예수 부활 이후, 그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생명을 공급받은 사람들은 지난 2천년간 지구촌 곳곳에서 붓끝이 가리킨 하늘이 열려 쏟아져 들어오는 체험을 하고 있다.
이민교회가 그 체험을 하고 싶다. MT가는 경춘선 열차에서 해방감에 외쳐대는 시끄러운 소리나 미끄럼처럼 달려가는 KTX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회사원의 피곤이 교회라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차창밖에 펼쳐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기쁨이 교회에 회복되길 바란다. 마주 앉아 나누는 대화가 이제 출판을 앞둔 책의 에필로그를 쓰듯 깊은 영성의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교회의 모습이 되길 바란다. 한국 최초 ‘임종감독’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송길원 목사는 ‘죽음이 품격을 입다’라는 책에서 ‘인생은 원더풀, 떠남은 뷰티풀’이라고 정의했다. 송목사는 인생의 죽음을 연구하고, 도우면서 ‘장례식보다는 생전식(生前式)’, ‘임종 환자를 위한 나들이’ 등 이른바 죽음 수업을 맡아주는 교회의 역할을 제안했다. 그야말로 “찬양과 존귀 영광 지혜 권세 주님께 돌리세…. 할렐루야" 를 외치며 영생의 시작을 연결해주는 요한계시록과 같은 인생의 에필로그를 쓰는 삶을 안내하고 있다.
여름 휴가철, 교회는 VBS와 수양회의 절기이다. 그런데, 수많은 교회는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열지 않는다. 아니 열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한 가지, 노년층은 많아졌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책 앞뒤에 있는 저자의 마음글처럼 인생에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필요하다, 생명체인 교회는 그 알파와 오메가의 메시지가 더욱 필요하다. 출발역을 떠난 기차는 아직 계속 달리고 있는 중이다. 영적 점령군이 또 공격해온다는 경종(警鐘)이 오늘도 울려오고 있다. 창세기의 프롤로그를 선언하는 교회, 요한계시록의 에필로그를 선포하는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 완성된 작품의 앞뒤에 밝힌 저자의 마음처럼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07.23.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