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칼럼

뼈아프게 고생하고서야 소중함을 배웁니다

이희녕 사모 (뉴저지복음장로교회)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시119:71).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면 말씀이 내 안에 생명수로 변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그저 변명만 늘어놓고 빠져나가려 몸부림할 때 내려주신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창3:16)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라고 하나님께서 아내에게 주신 살아가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온 사방에 주렁주렁 달린 아주 잘 익은 과일들로 가득하여 손만 뻗으면 입에 살살 녹고 그 맛들이 다 다르고 오묘하여 먹는 재미에 빠져 살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이 넘치도록 풍성했습니다. 필요한 것을 너무 손쉽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이 그다지 귀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이 빚이라도 진 듯 당연히 여겨지고 철이 없었지요. 범사에 감사를 모르던 철부지였던 하와가 잉태할 때 고통이 크고, 수고했기에 자식에게 바치는 모성애가 헌신적이 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내리사랑이라 자식에게 헌신적으로 바치는 모성애만큼 자녀들이 성장하여 형제간에 잘 지내고 온 가족 오순도순 지냈으면 좋으련만… 원 세상에! “뼈중에 뼈 살중의 살이라” 고백할 때는 언제고 침이 마르기도 전 같은데…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니 “당신이 준 저 여자 탓”이라며 책임을 자기에게로, 나아가 하나님까지 밀어내기에 급급한 남편의 모습에서 비록 자신이 사고를 친 원인 제공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죄는 적게 보이고 믿었던 도끼에게 발등 찍힌 심정으로 미안한 감정이 쏘옥 들어가고 배반감까지 들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어쩐지 껄끄러워진 남편과의 힘든 관계에서 첫 아이를 온 몸이 찢어지는 아픔 가운데 안았습니다. 조금만 힘든 일이 생길라치면 너 때문이라고 몰아세우는 남편에겐 만정이 떨어진지 오래이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가인을 금이야 옥이야 온갖 정성 다 바치며 혹여 자신에게서 가인의 사랑을 빼앗길까 남편과 경쟁하듯 싫은 소리 한마디 않고 두 내외가 가인을 떠받치며 겨우 맘 붙이고 삽니다. 그런데 자기생명으로 애지중지하는 큰 아이가, 그것도 시샘으로 자기 동생을 무자비하게 쳐 죽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더 멀리 쫓겨나 곁에 있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살을 에이는 아픔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이 불순종하여 그 결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보시며 찢어지는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몸소 뼈저리게 체험하며 통곡합니다. 그런 아픔의 연단 후에 하나님을 겸손히 섬긴 아벨을 반환 받은 심정으로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며 비로소 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하며 경외하는 겸손해진 태도의 변화가 보입니다. 셋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 확실히 키워낸 모습이 셋이 아들을 낳고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씀의 기록에서 하와의 진지하게 통회하며 변화된 성숙의 모습을 보게됩니다(4:25). 뼈아픈 고생을 해야 사람 꼴이 나는 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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