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말씀에 숨겨진 부부 행복의 비밀

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유지하며 그 가운데 행복한 부부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이 내리신 남편과 아내 관계의 행복지침입니다. 남자들은 눈에 비취는 여자의 외모에 너무나도 쉽게 빠지는 성격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자마자, 첫 눈에 반해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정말로 너무나 티를 냈습니다. 혼자 있다가 자신과 비슷한 여자를 만나게 되니 기대밖에 나타난 하와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었을까요?

이에 비해 하와의 반응은 성경 어느 곳을 찾아봐도 아담만큼은 빠진 것 같아 보이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아담이 열공하는 동물들 이름 짓는 일에는 별 흥미가 없고 그저 먹으면 죽는다는 선악과가 궁금해 나무 곁으로 혼자서 조금씩조금씩 다가가다가 뱀의 유혹하는 소리에 못이기는 척 짝짝꿍 주거니 받거니 유혹에 발을 담그다 이미 주어진 복을 놓친 어리석은 여자입니다. 왜 하와는 많은 과일 중 하필이면 먹으면 죽는다는 선악과가 먹음직 보암즉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였을까요? 영 하나님이 정해준 아담을 적절히 도우라는 자신의 역할이 별로 맘에 차지 않았다는 것일까요? 돕는다는 단어에 어쩐지 “아담은 주역, 나는 겨우 조연이야” 하는 맘이 들어서 별로 기쁘지 않았을까요? 아담을 더욱 잘 도우려면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아담을 도울 생각으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결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마치 선악과가 하나님이 가지신 전지의 능력을 부여하는 성분이라도 들어있는 것으로 아예 서로가 묵계하고 뱀과 하와가 공모할 수 있는 자리를 깝니다. 마귀는 거기다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귀중한 것은 혼자 독식하려는 욕심쟁이 할아버지로 몰아세워 하나님 성품을 비하하여 의심케 합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했다면 어떤 감언이설이라도 통할 리가 없지요. 넘겨짚은 뱀의 말이 하나님 말씀보다 더 달콤하게 들렸습니다.

선악과의 근본문제는 love of power 즉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이 가지신 그 능력을 소유하고픈 교만된 탐욕에 있습니다. 생명과를 선택했어야 the power of love 즉 하나님 사랑의 힘이 우리에게 생겼으련만… 자기 자리를 떠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밀어내어 하나님과의 관계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손가락질하며 “네 탓이야” 책임전가 할 때 부부관계도 따라서 무너졌습니다. 제멋대로 주제 파악 못하고 잘난 척하다가 큰 코 닥쳤지만 사랑의 하나님은 처음 당신의 계획대로 행복한 부부관계를 회복시켜주시고자 하십니다.

심판은 사정없이 잘잘못에 따라 주는 벌이고 징계는 다만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원래의 것을 회복시켜주려는 사랑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말씀을 들으면 회복이 일어납니다. 무너진 부부의 질서를 바로 잡는데 있어, 아내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다스림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여자에게는 남자의 강한 돌봄의 보호 리더십을 원하는(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만족될 때 여자는 사랑받는다고 느낍니다. 반면에 남자에게는 아내를 다스리고자(리드하고픈) 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자기를 존중하고 신뢰하여 따라주는 아내의 모습 속에서 남자로서의 성취감을 느끼며, 그것을 사랑받는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한 완전한 모델을 주셨습니다. 남편들에게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먼저 사랑으로 아내를 깨지기 쉬운 그릇으로 여겨 아내를 잘 돌봄으로 아내를 다스리는 매니저로서의 남편 자리를 해내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 남편을 마음을 다해 남편이 리더십을 발휘하도록 내조하여 서로가 하나로 연합하길 원하십니다(엡5:15-33). 아내와 남편사이에 서로를 최고로 여기고 사모하고 다스리는 사랑의 관계의 질서가 세워진 부부가 되면 보장된 하나님의 천국부부의 길입니다.

▲이메일: heenlee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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