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구별된 노아가족의 삶

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자녀인 인간들이 죄악에 치우쳐 극에 달하니 어쩔 수 없이 쓸어버릴 계획을 하십니다. 구해주어도 결국엔 또 죄악으로 썩어버릴 것을 아시면서도 노아를 부르시어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 할아버지들로 500년간 신앙교육을 받은 노아에게 홍수심판과 살아남을 방대한 구원의 방주를 지으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방주제작에 필요한 것을 자세히 일러주시고, 노아는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따르는 100년의 긴 세월간 순종의 훈련을 통해 서로 간에 신뢰가 깊어갑니다. 말이 100년이지 홍수는커녕 비도 별로 오지 않는 멀쩡한 날들이 계속되는데 온 식구가 아버지 노아의 말에 순복해 방주를 짓는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닙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온 가족을 손가락질하고 왕따 할 때 그 가족이 내심은 어떤지 몰라도 반항의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완성하는 100년간 얼마나 많은 사건이 지나갔을 것인가? 도무지 황당한 계획을 내놓고 멀쩡한 날에 방주를 짓는다니? 혼자면 몰라도 온 가족이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정말로 기막힌 삶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고지식한 믿음의 길 때문에 중간에서 고민했을 노아의 아내의 심중을 헤아려봅니다. 날이면 날마다 온 가족들에게 쏟아지는 조롱의 화살들… 아이들은 아버지에게는 감히 뭐라 못해도, 맹종하는 어머니에게만은 어머니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는 오히려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다 쏟아 놓았겠지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쉬쉬 말리고 달래고 내내 맘 조리고 살았을 노아의 아내…힘든 현실 속에서 아이들을 달래가며 남편을 조용히 세워가는 현모양처의 모습이 보입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노아의 사명에 저는 묵묵히 힘을 보태줍니다. 이토록 받쳐주는 아내의 든든한 보조가 없었다면 아마도 가족마저도 노아에게서 등을 돌리고 방주를 짓는 계획은 무산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무지막지하게 큰 방주를 혼자 지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인력이 합심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외골수인 그가 과연 가족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순종을 불러내도록 자상했을까요? 하나님이 방주를 지라하시니 방주를 짓는다고 계획을 통고하고 이에 필요할 명령을 한 것 외에 가족들을 설득했을까요? 깊이 당시 상황을 생각해볼수록 노아 아내의 조용한 내조가 큰 몫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노아가 500세에 방주 짓기를 시작하고 502세에 셈을 낳기 시작하여 함, 야벳 (나이 터울을 자세히 몰라도) 아이를 낳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의 일이 방주 짓는 일이었을 테니 나이가 들어가며 왜 우리는 남달리 이렇게 이상한 일을 하며 살까 회의들이 들어도 아버지의 하시는 황당한 일을 반역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노아의 아내가 세상 사람들의 의견을 동조했더라면 그런 연합은 불가능했겠지요. 노아의 믿음보다도 어쩌면 더 투철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방주를 완성하는 것은 가족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인데 온 가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끈끈이의 역할을 잘해냈다고 보입니다.

방주를 짓고, 방주 앞으로 나아온 동물들을 방주 안에 각기 맞는 방으로 들입니다. 세상의 안목으론 정신이 돈 것 같은 노아를 가장이라 믿고 모두가 한 마음으로 순종하니 8식구 모두가 홍수의 심판에서 구원받는 복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진짜 홍수가 올까? 긴가민가하던 홍수가 쏟아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다 죽었지만 홍수를 통과하여 살아남은 8식구의 기막혔을 마음을 생각합니다. 가장의 삶의 뚜렷한 믿음이 온 가족의 생명을 좌우합니다. 또한 노아의 방주사건은 노아 한사람의 승리라기보다는 노아 8명 가족의 연합의 승리입니다. 가족은 죽어도 함께, 살아도 함께 삽니다. 지상의 모든 믿는 자의 가정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신앙관으로 처한 곳의 구원방주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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