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상처를 주옵소서!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2016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특히 내가 늘 사용해왔던 너무나 상투적인 “희망찬” 새해라는 말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를 생각하였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또한 한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사로서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가, 무엇을 희망해야 정당한가, 그리고 무엇을 참으로 염원해야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였다. 그러다가 줄리안(Julian)의 평생의 희망 내지는 기도제목을 만나게 되었다. 14세기 영국의 노르위치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던 성녀 줄리안은 흑사병이 만연하여 민심은 흉흉하였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으로 경제가 피폐해진 가운데 “결국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All shall be well)라는 메시지로 백성들을 위로하며 희망을 일깨웠던 사람이다. 교회사에서 신비주의자로 분류되는 줄리안은 30세 어간부터 16번에 걸쳐서 환상을 보면서 평생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를 추구한 사람이었다. 줄리안은 32세 때에 하나님께 세 가지 소원을 간구했다. “내 삶 속에 세 가지 상처를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강렬한 소원이 불같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세 가지는 통회(Contrition)의 상처, 긍휼(Compassion)의 상처,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Yearning)의 상처다.” 그녀는 이 세 가지 상처는 약(藥)과 같아서 우리 마음이 이 상처 때문에 아파해야 비로소 치유된다고 하였다.

줄리안은 자신에게 통회의 상처를 달라고 기도하였다. 통회의 상처란 자신의 죄에 대해 마음 아파함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상처는 우리를 정결한(Clean) 사람이 되게 한다고 믿었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뼛속 깊이 슬퍼하기 원하였다. 그녀는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지도 않고 자기를 변화시키는 노력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값싸게 받아들이는 것을 경계하였다. “하나님, 제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 저 같은 죄인을 위해 성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잊어버리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제가 회개의 아픔으로 상처를 받게 하옵소서. 제가 범죄한 것을 슬퍼하게 하시고 그 슬픔 속에 살게 하소서.” 우리들 대부분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슬퍼하다가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죄를 떠나 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연조가 어느 정도 깊어지고 교회의 직분이라도 맡게 되면 죄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다. 겉으로는 자신이 여전히 죄인이라고 말하지만 죄감(罪感)은 무뎌지고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이 행한 의로운 일이나 헤아리고 남의 죄나 간섭하기 십상이다. 우리가 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죄악 된 이기심에서 비롯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줄리안은 통회의 상처가 쿡쿡 쑤실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을 구하였다.

또한 줄리안은 긍휼의 상처를 구하였다. 그녀에게 이것은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해 같이 마음 아파함이었다. 그녀는 이것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준비된(Ready)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그녀는 긍휼의 상처가 있다면 죄 많고 불쌍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당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경건이 ‘습관적인 봉사’로 변질되지 않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A. W. 토저 목사는 오늘날 기독교의 최대의 적은 물질주의나 자유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리방황하는 양떼와 같은 사람들을 보고 민망히 여기셨는데 막상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냉정하다는 것이다. 교리에는 정통하다고 자랑하면서도 긍휼이 무엇인지는 모른다는 것이다. 나 자신부터도 그렇다. 목회를 해온 세월이 길어지면서 교인들의 아픔에 자꾸 무덤덤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의는 차리고 말은 깊이 공감한다고 하면서도 함께 아파하지는 못하는 나의 무정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목회 초기에 봉제업을 하는 교인의 공장에 들어서다가 많은 실밥 먼지 때문에 숨이 콱 막히고 목소리가 갑자기 변했던 적이 있다. 그때 이런 현장에서 24시간, 365일 일하는 교인들의 아픈 현실에 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저들을 위해 함께 아파하는 좋은 목자가 되어보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 초심이 스러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줄리안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상처를 구하였다. 이것은 그녀에게는 하나님을 마음 아프도록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있어야 존귀한(Worthy) 사람이 된다고 하였다. “오, 하나님! 불치(不治)의 향수병(鄕愁病)으로 저에게 상처를 주소서. 이 세상이 저의 고향이 아니오니, 어찌 이곳에 정착하리이까? 어찌 하늘의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저에게 이 상처를 주시고 제가 늘 향수병에 시달리게 하소서.” 부끄럽지만 내가 하나님에 대해 미치도록 그리워해본 것이 언제였나 싶다. 하나님께만 골몰하여 그 영광을 사모하며, 하나님에 목말라 헐떡거리며 하나님을 찾는 목사로 거듭나고 싶다. 올해, 아니 평생 줄리안의 이 세 가지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되어야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을 흉내라도 내는 목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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