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벌거벗은 왕

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23, 24).

자기를 상처 주는 자를 죽이고 자존심을 건드리면 비록 애들이라도 죽였노라고 그걸 자랑이라고 노래를 만들어 아내들을 불러다 들려주는 라멕입니다. 하나님에게 경외심이 없는 가인의 후예가 5대째로 내려와 라멕이 살인을 밥먹듯 하는데 하늘에선 아무 일이 없으니 가인의 살인에 대한 벌이 7배라면, 내게는 벌이 77배쯤 되겠는데… 어디 벌이 있는가? “과연 하나님이 있기나 한거야? 주먹이 왕이다. 살인자 가인 할아버지의 77배나 사람을 죽여도 대적할 이 아무도 없는 이 나를 당할 자가 누구냐?”

겨우 5대째인데 목축업과 쾌락을 위한 악기 등과 심지어 동과 철로 된 날카로운 기구들이 등장하여 문명도 급속히 발달해 하나님을 떠나 에덴을 나온 가인의 자손들이 자신을 위해 엄청나게 개발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과신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 다스림을 포기하신 것인가요? 언제 어디에서 힘센 놈이 나타나 자리를 빼앗을지 불안해 초비상 전시상태입니다.

약육강식의 동물의 상태로 인간의 질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간섭을 안받아 좋을 것 같아도 결국 생존위해 실력대결의 세상에서 내가 살기 위해 어쩔 수없이 죽여야 하고, 피는 피를 부르고 남는 것은 자기방어로 죽고 죽임당하는 아비규환입니다. 과연 라멕이 생각하고 말한 대로 하나님의 벌이 임하지 않았는지? 그의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든 비위를 거슬리면 어른이고 심지어 어린아이라도 마구마구 사람을 죽여대며 라멕은 그걸 자랑삼아 노래를 불러대는 극악무도한 전문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서 인간미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습니다. 여자들은 힘센 남자들을 위한 노리개, 노비의 수준이어서 찍 소리도 못하고 인격도 없고 의견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사나운 남편의 처분에 무서워 떠는 맹종이 있을 뿐, 남편의 말같지 않은 말이 법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도 무뎌지고 오히려 죄를 많이 질수록 힘이 센 남편으로 보이는 힘이 좌우하는 혼동된 사회이니 저들에게서 무슨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가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이 자랑한 번영이 진정한 번영이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의 성품이 사라지고 동물적인 근성과 마귀의 성품이 대치된다면 그것이 인간입니까? 육신의 호흡을 하고 살아있다고는 하나, 하나님의 성품이 떠난 자는 살았다하나 죽은 자입니다. 최악의 벌은 상실한 마음에서 하고픈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마음은 죄악의 공장입니다(롬1:18-32). 죄는 짓는 자에게 그대로 돌아오는 것이 심는 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원칙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마귀에게 가까워집니다. 비위가 상한다고 마구잡이로 죽여대는 살인마 라멕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 최악의 벌을 받은 줄도 모르고 교만을 떠는 인간 말종의 상태입니다.

주님 없는 마음은 지옥입니다. 오직 생명되신 하나님과 가까이 하여야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여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 하늘 복의 통로입니다. 걸어다니는 복덩이이지요. 하나님사랑으로 넘치는 삶으로 나도 살고 너도 살게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쉬지 않고 범죄하는 쓰레기 같은 영혼일지라도 온갖 욕심 에서 돌아서면 쉼을 주시는 주님! 죄의 소원들이 노도같이 올라와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와서는 다 산산이 부서집니다.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십자가! 십자가 내가 바라볼 때에 내 마음의 고통사라져~” 나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는 주님의 피를 감사합니다. 모든 부질없는 분주한 세상의 마음들을 내려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메일: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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