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바라보는 대상에 따라 우리의 인생의 진로가 정해집니다. 돈을 열심히 바라보면 돈 돈 돈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보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살인까지도 불사합니다. 권력을 바라보면 힘가는 자리만을 눈에 불을 키고 잡으려합니다. 여자(남자)를 바라보면 그 여자(그 남자)의 마음을 얻고 제 마음대로 하고픈 것에 삶이 집중이 됩니다. 문제만을 바라보면 그 문제에 삼켜집니다. 문제의 크기가 자신이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면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아 힘겹기만 하면 문제를 잊고자 사람들은 손쉬운 방법을 찾아 술을 마시거나, 쾌락에 빠지거나 회피하기도 합니다. 온갖 종류의 쾌락에 마음을 빼앗기면 중독이 되고 우상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각종 우상들에 눈을 주면 저가 바라보는 우상의 모습대로 비인격화가 됩니다. 무엇을 바라보는 가에 따라 그 인격이 배어나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을 닮은 인격의 사람이 됩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 그 어미가 이름하여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역상4:9-10). 야베스가 처한 환경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못했습니다. 어떠한 고통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수고롭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수고가 얼마나 컷던지 자기 아들의 이름을 ‘고통’이라고 불렀습니다(야베스란 이름의 뜻은 고통이란 뜻입니다). 야베스는 자라며 ‘얘 고통아!’라고 이리저리 치이며 미운 오리 새끼로 자랐습니다. 구박받으며 사는 것이 결코 살맛나는 상황은 아닙니다. 야베스는 그야말로 자신의 더러운 처지가 진저리나게 싫었습니다. 지지리도 복이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좁디좁은 우물 안에 갇힌 것같이 답답하고 숨통이 막혔습니다. 조여 오는 고통 속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저를 도와줄 어느 사람의 손길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옥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 절망의 바닥을 쳤습니다. 그 무엇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거기서 그는 고통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지푸라기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숨막히는 상황만을 응시하던 눈을 하나님께로 돌렸습니다.
“오직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절대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지?” 머리 어느 구석에 처박혀있던 믿음의 작은 한 자락이 떠올랐습니다. 조상들을 모든 고통에서 구원해주셨던 일들을 깊이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동자같이 조상을 지켜주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시야를 바꾸며, 지경을 넓혀주시길 구했습니다. 바라보는 대상을 확실히 바꾸었습니다. 그 분을 바라보면서 소원하였습니다. 복에 복을 더해주시라고 입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를 시인하고 복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잡아 주시기만 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이 손을 꼭잡고 일으켜 주시리라는 생각을 죽기로 붙들었습니다.
벌떼같이 달려들어 마구 심정을 뒤흔드는 모든 번민의 소리들을 거절했습니다. 오직 주만 똑바로 쳐다보며 폭풍우 환난 속을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의 품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절박하게 부르짖었습니다. “복에 복을 더해 주세요. 지경을 넓혀 주세요. 주님 손잡아 주세요. 손을 꼭 잡아 도와주세요. 환난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근심에서 자유롭게 해주세요.” 하나님은 자신을 목말라 찾고 의지하는 양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생애는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께서 동행하시며 귀히 여겨주시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누구나에게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다 나름대로의 어려움들이 산같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임시변통일 뿐입니다. 야베스와 같이 바라보는 대상을 하나님으로 바꾼다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열릴 것이니라”(눅11:10) 말씀의 약속대로 그가 받은 모든 축복이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주 앞에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보는 가 그 선택대로 열어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